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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담 Aug 17. 2023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는 리더

[사기열전 이광 편] 사기열전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이광(미상~ 기원전 119년)은 농서군 성기현 (현 중국 감숙성 위치) 출신입니다. 이곳은 당시 한나라를 위협하고 자주 침입하여,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던 흉노족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광



흉노족과 초기 한나라의 충돌


흉노족은 기원전 3세기말부터 기원후 1세기말까지 몽골 지역과 만리장성 바깥 지역인 현지 중국의 북부와 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유목을 생업으로 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매우 호전적이었습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간혹 중국 역사에 등장하던 흉노족은 한나라 건국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되고, 흉노의 잦은  침입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광은 이 시기의 활동한 인물입니다.



말타기와 활에 능한 이광


이광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흉노족의 포로가 되어 잡혀가고 있을 때도, 가만히 아픈 체 누워있다가 지나가는 말을 훔쳐 타고, 쫓아오는 적을 향해 활을 날리며, 탈출한 적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의 장비와 관우


한 번은 일백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흉노의 일부 병사를 추적하다가 잘못하여 수천 기병 부대 적과 만나게 됩니다. 부하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여, 도망가려 했으나, 이광은 지금 도망치면 추격을 당하게 되고 곧 붙잡히게 될 것이라면서, 부하들을 안정시키고, 도리어 흉노의 부대 방향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적의 부대에 가깝게 접근해서는 말에서 내려 말들을 쉬게 하자, 흉노의 부대들은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광의 부대를 보았습니다. 이때 백마를 탄 적의 장수가 부대를 점검하자, 이광은 갑자기 말에 올라타 십여 명의 기병을 데리고, 적진으로 달려가 적장을 죽이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흉노의 부대는 이광이 유인책을 쓰고, 야밤에 복병이 쳐들 온다는 생각으로 부대를 밤새 철수하여 돌아갔습니다. 이광의 부대는 유유히 본진으로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후세에 쓰인 삼국지의 장비의 장판교의 담력과 관우가 술잔이 식기 전에 적장 화웅의 목을 벤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광의 궁술


그의 궁술은 신기에 가까웠고, 담력도 대단하였는데, 적이든 맹수이든 간에 자신이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화살을 쏘지 않았으며, 일단 활을 떠난 화살은 백발백중이었습니다. 한 번은 수풀 속의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하여 쏜 화살이 화살촉이 함몰되며 바위에 박혔습니다.  가까이 가서 바위인 것을 확인하고, 신기한 마음에 다시 화살을 쏘았으나 더 이상 바위를 뚫을 수 없었습니다. 이광은 호랑이를 자주 사냥을 하곤 했으며, 이로 인해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광의 리더십


이광은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지위에서 시작하여 장군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사마천은 흥미롭게도 사기에서 이광과 정불식을 비교하여 그들의 리더십을 비교했습니다. 정불식은 불패 장군으로 유명한데, 그는 군대를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군율을 엄격히 지키며, 서류 정리, 보초 등에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이광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하지 않았고, 부하들을 편히 쉬게 해 주었습니다. 항상 솔선수범하고, 부하들에 앞서 식사를 하지 않았고, 행군 중 물을 발견해도 부하들이 다 마시기 전에는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이광에게 충성을 다하고 그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흉노족의 군대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정불식의 군대를 두려워했으며, 또한 관리를 하지 않지만 사기가 높은 이광의 군대도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자존심과 복수


한 번은 이광이 흉노족에게 패해 흉노족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을 했지만, 고국에서 기다리는 것은 전쟁에서 패한 것, 병사들을 잃은 것, 포로가 된 것에 대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으므로, 많은 속죄금을 내고 사면을 받았고, 모든 직위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민으로 생활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지인과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패릉정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패릉정 정위는 통과를 허락해 달라는 이광 일행에 술에 취해 호통을 치면서 이미 시간이 지나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광의 시종이 이 분은 전직 이광 장군이라고 했지만, 정위는 현직 장군도 야간 통행이 불가한데, 하물며 전직 장군이라고 봐주겠냐며 비꼬면서, 이광 일행을 구류시켰습니다.


이후, 흉노족의 침입으로 황제가 다시 이광을 장수로 불러들이자, 이광은 패릉정의 정위도 같이 가게 해달라고 하자, 황제는 허락을 했고, 그 정위가 군대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흉노와 마지막 전투


이광은 젊어서부터 나이들 때까지 대부분의 생을 흉노와 싸우며 보냈습니다. 그는 전공도 있고, 명성도 있었지만, 패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큰 전공이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번번이 공적이 그의 능력과 노력만큼 나오지 않아서, 이광은 당시 운이 없는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고령으로 자리를 물러나 있는 동안 황제가 대대적인 흉노 정벌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이광도 자신의 출전을 요청하고, 황제는 마지못해 이광을 우장군으로 임명하여 대장군인 위청을 따르게 합니다. 이광은 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이미 이광이 고령이고 운이 없는 사람이므로 전장에 내보내지 말라는 지시를 대장군에게 했고, 그는 이광을 후방에 머무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광은 이를 거부하고, 흉노의 왕인 선우를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길을 잃어, 별 성과 없이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늦게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약속한 기일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위청은 그저 황제에게 잘 얘기하기 위해, 이광에게 늦은 사유를 물었으나, 이광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에 위청이 이광이 아닌 부하 장수를 부르자, 이광은 부하 장수들을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자신이 더 이상의 하급 관리들의 조사를 받는 수치를 당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과 군대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사마천은 [논어]의 其身正, 不令而行;其身不正, 雖令不従,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되고, 그 자신이 바르지 아니하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위정자와 리더들에게 외치는 사마천의 한마디입니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는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뜻입니다. 복숭아와 자두나무의 열매가 맛이 좋기에 사람들이 자주 열매를 따먹기 위해 나무로 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밑에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광은 병사들을  솔선수범과 부하를 아끼는 마음으로 대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존경을 이끌어내며, 그의 지휘에 모두 기꺼이 따랐습니다. 사마천은 정불식과의 비교하였는데, 이광은 불필요한 일을 최대한 피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군대의 휴식을 통해 체력을 비축했고, 사기를 높여 전투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광 부대는 많은 패배도 하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렇다고 정불식의 관리법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장수였기 때문입니다.


이광은 패릉정 정위에 대해 그가 준 모욕에 대해 복수를 감행하였는데, 이 부분은 한신이나 한안국이 유사한 상황 속에서 상대를 용서한 관용과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광은 자신의 능력에 부합하는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했으나, 번번이 운이 따르지 않아 성과가 없거나, 패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황제조차도 난세에 태어났으면, 더욱 인정받을 영웅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모두들 이광은 운이 없는 사람이 공공연히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광의 부하들은 후에 이광보다 더 높은 직위에 오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고령에 마지막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지 못한 이광은 마지막에서조차도 부하들이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한 불만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시대를 만나지 못한 영웅의 종말이었으나,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 실패한 장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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