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름 연차 대비 높은 보상을 받던 회사를 퇴사한 이유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회사생활은 버티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약 4년동안 버틴 것이 정말 대견스럽다. 3년만 버티자고 한 것을 꾸역꾸역 버티다가 추가로 1년이나 더 버텼으니 말이다. 내가 퇴사를 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차피 내 성격상 오래 쉬지 못할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아주 오랫동안 잘 놀고 먹고 있다. 퇴사 전부터 해온 쉐어하우스 운영이 이를 가능케 해주었다. 일찍이 월급 외의 부수입을 만들어온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쉐어하우스 2호점
퇴사 후 약 3개월 즈음에는 쉬는 게 지겹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일하지 않는 삶이 권태롭다고 느껴져 이제 그만 일을 해봐야겠다 싶어 이직을 준비했다. 정말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마음 조금, 공백이 더 길어지면 이직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걱정 조금이 섞였기 때문이다. 여럿 회사의 면접을 보러 다니며 서류에서 탈락하기도, 1차 면접에서 탈락하기도,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나름 면접을 소위 '찢었다, 이건 100% 붙을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했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여럿 생기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 취미인 독서를 하면서 깨달았다. 꼭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은 다양하며, 특히 나와 같이 회사에서의 안정감보다 내 일을 주도적으로 할 때 보람과 활력을 많이 느끼는 성향의 사람에게는 작더라도 1인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보통 이러한 작은 사업은 자신의 취미에서 발전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파워포인트나 보고서를 잘 만들던 직장인이 해당 분야의 강사가 되거나, 취미로 하던 일러스트 그리기에서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재봉이 그랬다. 나는 과거 대학에서 의류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고, 혼자서 재봉틀로 파우치, 에코백 등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장점 중 하나인 실행력을 발판삼아, 공간임대업인 쉐어하우스 말고 직접 재봉을 해서 물건을 판매하는 작고 귀여운 나의 세번째 일을 벌렸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원단, 스탬프, 라벨, 포장지, 택, 포장끈, 스티커, 자, 열펜, 로터리 칼, 커팅 매트 등을 구매한 후 디자인한 가방을 재단하고, 재봉하고, 사진을 찍고, 상세 페이지를 만들고 온라인 판매처에 입점을 신청했다. 직접 내 일을 하니 퇴사 3개월 쯔음 느꼈던 지루함은 보란듯이 사라졌다. 회사에서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될 때에는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났는데 내 일을 하니까 그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욕이 넘쳐나서 문제였다. 늦은 새벽까지 재봉을 하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 억지로 잠에 들었다. 아침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새벽 2시까지 재봉틀을 돌리곤 했다.
종종 스스로가 게으르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의미를 못 찾아서 그런 거였다.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의 나는 꽤나 부지런했다. 초반에는 나의 작고 귀여운 사업을 이직 준비와 병행했다. 그러나 면접 준비보다 내 사업 준비가 훨씬 즐거워지면서 더 이상 이직 준비는 하고 있지 않다. 헤드헌터한테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앞서 말한 실행력이 내 장점이라면,양날의 검처럼 나의 단점은 조급함이었다. 내가 키우고 있는 이 작은 브랜드가 빨리 성장하지 않고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실망을 하곤 했다. 그렇게 속상해 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 읽던 책에서 나를 위해서 콕 찝어 말해주는 듯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실행력이 좋은 사람들의 단점은 조급함이라고,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 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브랜드로 한달에 10만원만 벌어도 만족하고, 적어도 1년 정도는 꾸준히 해보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꽤나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다. 한 달만에 내가 만족하기로 했던 금액의 약 7배의 매출이 발생했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나의 가방을 구매해준 분들이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주었다. '200% 만족한다'고, '마감 상태가 좋다'고, '정성을 들인 게 느껴진다'는 피드백들을 들을 때 많이 감격스러웠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마음으로 임했더니 오히려 좋은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다시 마음을 먹어야겠다. 한번 좋은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새로운 달에 매출이 줄었을 때 너무 실망하지 않기로 말이다. 매출은 내가 통제하기 어렵지만 내 마음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길을 도전해나가고 있는 나 자신을 응원하고, 나와 비슷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