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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25. 2019

21일 법칙에 대하여

THE BIG ISSUE KOREA 196



작년에 했어야 할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새해가 되자마자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저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더군요.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종일 병원 곳곳에서 검사를 받다 보니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놀던 지난날이 후회스럽더군요. 한 달이라도 빨리 운동했더라면 하는 마음뿐이었어요. 그 순간의 마음을 쭉 유지할 수 있다면 매년 헬스장에 기부하는 일 따윈 아마 없을 거예요.


작년 이맘때, 허리 통증으로 앓아누운 적이 있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휴게실에 몸을 뉘어야 했고,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 나쁜 버릇들이 떠오르곤 했어요. 다리 꼬는 습관, 삐딱하게 서 있는 습관, 엎드려 자는 습관까지.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렇게 정형외과를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요.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지도 꽤 된 듯했습니다. 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 의사 선생님이 한숨을 푹 쉬더라고요. 처음 보는 심각한 표정에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이제 정말 운동하셔야 합니다."


매년 듣는 말이 왜 그때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동 대신 며칠 식단 조절만 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몸무게에 안도하던 저도 더 피할 구석이 없어 보였어요. 몸무게만 유지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허리 통증이 차차 나아지자 자연스레 운동하자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추천받은 운동 중 뭘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어요. 헬스는 실패한 전적이 많으니 미련 없이 제외시켰고, 영하의 날씨에 수영도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운동에 재미 붙여본 적이 없던 터라 매일같이 후기만 찾아보던 그때, 눈에 띄는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요가하고 허리 통증이 싹 사라졌어요'라는 제목의 글엔 6개월간의 변화가 꼼꼼히 적혀 있었지요. 모든 내용을 다 읽은 후, 집 근처 요가 센터를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지극히 현실적 목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퇴근 후에 운동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란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거든요.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에라도 투입되는 날엔 꼬박 며칠을 밤 10시 넘어 퇴근할 게 분명했고, 약속이라도 생기면 심각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을 까맣게 잊어버릴 게 뻔했습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출근 전 운동이 가능한 곳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10시 출근인 게 다행이다 싶었지요. 운이 좋게도 집에서 10분 거리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이제 나만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YO BK Yoga Studio 'Hot yoga Campaign' <출처: www.welovead.com>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제 모습은 광고 속 주인공들과 꼭 닮아 있었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어요. 새벽 운동, 요가, 필라테스는 평생 제 인생에 없을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것만 성공하면 그 이후는 무작정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고작 3개월로 30년 동안 없던 체력이 갑자기 생기진 않겠지만, 잠으로 채우던 한 시간을 꽤나 값지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어요.



"척추가 유연한 만큼 당신은 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트레이너 밥 하퍼가 한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폭삭 늙었던 제 척추가 조금씩 젊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야근 한 번에 바로 무너지던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근력 하나 없이 찾아오긴 했지만, 빠짐없이 출석하는 저를 보며 요가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데 적어도 21일이 필요하대요. 일단 그 기간은 넘기셨네요."


그러고 보니 이젠 무의식적으로 요가 센터를 찾는 듯합니다. 제법 몸에 익었다는 뜻이겠지요. 예전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운동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말도, 땀은 흘릴수록 개운 하단 말도요. 단순히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서글프긴 해도 이젠 아프지 않기 위해 한 시간 일찍 눈을 뜹니다. 끔찍한 허리 통증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요.


과거의 저처럼 누군가는 제 말을 의심하겠지만, 한 번쯤 믿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달도 아니고 딱 21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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