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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20. 2018

살거나 살아남거나

미래를 위해 사는 우리들




궁금한 건 반드시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질문이 있다. 바로 미래에 뭘 하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가 그 질문을 지겹도록 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커서 뭐가 되고 싶니'였던 말이 '이다음에 뭐하고 싶니'로 약간 바뀌었을 뿐, 나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질문들에 조금씩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때때로 답을 위한 답을 내리는 일도 잦아졌다. 우려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대답. 그런 대답을 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저는 화가가 될 거예요.'



이 말이 주는 묵직한 책임감을 잘 알지 못했을 땐, 그 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하던 나였다. 처음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 주던 사람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구체적인 대답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 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지금 어느 단계쯤 와 있는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대안은 생각하고 있는지. 그때부터 그 질문 앞에 점점 입을 다물어버리는 또래들도 생겼다. 구체적인 미래나 꿈이 없는 사람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굉장히 잘못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년, 내후년, 그리고 그 내후년에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나는 지금 뭘 해야 하는 걸까. 그럴수록 지금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고, 그냥 보낸 오늘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두려운 순간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점점 세상과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자리에 나가면 당연하다는 듯 묻겠지. 어떻게 돼가냐고, 왜 여태 아무런 계획이 없느냐고. 그 질문을 받으면 사실 난 할 말이 없어. 그런 게 없거든. 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데 그런 대답을 원하는 사람들은 없잖아. 궁금해하지도 않을 테고. 그래서 점점 더 나가고 싶지 않아."



언제부턴가 모임에 발길을 끊은 지인이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공무원이 되는 게 목표였지만, 실은 마음 뜨겁게 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한 게 진짜 모습이었다. 그렇게 취업이 자꾸만 늦어지자, 어느 날을 기점으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마도 서로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그날부터인 것 같았다. 그때의 주제도 어김없이 '이다음에'였다. 모임에 참석했던 누군가가 5년 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절친한 형들과 크게 사업을 할 계획이라는 말에 몇몇은 아직 이루지도 않은 미래를 부러워했다. 마치 우리는,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 같았다.

 


늘 지금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한 달 뒤를 먼저 생각하는 게 익숙해진 나로선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사는 이가 부러울 때가 많다. 정해진 미래가 없다는 건 불행한 걸까. 그런 게 있어야만 행복한 걸까. 그 고민을 수도 없이 해왔고, 그러다 보면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말했듯, 살려고 노력하느라 진짜 살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하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정말로 살 시간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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