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연차별 회식 거하게 한 다음날
회사에서 회식을 한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다고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집까지 거리가 꽤 먼 언니를 위해 형부가 우리 집에서 자고 출근을 하라고 배려를 해줬다.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데 지하철 두 번을 갈아타고 버스를 또 타야 하는데 우리 집에선 지하철 한 번만 타면 되기 때문이다.
애들하고 밥 먹을 땐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회사에서 회식할 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집에 올 때도 금방 와서 좋았다고 술 한 잔 거하게 마신 언니가 기분이 좋아 누워 있다.
회식.... 다양한 회사를 다녀봐서 인지 나는 회식 자리 에피소드들이 참 많다.
입사 초기엔 회식 자리도 거창하고, 어르신들이 주는 술을 마다하면 분위기 엄해지기 때문에 그 술을 돌아가면서 다 받아 마셨다.
막내라는 이유로 장기자랑도 해야 했다.
나라는 존재를 어필하는 자리가 회식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말짱한 모습으로 일찍 출근해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출근하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방긋방긋 웃어주며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라며 인사를 한다.
그러면 다들 “오, 벌써 나왔어? 어제 그렇게 마셨는데 괜찮은가 봐? 역시 젊네 젊어- "라는 말을 하고 지나간다.
2-3년 차가 되면 회식 자리에서 사회를 보면서 분위기를 띄워줘야 한다. 소맥도 잘 마는 나만의 노하우도 가지게 된다. 윗사람 아랫사람들을 챙기다 보면 1,2차 회식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난 얼굴은 처참하다. 다크서클에 해장한다고 라면 먹고 잤더니 얼굴은 퉁퉁 부어있다. 회사에 어그적 어그적 겨우 출근해 숙취제를 마시곤 조용히 해장을 하러 간다.
7년 차가 되면 적당히 입만 대는 척하고 빠져준다.
빠질 수 없는 회식이라면 적당히 먹고 뱉으면서 분위기를 맞춰준다.
그리곤 그다음 날 연차를 쓴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술자리는 더더더더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회식하러 갈 때 조용히 ”휴가 중입니다 “ 메모를 올려두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