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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자 Dec 28. 2022

퇴사 후 나에게 생긴 변화

10년동안 나를 괴롭히던 두드러기가 사라졌다


요즘 나는 삼식이로 지내고 있다. 엄마가 차려주는 삼시세끼를 모두 챙겨먹는 식충이 삼식이 말이다. 밖을 잘 안 나가는 집순이인 덕분에 한살림표의 건강하고 깨끗한 식단을 유지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샤워를 하던 와중 깨달았다. 약 10년 넘게 나를 괴롭게 하던 두드러기/간지러움증이 멀끔히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약 5개월 동안 두드러기로부터 자유롭게 지내다가, 이제서야 비로소 알아채렸다니!


나의 두드러기는 20대 초반에 미국에서 유학 중에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발등이 미친듯이 가려웠다. 당시 추운 겨울이여서 발이 동상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가 녹여도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학교 내 병원을 가서 알러지 약을 받아서 먹으니 나았다. 나중에는 팔, 허벅지에 엄청나게 징그러운 두드러기가 오돌토돌 올라왔다. 심할 때는 두피가 간지러워 머리를 벅벅 긁어야 했다.


한국에 돌아간 후에는 이 증상을 뿌리부터 잡아보자 생각했다.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을 달리며 매일 미친듯이 운동을 했고, 당근/브로콜리/토마토 등을 간 해독주스를 만들어 매일 마셨다. 그랬더니 그 때는 정말 증상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매일 운동하고 해독주스 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살았다.


하도 두드러기가 자주 올라오다보니 어떨 때 주로 두드러기가 나타나나 보니까, 빨간 색소가 들어간 젤리나 기름진 과자, 몸에 안 좋은 음식 등을 먹으면 그렇다고 나름대로 분석을 했다. 돌이켜보면 두드러기가 시작되었던 대학생 초반의 시기도 안 좋은 식습관을 가졌던 때였다. 밤에 배고프면 한국 친구들끼리 모여 라면을 먹었고, 카페테리아에서는 먹고 싶은 과자를 왕창 사먹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식습관이 좋지 못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피부 간지러움은 계속되었는데 이 때의 증상은 두드러기가 아니라 묘기증이었다. 몸이 간지러워지고, 간지러워서 긁으면 긁은 자국이 그대로 빨갛게 올라왔다. 보통은 팔, 다리 같은 몸에만 나타나다가 심할 때에는 목, 그리고 얼굴까지도 나타났다. 몇몇 동료들은 조심스럽게 피부를 보고는 괜찮냐고 물어보곤 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불닭볶음면이 땡겼다. 먹으면 또 다시 증상이 올라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집 가는 길 편의점에 들려 불닭볶음면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불닭볶음면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회사 가는 버스 안에서 배탈이 나 하느님께 제발 살려달라 기도하며 손에 땀을 쥐며 전 날을 후회했다. 그래놓고 집 가는 길에 또 다시 편의점에 들렸다. 불닭볶음면 외에도 과자를 많이 사먹었다. 특히 초록색 포카칩을 많이 먹었다. 심할 때는 한 개로는 부족할 것 같아 두봉을 사가지고 가서 한숨에 해치운 적도 있다.


나쁜 음식들을 먹어도 운동을 하면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땀을 빼서 두드러기를 개선했었던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킥복싱을 다니면서 자주 땀을 흘렸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두드러기가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을지 확신할 수 없다.


퇴사를 하고 난 이후에는 신기하게도 감자칩이나 불닭볶음면을 사먹은 적이 없다. 나의 못된 고질적인 습관이 단숨에 끊겨버린 것이다. 왜였을까? 두드러기에 괴로워할 것을 알면서도 팜유로 가득한 과자와 매운 라면을 먹은 것은 일종의 자학이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또는 나에게 화가 날 때, 복싱장에서 샌드백을 열심히 때리는 것으로도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미처 풀리지 못한 화를 나에게 풀었던 것일 수 있겠다.


먹고 싶은 과자, 컵라면을 마음껏 먹는 여러번의 임상실험과 퇴사 후 생긴 변화로 깨달았다. 나의 두드러기를 사라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운동이 아니라 음식이었음을. 그리고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흔한 말이 진리였음을. 결과가 안 좋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학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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