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줄곧 머리숱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헤어드라이기를 들고 머리를 말리는 일은 꽤나 귀찮은 일이다. 더운 바람이 짜증나기도 하고, 팔도 아파와서 나는 드라이기로 대충 30초 정도 말린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말렸다. 그러나 하루가 끝날 무렵에도 머리 속을 만져보면 많은 숱으로 인해 여전히 머리가 말라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삶을 긴 머리로 살아왔지만 긴 머리가 답답하고 불편했다. 머리를 짧게 짜르기로 결심했다.
유튜브로 '여자 셀프컷'을 검색했다.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섹션을 여러 개로 나누는 것, 둘째는 머리 끝이 어색하지 않게 가위로 90도로 세워서 자르는 것이었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서 영상을 보면서 머리를 잘랐다. 처음에는 쇄골 길이 정도로 잘랐는데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편한 단발의 삶을 느끼며 이번엔 더 짧게 잘라야겠다고 결심했다. 턱선 길이로 자르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망해버렸다. 미용실에서 가서 삐뚤빼둘하게 자른 머리를 손봐달라고 했고, 머리가 잘 마르게 숱도 많이 많이 쳐달라고 했다.
준비 시간이 짧아졌다
긴 머리를 쇄골보다 짧은 길이로 자르고 나니 외출을 준비하는 시간이 현저히 짧아졌다. 사실상 나는 강아지 산책할 때만 겨우 밖을 나가는 준 히키코모리이기에 외출 준비라기보다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게 맞다. 가끔 아침을 시작하는 샤워가 유독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머리가 짧으니 5분도 안 걸려. 얼른 후딱 씻자'라고 생각하면 금새 몸이 움직여진다. 가끔 시간이 촉박한 채로 외출을 해야할 때에는 고개만 빼놓고 머리만 감는다. 체감상 1분도 안 걸리는 것 같다. 올레! 너무나도 편하다.
이제는 샤워를 하고 나서도 드라이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선풍기를 강풍이나 터보 모드로 틀어놓고 핸드폰을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머리를 말린다. 집게핀으로 대충 머리카락 반을 틀어올려서 속머리도 말린다. 딴짓을 하다보면 머리가 금새 마른다.
청결해진다
샤워를 아침에 하는 게 청결한 것인가, 저녁에 하는 게 청결한 것인가의 선택에서 나는 거의 99% 아침에 샤워하는 삶을 살아왔다. 물론 아침/저녁 둘 다 샤워하는 게 제일 베스트이겠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귀찮은 걸.
그런데 짧은 머리 덕분에 샤워하는 행위 자체가 5분도 안되고 머리를 말리는 부수적인 일도 비교적 간단한 일이 되자 하루에 2번 샤워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저녁 9~10시쯤에 운동을 하는 나는 운동 후 땀이 별로 나지 않으면 대충 땀을 말리고선 잠을 자곤했다. (웁스) 그러나 이제는 후다닥 샤워를 하고 나온다.
침대에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누워 선풍기로 머리를 말릴 때 보송보송해지는 느낌,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느낌이 좋아서 저녁에도 샤워를 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작은 행복한 순간들 덕분에 삶이 조금은 더 풍족해진 것 같다.
귀여워졌다
머리를 짧게 자름으로서 얻은 예상하지 못한 효과는 바로 쫌 귀여워진 것이다. 청소년기때부터 나는 줄곧 스스로 노안 혹은 성숙해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그런데 최근에 미국에서 온 사촌 동생들을 만났는데, 글쎄 31살인 나를 보고선 26살처럼 보인다고! (룰루)단발 머리를 하고서는 반묶음을 주로 하는데, 그 머리 스타일에서는 성숙한 이미지보다는 귀여운 이미지가 풍기는 것 같다. 머리가 주는 분위기의 힘은 대단함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사실 나는 귀여움보다는 청순섹시파이지만(?) 내가 31살이라는 걸 아직도 믿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는 단발 머리를 통해서 몇 살이라도 좀 더 어린 척 해봐야겠다.
그럼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