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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01. 2019

반려인과 반려묘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어쩌다 보니 사중인격



내가 7년째 모시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은 하미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오드아이를 가진 터키시 앙고라 암컷이다. 둘이서 4년을 살았고 3년 전부터는 남편까지 새 집사로 들였다. 처음엔 서로 데면데면하더니 요즘은 나보다 더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하미와 친해진 남편은 종종 히죽거리며 말했다. 가만 보면 너랑 하미랑 똑 닮았다고. 너랑 사는 고양이인 거 누가 봐도 알겠다고.



동생의 고양이 이름은 '야미'다. 하미와 동갑내기고 러시안 블루 암컷이다. 야미를 잠시 탁묘하게 되면서 남편이 한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야미는 동생이 군대에 있는 2년 동안만 우리와 살게 되었는데, 회사에 다녀오면 발라당 배부터 보여주는 하미와 달리 매번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나를 쳐다봤다. 잠도 창가에서 가까운 의자나 바닥에 깔아 둔 방석 위에서만 잤다. 야미를 좀 더 보고 싶어서 조심히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 침대 밑에 숨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묘하게 무뚝뚝하고 까칠한 모습이 동생과 비슷했다. 하미는 질척거리는 내가 익숙했겠지만 야미는 동생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독립적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초반에는 바뀐 환경 때문에 예민해져 낯을 가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된 것 같았을 때도 야미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는 고양이었다.



하미도 원래 애교가 많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하미와 함께 살게 된 속사정을 얘기하자면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창 고양이에 푹 빠져 있던 동생이 근처 분양 숍에서 야미와 하미를 데려왔는데, 건강한 야미에 비해 하미는 쓰다듬기에도 미안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어린 고양이 여럿을 동시에 키우는 탓에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지 못한 문제까지 발생했다. 비교적 체구가 큰 야미가 하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의논 끝에 야미는 동생이, 하미는 내가 돌보기로 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때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하미는 발톱을 세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나를 경계했다. 나는 그저 때맞춰 병원에 데려가고, 영양제를 먹이고, 조용히 하미 몫의 밥과 물을 채워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우리 둘은 그렇게 지냈다. 멀찌감치 지켜볼 뿐 다가가지도 안아주지도 못했다. 하루빨리 하미가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온갖 재롱을 부려보기도 했다. 엎드려서 하미와 눈을 맞추며 웃어보기도 하고 눈을 깜빡여보기도 했지만 하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내내 한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석 달쯤 지났을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늘 머물던 자리에 하미가 없음을 알았다. 한 자리를 떠난 적이 없던 터라 깜짝 놀라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워낙 체구가 작은 탓에 옷 사이사이는 물론 서랍 하나까지 샅샅이 뒤져보았다. 점점 식은땀이 났다. 어젯밤 분리수거하러 가는 길에 탈출한 건 아닌지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 "야옹"하고 조그만 소리가 들려왔다. 하미는 침대 머리맡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을 잔 모양이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어느 날 불쑥 마음을 연 하미는 우리 집에서 가장 지독한 땡깡쟁이가 되었다.



"너도 땡깡 장난 아닌데 쟤가 너 하는 거 보고 배운 걸 거야."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며 징징대는 하미를 보며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기는 했다. 내가 꽁꽁 숨겨 두었던 간식을 꺼내자 하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운 하미를 보며 나는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우리 집 여자들은 밥만 제때 주면 절대 성질부리는 일 없어."





6년째 글로 먹고사는 카피라이터.

3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아내.

3남매 중 둘째 딸.

7년째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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