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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담 Aug 07. 2023

그릇에 넘치는 과욕이 부르는 결말

[사기열전 장이/진여 편] 사기열전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장이(기원전 264년~기원전 202년)와 진여(미상~기원전 204년), 이 둘은 진나라가 몰락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시대의 영웅으로 살아가기도 했지만, 그들의 깊은 우정이 나중에는 원수지간으로 변하게 되는 삶을 살아간 인물 들이기도 합니다.



목이 달아나도 마음이 변치 않을 교분


장이는 대량 사람(지금의 허남성 개봉 서북지역)으로 죄를 지어서 외황(지금의 허남성 상구시 부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외황에는 부잣집 어여쁜 딸이 있었는데, 결혼 후 남편에게 실망해 도망 나와 아버지의 빈객에게 신세 지며 살고 있었습니다. 빈객이 장이를 잘 알고 있어, 그 부잣집 딸에게 ‘어진 남편을 구하거든 장이를 따라가라’ 하자, 전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장이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때마침 장이의 혐의도 풀려나 자유롭게 되었고, 여자의 집에서 장이를 도와 주워, 장이는 많은 사람을 불러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에 외황(당시 위나라)의 현령이 되었고, 어질다는 소문이 더욱 나게 되었습니다.


진여도 장이와 같이 대량 사람이었으며, 그가 자주 다닌 고형이라는 곳의 부자가 진여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고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진여는 장이와 나이차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서로 목이 달아나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의 깊은 교분을 맺었습니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망시킨 지 여러 해 지나고, 위나라의 장이와 진여가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자, 장이와 진여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진땅(지금의 허남성 회양부근, 진시황제의 진나라와 다른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그곳에서 마을의 문지기를 하며 끼니를 때웠는데, 한 관리가 진여가 잘못을 했다며 매질을 하자, 진여가 참지 못하고 대들려 했습니다. 이때, 장이가 진여의 발을 밟아 그대로 매를 맞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 장이는 진여를 데리고 나가 하찮은 치욕에 일개 관리에 의해 죽고자 하는가 하며 책망했습니다. 진나라는 장이와 진여 이름에 현상금을 걸고 계속 찾았는데, 이 둘은 문지기로서 오히려 그 조서를 전달하곤 했습니다.



진섭을 만난 장이, 진여


진섭(오광과 함께 최초로 대대적으로 진나라에 반기를 든 인물)이 일어나 수만의 군대 규모에 이를 때쯤, 장이와 진여가 진섭을 찾아왔고, 진섭은 그들의 소문을 많이 들었기에 자기의 부하로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진섭


진이라는 땅에 도착하자, 유력한 인물들이 진섭에게 이 혼잡한 시기에 왕이 될 것을 제안하자, 장이와 진여는 반대로 지금 왕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진나라에게 망한 여섯 나라의 자손으로 왕을 삼아야, 군사를 더욱 모을 수 있고, 적은 약해져,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섯 나라의 제후들도 고마움에 진섭을 제왕으로 모실 것이나, 여기서 왕이 된다면 천하가 흩어질 것이라고 충언을 하였으나, 진섭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왕위에 오릅니다.


진여는 진섭에게 진나라가 위치한 서쪽 지역 공격을 위하여, 북쪽에 위치한 조나라 땅을 공격하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고 하자, 진섭은 무신을 장군으로 해서, 장이와 진여에게 3천의 군사를 내어주어 조나라 땅을 치게 합니다. 무신의 무리는 조나라 땅에서 먼저 싸움보다는 진나라의 폭정과 그로 인해 백성의 파탄된 생활을 지적하며, 진섭의 무리의 정당성과 세력을 과장하여 선전하자, 많은 호걸 들이 이를 듣고 무리에 합류하여 무신은 수 만군을 추가로 얻고 조나라 땅의 성 10개를 함락했으나, 나머지 성들은 항복을 하지 않고 저항을 했습니다.


