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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Feb 15. 2018

2.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이 '드디어' 확립된 순간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평범이들의 MeToo 운동

'나 너무 신파로 가나?'


얼마 전부터 가끔씩, 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마치 어릴 적 할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수도 없이 반복했던 이야기, 공산당이 쏜 총알이 할아버지의 오른쪽 허벅지를 앞에서부터 뚫고 들어가 뒤로 나왔다는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할아버지 당신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주는 중요한 사건이었겠지만, 손녀인 내겐 그저... 집중하는 척해야 했던, 그런 지루한 이야기. 혹시 내 이야기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악인에게 괴롭힘을 당한 선인은 힘을 기를 때까지 인내하다가 끝내 악인을 혼내주는.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내가 끔찍이도 좋아했던 90년대 중국 무협영화의 스토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외국에서 MeToo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난 그저 그랬다. '아.. 뭐 이제라도.. 다행이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 성폭력 사건을 다룬 뉴스가, '있을 수 없는' 혹은 '인면수심의'라는 헤드라인을 달면, '정말... 몰랐어? 저런 경우 많은데..' 하며 시니컬해지거나, '저렇게 흥분해서 반응해 버리면 오히려 피해자들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고, 더 숨어버리게 할 텐데..'하는 우려가 들뿐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시작된 MeToo 운동에 대해서도 딱히 기사를 찾아 읽지도 않았고 그다지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안태근 사건의 피해자와 손석희 씨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꾹꾹 눌러서 한마디 한마디 힘들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을 보면서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더운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왜? 난 이제 괜찮은데? 얼마든지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난 괜찮은데... 뭐지? 지금 이거.'


생리 전 증후군과 겹쳐서 그런가?... 아마 어느 정도는.

데자뷔처럼, 오래 전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그런가?... 그래, 그것도 어느 정도는.



내가 다니던 대학의 성폭력 상담소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닿기까지는 족히 100개는 되어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난 그 계단을 꽤 자주 오르내렸었다. 왜냐면 난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정의로운 학생이었으니까. 학교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하지만 피해자가 느끼는 주관적 무게감은 다 똑같이 무거웠을 성폭력 사건들의 해결을 돕기 위해, 난 정의로운 척, 능력 있는 척, 마치 무언가에 통달한 척... 기껏해야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그렇게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그 계단을 오르고 내렸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무늬만 그들을 '돕고'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손을 꼭 쥐고서는 가장 무서운, 그래서 모른 척하고 싶었던 나의 문제를 외면할 그럴싸한 구실을 찾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정의롭고 용감해. 난 이렇게 씩씩해. 그래서 피해자들의 손을 놓을 수 없어. 그러니 내 문제는... 나중에.'

이렇게 어린 마음으로 어른의 가면을 쓴 채 열심히, 부지런히, 내 문제를 외면했었다.  


졸업을 앞두고 더 이상 스스로에게 제공할 변변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23살의 나는 드디어 나를 데리고 그 계단을 올라갔다. 그게 2005년의 봄 즈음이었나...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 상담소의 문을 열고 나는 나를 피상담자의 자리에 앉혔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나는 23살의 나였고 짐짓 여유 있는 척, 다 아는 척, 그저 조금의 가이드라인만 얻으면 내 문제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는 건방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다른 피해자들과는 다르니까. 난 강하니까. 난 용감하니까. 난 어른이니까. 난 다른 피해자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렇게 밀린 방학숙제를 개학 전에 후딱 해치워버리자는 마음으로 접근했던 나의 이 오만은,

딱 상담대기실까지만 유효했다.


상담실에 들어서서 동그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상담 선생님. 그리고 여유 있는 척 미소를 띠고 있는 23살의 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하얀 탁자 위의 크리넥스 티슈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리고 선생님의 첫 질문, 너무나 당연히 상담의 시작이 되어야 할 그 질문을 난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누구예요?"


