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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담 Aug 07. 2023

과욕은 파멸을 불러온다.

[사기열전 여불위 편] 사기열전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여불위(미상~기원전 235년)는 상인으로 시작해서 강대국 진나라의 재상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며, 진시황의 친아버지로 알려지기도 한 인물입니다.
 

여불위


奇貨可居(기화가거), 진귀한 물건은 사둘 필요가 있다.


여불위는 양책(현 낙양 부근)의 상인으로 큰돈을 모았습니다. 조나라의 한단에서 장사를 하던 중 진나라 태자의 둘째 아들인 자초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진나라의 왕은 소왕이었으며, 원래의 태자가 죽어, 둘째 아들인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안국군은 아들 20여 명이 있었으며, 정부인인 화양부인을 매우 사랑하였으나, 화양부인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자초는 안국군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친어머니 하희는 안국군의 총애를 받지 못했고, 자초 본인도 조나라의 볼모로 보내진 후, 진나라가 자주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로부터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초의 상황을 파악한 여불위는 자초를 만나 500금을 주어 빈객과 사귀게 하고, 자신은 500금으로 보물을 산 뒤  진나라의 화양부인의 언니를 통해 화양부인에게 바칩니다. 여불위는 자초가 매우 뛰어난 인물이며, 멀리 조나라에서 조차 태자와 화양부인을 몹시 사모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더불어 화양부인은 아들이 없으므로, 자초를 후사로 삼으면, 화양부인에게도 매우 이로울 것을 설득했습니다. 결국 화양부인은 안국군을 찾아가 자초를 후사로 삼을 것을 요청하고, 안국군은 약속을 한 후 자초에게 많은 물품을 보내 자초의 지위를 높여 줍니다.
 


태자가 된 자초


여불위에게는 춤을 잘 추고 외모가 뛰어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불위의 집에 방문한 자초가 그 여인을 보고 반하여 여불위에게 달라고 요청하자, 여불위는 화가 났으나, 자초에게 전 재산을 들여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 여인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자초에게 시집갔습니다. 이후에 아들 정, 즉 진시황제을 낳았으며, 자초의 정식 부인이 됩니다.


진나라 소왕 50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고 수도인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볼모인 자초를 죽이려 합니다. 여불위가 재물로 관리들을 매수하여 자초를 진나라로 탈출시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은 같이 가지 못하고 조나라에 숨어 지내게 됩니다. 진나라 소왕 56년, 소왕이 죽자, 안국군(당시 53세)이 왕위에 올라, 자초(당시 32세)를 태자로 삼자, 조나라는 자초의 아내와 아들을 진나라로 돌려보냅니다.


왕이 된 안국군(효문왕)이 1년 만에 죽게 되자, 자초(장양왕)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장양왕은 화양부인을 화양태후, 생모 하희를 하태후로,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았습니다.


장양왕도 즉위 후 3년 만에 죽자, 태자 정(당시 13세)이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았습니다. 이 무렵 위나라 신릉군, 초나라 춘신군, 조나라 평원군, 제나라 맹상군이 있어 각각 식객이 3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여불위도 이를 보고 식객을 모으고, 식객들을 통해 그들의 지식을 책으로 쓰게 한 후 집대성하여 '여씨춘추'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진시황제


여불위의 몰락


태후는 남편이 죽고, 왕은 어리므로 여불위와 사사로이 정을 통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나이가 들어감에도 그치지 않자, 여불위는 이를 두려워하여 노애라는 사람을 태후에게 소개합니다. 태후에게 보내기 위해 그를 부형(腐刑,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던 것처럼 판결을 위조하고, 수염과 눈썹을 뽑아 환관으로 만듭니다. 태후는 노애를 무척 좋아하였으며, 임신까지 하게 되자, 궁궐을 떠나 옹땅으로 옮겨 살았으며, 두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진시황 9년 노애가 모반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였고, 진시황은 태후와 노애에 관련 사실과 여불위도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시황은 노애의 삼족을 멸하고, 두 아들도 죽였습니다. 여불위도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간의 공로와 빈객들의 변호로 간신히 목숨을 구했습니다.

1년 후 여불위를 관직에서 내쫓고, 여불위의 봉읍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빈객과 사신들이 줄을 잇자, 시황제는 반란이 두려워 여불위를 촉 땅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여불위는 점점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결국 죽음을 당할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생을 마칩니다.





뛰어난 상인답게 숨겨진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중국 대륙의 정세를 한눈에 파악하는 통찰력을 소유하였으나, 과욕이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은 여불위 같은 사람을 공자가 말한 문(聞)이라고 하였습니다. 논어의 聞이란 입으로는 인(仁)을 말하지만, 몸으로 인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인하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도 세상에서 유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달(達) 해야 한다고 합니다. 達한 사람이란, 정직하며, 의를 좋아하고, 남을 대함에 잘 살피고, 스스로는 겸손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덕이 생겨나 세상에서 막힘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聞과 達은 반대개념으로 각각 거짓과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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