무신의 군대는 범양 현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괴통이라는 사람이 현령을 찾아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며, 진나라의 억압에 시달린 성내 백성들이 무신 군대에 호응할 것이라고 하며, 자신이 사자로서 무신 군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이후 괴통은 무신을 만나 범양의 현령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성이 고스란히 넘어오고, 그러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조나라, 연나라 땅의 성도 싸우지 않고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무신은 괴통의 말과 같이 행하자, 조나라의 땅의 저항하던 30개 성이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나라의 왕이 된 무신


장이와 진여는 진섭이 참소와 비방을 듣고 억울하게 부하들을 죽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무신을 설득하여 조나라 땅에서 조왕으로 오르는 것이 무신 자신의 안위뿐 아니라 조나라 땅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자, 무신은 조나라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사실을 무신이 진섭에게 알리자, 진섭은 무척 화가 나서, 무신 등의 가족을 죽이고, 조나라를 치려고 했지만, 신하인 방군이 진섭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 무신을 인정하고, 진나라를 공격토록 하는 게 낫다고 하자, 그 계책을 따릅니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는 이 계책을 간파하고, 무신에게 서쪽의 진나라가 아닌, 도리어 북동쪽의 대와 연 땅을 공격하고 땅을 취하여, 세력을 넓힐 것을 건의하자, 무신이 한광에게는 연 땅을, 이량에게는 상산 지역을, 장염에게는 상당 지역을 공격하게 합니다.


한광이 연나라 땅에 이르자, 연나라 사람들이 한광을 세워 연나라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자, 무신은 분노하여 장이, 진여와 함께 연나라 국경을 공격합니다. 무신은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연나라 군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연나라는 무신의 몸 값으로 조나라 땅의 절반을 요구하며, 조나라가 사자를 보내면 모두 죽였습니다. 잡일을 하던 병사가 꾀를 내어 연나라의 장수를 찾아가, 지금의 조왕인 무신을 내어주지 않는 것은 결국 장이와 진여가 원하는 바이며, 그들은 더 나아가 연나라가 무신을 죽여주기 원하며, 그렇게 된 후에는 조나라를 두 개로 쪼개어 서로 나누어 가지고 각각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무신의 조나라보다 훨씬 강해서, 연나라를 쉽게 무찌르게 될 것이라 하자, 연나라 장수는 이를 옳게 여겨 그 병사에게 조왕 무신을 내어 주었습니다.



사소한 실수가 가져온 처참한 결과


조왕 무신은 이량이 상산을 평정하고 돌아오자, 그에게 다시 태원을 공격토록 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가 길을 막고서 있어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진나라 장군은 진나라 황제가 쓴 것처럼 거짓 조서를 만들어 이량에게 진나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회유의 편지를 보냈으나, 이량은 믿지 않고,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가서 증원군을 요청하러 갑니다. 그 군대가 한단에 도착하기 전 길에서 조왕 누이의 무리와 마주쳤는데, 조왕의 누이가 술에 취해 장군인 이량에게 예를 갖추지 않고 지나가자, 이량의 부하들이 분노를 했습니다. 조왕 무신도 예전에는 이량의 휘하에 있었는데, 이제는 그 누이까지 무시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진나라의 조서를 받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이량은 화가 나서 조왕의 누이를 죽이고, 한단으로 기습을 감행해 조왕 무신을 죽이게 됩니다. 장이와 진여는 간신히 사전에 소식을 접해서 피난을 하였고, 남은 무리를 모으니, 수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전 조나라왕의 자손, 조헐을 찾아 왕으로 세우고 신도라는 곳에 거주합니다. 이량이 진여를 공격했으나, 이 싸움에서 진여가 이량을 물리칩니다.



