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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08. 2019

세계 제일의
오지라퍼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10분 뒤에 너희 집 주차장에 도착해. 몇 호인지 알려주면 올라갈게."



나와 남편은 친한 동생이 사는 동네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품에 안겨 있는 아깽이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주차된 차 아래에서 끙끙 앓고 있던 이 아깽이를 남편의 회사 후배가 가까스로 구조했다. 후배는 이미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서 임시 보호처 역할은 할 수 있어도 입양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구조'와 '임보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자주 접속하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몇 가지 사연을 읽어봤다.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이 '구조', 임시로 그 고양이를 보살펴주는 가정을 '임보처'라고 불렀다.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후배가 구조한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치료나 접종은 마쳤는데 아직 입양처를 구하지 못했나 봐. 어쩌지? 주변에 입양할 사람 있을까?"



남편의 말에 처음 떠오른 사람은 대학교 때 활동했던 동아리 동생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내내 혼자 살고 있는 동생은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밥을 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하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를 만날 때면 꼭 하미의 안부를 물었다. 지나가면서 보는 길고양이들에게도 어찌나 다정한지, 고양이와 같이 살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아 의아한 상태였다. 나는 조심스레 입양 의사를 물었고 그녀는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어떤 것부터 준비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몰라서 걱정이에요."



나는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집에 있는 사료와 모래를 하나하나 담았다. 하미가 어릴 적에 갖고 놀던 장난감도 잊지 않았다. 곧바로 남편과 함께 아깽이가 있는 회사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후배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곧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다. 한 손에는 케이지를, 한 손에는 장난감을 들고 나왔다.



"얘가 좋아하는 장난감이에요. 또 낯선 환경에 가면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거라도 챙겨주고 싶어서요. 잘 부탁드려요."



그 후배와 사는 고양이들도 과거엔 유기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장난감까지 세심하게 챙겨 나온 모습에 다시금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아깽이가 앞으로는 세상의 따뜻함만 알고 자라나길 바랐다.



"한참 고민했는데 복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복 많은 수진이의 고양이! 줄여서 '복진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복 많은 집사와 커다란 눈망울이 매력적인 복진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복진이가 아침잠이 없는 탓에 동생은 반강제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만, 둘의 동거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못 본 사이 성큼 자라 있는 복진이를 볼 때마다 유기묘에 대한 내 오지랖도 무럭무럭 자라난다. 고양이를 분양받을 생각도, 입양해올 생각도 없던 내가 어느 날 하미를 만났고, 이제 유기된 고양이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게 되다니. 어쩌면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거리에는 한 번쯤 꼬옥 안아주고 싶은 고양이들로 가득하다.


 


6년째 글로 먹고사는 카피라이터.

3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아내.

3남매 중 둘째 딸.

7년째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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