한 번도 진지하게 '누구'라고, 지목해 보지도, 심지어 떠올려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습게도 나 스스로 상담소를 찾아간 그때까지도. 선생님의 질문과 나의 대답 사이에는 0. 몇 초의 시간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난 그 질문에 극도로 긴장을 해버렸지만, 동시에 그 질문의 답에 대한 다른 옵션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마치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면 물건이 뚝! 하고 떨어지듯이, 기계적으로 정답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요."


그리고는 곧 선생님은 크리넥스 티슈를 내 손에 쥐여주어야만 했다. 그것도 여러 장.


왜 나는 이 당연한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누가 봐도 뻔한, 상담의 첫 질문인데.

아마도 나는, 내가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어떤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는지 보다, 나를 괴롭힌 존재가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크고, 더 무섭고, 더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담 선생님의 순식간에 들어온 그 첫 번째 쨉에, 훅도 아닌 쨉에, 어른인 척했던 23살의 나는 약하디 약한 10살의 나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왔다. 내가 그렇게 외면하고 도망 다녔던 과거를 직면할 시간이 당황스럽게 와버렸다.

상담실에 나 자신을 들여보내는 것으로 23살 성인인 나의 역할은 끝이 났고, 이제는 상담소의 하얀 탁자를 향해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뜨려버린, 고작 첫 질문에 무너저 버린 10살의 내가 남아 있었다.


그 순간을 35살 현재의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내가 겪었던 고통이 성폭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디어' 인정한 순간.

내 정체성이 성폭력 피해 경험자로 '드디어' 자리매김한 순간.

십수 년 만에 '드디어' 내 입을 통해 가해자를 지목한 순간.

10살의 내가 '드디어' 성장이란 걸 시작하게 된 순간.


:)



사실 그 순간은 내 개인적인 선택이나 결단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 순간 이후 질적으로 달라진 나의 일상, 나의 세계관은 내 개인의 성취가 아니다.


지리산 언니를 시작으로 하여, 홑꺼풀인 내가 항상 부러워했던, 쌍꺼풀이 예뻤던 나의 동기, 선배들을 따라 씩씩하게 농활에 따라왔던 새내기들,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학자로서의 성공을 꿈꿨던 나의 선배, 같은 과 남학생에게 핑크빛 마음을 품었던 나의 후배, 그리고 덩치가 산 만 하여 지하철을 탈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 앉던,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참 싫어했던 남자 후배까지.


그들은 각자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교수, 동아리 선배, 막내 삼촌, 아버지, 짝사랑 남학생, 그리고 어릴 적 교회 형...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가해자들과,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치면 쉬어가며, 하지만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벌여 나가고 있었다.


내가 그들 중 가장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늦게 상담소로 향하는 그 계단을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오프라인에서 MeToo 사인을 수없이 보내주었던 평범이들. 나이도, 성별도, 외모도, 가해자와의 관계도 각기 다른 그 평범이들의 오프라인 MeToo운동이 결국 내가 그 소중한 순간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전부 각자 자신의 싸움을 한 것이지만, 스스로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향으로, 자신들만의 속도로, 자기 스스로를 밀고, 또 끌고 가느라 자신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개별자들의 싸움은, 멀리서 보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한 방향을 향해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나 같은 겁쟁이도 그 물살에 실려 동참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내 이야기를 신파로 느낄 만큼 변했다면, 이것을 한 인간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성과물인 것이다.


평범이들의 오래된 이 싸움은, 이 조용한 싸움과 소박한 치유는, 현재의 떠들썩한 MeToo운동을 있을 수 있게 한 토양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평범이들은 소박하지만 끈끈하게, 조용하지만 강단 있게, 무리하진 않지만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계속 싸우고 서로 보듬고, 이겨 나갈 것이다.


현재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이곳 캐나다에서도, 오프라인 MeToo운동은 새삼스럽지 않게, 여느 때와 같이 일어나고 있다. 얼굴이 검은 50살 내 친구도, 하얀 얼굴에 유난히 코끝만 빨간, 수줍음이 많은 내 친구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친구도, 무슬림 친구도,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첫째 딸인 내 친구도.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지루한 신파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아직은 내 신파를 좀 더 떠들대도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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