거록성에서 위기를 맞은 장이


이후에 진나라 장수 장한이 몰려오자, 장이는 조왕 조헐과 함께 거록성으로 들어갔고, 진여는 상산병력을 이끌고 거록성의 북쪽에 주둔했습니다. 장한은 거록성을 포위하고 있는 왕리에게 제방 길을 만들어 군량을 공급했기 때문에, 왕리는 여유가 많았으나, 거록성은 군량이 점점 바닥나고 병력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바깥에 주둔한 진여도 병력이 많지 않아 진의 군대를 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몇 개월이 지나자 장이는 진여에 대해 크게 노하며, 두 명의 사자를 보내 장이를 책망하고 전투를 강권합니다. 진여가 그 사자들에게 지금은 싸울 수가 없다고 하여도, 그들이 강하게 주장하자, 진여는 하는 수 없이 5천의 군사를 떼어 그들에게 주자 그들은 진나라 군대에 맞섰으나, 순식간에 몰살당했습니다.


이때 연, 제, 초가 조를 구원하고자 달려왔지만, 감히 진나라를 공격하지 못했고, 결국 항우가 도착하여 후방의 장한을 물리치자 왕리도 힘을 잃고 연합군에 의해 사로 잡힙니다. 조왕은 연합군에 감사를 표했으나, 장이는 진여를 만나 책망하고 자신이 보낸 사자의 소재를 물었습니다. 진여가 사실대로 얘기하자, 장이는 믿지 않고 진여가 자신의 사자들을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 난 진여가 장군의 인수를 풀어주며, 자신은 장군 자리에 욕심이 없다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장이가 놀랐으나, 장이의 부하가 빨리 장군의 인수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하자, 장이는 인수를 허리에 차고 부하들을 거두어 드렸습니다. 진여가 돌아와 장이가 장군의 인수를 차고 돌려주지 않자 그를 원망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항우


조나라 왕이 된 장이


이후에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는 전투에 같이 참여했던 장이에게 조나라를 나누어 상산왕으로 임명하고, 조왕 헐을 대땅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진여의 빈객들이 진여에게도 상을 줄 것을 요청하자, 항우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진여에게 세 현을 봉해주는 것에 그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진여는 분노하고, 항우를 배신하고자 제나라왕 전영을 찾아가 군대를 빌려주면 제나라를 돕겠다고 합니다. 군대를 얻은 장이는 상산왕 장이를 습격했고, 장이는 이를 피해 도주합니다. 어디로 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하 감공이 한왕 유방은 천하를 재패할 인물이라고 하자, 장이는 한나라로 향합니다. 그 무렵 유방은 진나라의 옛 영토를 평정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찾아온 장이를 후하게 대우했습니다.


진여는 장이를 내쫓고, 대땅에서 조왕을 데려와 자신이 빼앗은 조나라 땅을 바치자, 조왕은 감사함에 진여를 대땅의 왕으로 삼아 주었습니다. 한나라가 동쪽의 초나라를 공격하면서, 조나라의 도움을 요청하자, 진여는 장이를 죽인다면 협력하겠다고 합니다. 유방은 장이를 닮은 사람을 찾아 죽여 그 머리를 진여에게 갖다 주자, 진여는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팽성 싸움에서 패하고, 장이도 죽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자, 진여는 곧바로 한나라 돕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한신이 세력을 한창 넓힐 때쯤 유방은 장이를 한신과 함께 조나라를 치도록 하여, 결국 진여는 전쟁에서 패해 죽임을 당하고, 조왕 헐도 죽자, 유방은 장이를 조왕으로 세워 주었습니다. 2년 후, 장이는 죽었고, 장이의 아들 장오가 조왕의 자리를 계승하였습니다.





사마천은 장이와 진여는 어진 사람으로 세상에 크게 알려졌으며, 그의 빈객들도 보통이상의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장이와 진여는 어려울 때는 목숨을 걸고 서로를 신뢰하였는데, 권력을 가지게 된 이후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여 결국 멸망시키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아무런 욕심 없이 왕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준 오나라의 시조 태백과 오나라의 왕자 계자와는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조나라의 왕이 된 무신은 손위 누이의 무심하고 무례한 행동 하나로 인해 부하로부터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진섭은 웅대한 포부와 용기로 큰 세력을 얻었으나, 앞을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 왕위에 올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기는 커녕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두 그릇이 작음에도 더 많은 것을 담으려는 과욕이 부른 결과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전 18화 과욕은 파멸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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