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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자 Jan 11. 2023

식물을 키우다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 방 한 칸 속 13가지 식물들

나에게는 몇 가지 취미가 있다. 운동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온 집안을 뒤집어 엎어 정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재봉틀로 에코백 등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에 유독 빠진 취미는 식물이다. 


내가 그간 키워온 식물은 사실 몇 개 안되었다. 레몬트리, 스킨답서스, 몬스테라, 아보카도가 다였다. 모두 우연히 내게 온 아이들이다.


레몬트리와 아보카도는 각 레몬과 아보카드를 먹다가 나온 씨앗을 집에 있는 화분에 심고 잊어버렸다. 어느 날 못 보던 풀이 자라고 있길래 보니 내가 심은 그 아이들이었다. 몬스테라는 당근마켓에서 무료나눔을 했더니 상대방분이 오히려 몬스테라 한 줄기를 선물로 주셨다.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여러 잎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스킨답서스는 전 회사의 식물 관리사분이 가지치는 과정에서 남은 걸 주셔서 키우게 되었다. 수경재배라 가끔씩 깨끗한 물로 바꾸는 게 다였고 스스로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직사광선 밑에 너무 오랫동안 두어버린 탓에 까맣게 쪼그라들어 죽어버렸다. 이후 식물에 대한 나의 애정들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새롭게 식물을 얻게 되었고, 덕분에 식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오히려 더욱 폭발하고 있다. 새로 얻은 애들은 형광 스킨답서스, 안개꽃, 보스턴고사리, 파피루스, 워터코인, 남천, 장미허브, 바질, 그리고 우리 냥냥이들을 위한 귀리였던가 보리인가 둘 중 하나다. 


최근에 셋째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모가 키우고 있는 형광 스킨답서스를 발견했다. 과거 나의 스킨답서스가 떠오르며 다시 한번 잘 해보자는 열망이 생겼다. 이모 나 얘 하나만 주라. 이모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이모는 물이 조금 담긴 종이컵에 스킨답서스 한 줄기를 넣어주었다. 


이모네 집에서 형광 스킨답서스를 얻고 난 3일 후에도 새로운 식물들을 만났다.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를 뵈러 용인에 가서 할머니한테 인사를 한 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식당 바로 앞에는 웬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둘째 이모는 거기 가서 제라늄을 사야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오케이 하고 따라갔다.


비닐하우스 같은 겉모습을 보고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이게 웬 걸!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나는 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싶어졌다. 인테리어도 너무 아름다웠고 그간 관심 있었던 식물들이 아주 많았다. 게다가 심지어 가격까지 착했다. (하나당 2,700원이었다.) 

나는 극도의 흥분 상태로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어보고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키워보고 싶었던 보스턴고사리와 안개꽃을 얻어왔다. 

며칠 후에는 과거에 종이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파피루스를 데리고 왔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파피루스와 셀렘을 키우셨고 이걸 얻은 나는 약 3번에 걸쳐 모두 죽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파피루스를 또 한번 가져다달라고 했다. 파피루스는 잘려진 생수 페트병에 뿌리채로 담겨왔고, 같이 수경재배되던 귀여운 워터코인도 함께 딸려왔다.


이제 식물이 한 두개가 아니다보니 자꾸 헷갈렸고, 죽이지 말고 잘 키워보자 생각하며 물 주기, 적정 온도 같은 것들을 적어두었다. 

시들은 잎들은 때야 오히려 더 잘 자라는 점도 신기하고, 물길이 생기지 않도록 흙을 주기적으로 나무꼬챙이로 쑤셔야 하는 점도 재미있고, 분무를 뿌리는 것도, 씨앗이 발아를 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 뿌리파리 같은 벌레가 생길 나름의 리스크가 있는 것도 짜릿(?)하다. 


오전에 난 햇빛을 쐬어 주려고 창가에 모든 화분들을 옮겨 두고서 문득 그 뷰를 보고 나니 내가 왜 식물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러 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있는 걸 보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방이 내 방 같지 않고, 이전보다 훨씬 더 좋게 느껴지고 우와아...하며 마음이 차분해졌었는데 이건 무슨 감정이었을까?

부디 내가 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잘 키워서 레몬도 얻고, 바질도 따서 바질 페스토도 해먹고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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