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쿨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 세상의 빛깔을 다시 찾았으면 됐지.
(21편 말미에 예고하기를, 22편에는 가해자의 사과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23편으로 미룰게요.)
가해자와의 만남,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 만남은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 끝맺음 자막이 주욱 올라가고 영화관에 불이 켜지면서 '진짜 끝!'을 알리듯, 그렇게 깔끔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난... 못 말리는 완벽주의자.. 혹은, 그냥 뒤끝이 긴 사람:)
예상치 못하게 휘몰아치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허감'이라는 희한한 감정에 실컷 휘둘리다 보니 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피해자인 내가, 어떻게 견뎌오고 어떻게 싸워왔는데... 내 안에 단 한 톨의 억울한 감정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를 직접 만났을 때, 내가 그렇게 어리바리하며 긴장한 채 나누었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찜찜했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까지 보낸 것들 중에서 가장 긴 이메일.
내 안의 감정의 찌꺼기들을 박박 긁어서 다 담았다.
"어쩌면 당신은 공증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그것으로 당신과의 관계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 것은 당신이 할 일이 그것이 다 여서, 당신의 책임이 거기까지여서 가 아닙니다. 당신이 수천번 가해가 교육을 받아도, 내가 당신을 고소해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도, 혹은 머리가 깨지게 나에게 두들겨 맞는다고 해도... 당신은 나의 고통을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당신의 나머지 책임분을 나 스스로 알아서 하려는 것입니다. ... 당신이 성폭력을 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믿었던 사람에게 아주 철저하게 배신당하며 성적으로 유린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억울함이 조금은 풀어질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증오하며 산다는 것은 형벌과도 같습니다. 당신을 놓아주는 것은 나에게 내려진 그 형벌을 나 스스로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발악입니다."
이렇게 사건을 마무리하며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찌꺼기들을 다 정리 해 냄과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가해자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었는지... 그 시나리오까지 다 토해내었다.
이메일의 마지막은,
"더 이상의 사과나 부가되는 변명이나 설명은 듣고 싶지 않고 들을 이유도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린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요. 이제 나 스스로 나를 치유할 겁니다. 우리 악연 여기서 끝냅시다."
그리고는 다시 난, 잔잔한 평정심을 찾게 되었다.
잔잔하지만,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쓰림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상태.
나쁘진 않았다. 근육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운동을 마구잡이고 한 이후에 느끼게 되는... 그 낯선 근육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 뿌듯함과 낯선 뻐근함이.. 솔직히 좋았다. 개운했다.
그리고 나를 한동한 휘감던 그 감정에 '공허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이젠 내가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마구마구, 내 마음대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느낌도 좋았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있었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이전과는 다른, 처음 맞이하게 되는 일상인지는 정확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어느 날,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뿌듯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학교 정문을 향한 내리막길을 혼자 타박타박 내려오고 있는데,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그 햇살을 가지고 마치 나와 장난을 치듯, 살짝 살짝 움직이며 내 눈을 자극하는데, 순간 알아챘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마치 어떤 막과 같은 것이 한 꺼풀이 벗겨지는 것 같이... 선명했다. 놀라웠다. 나뭇잎들의 연둣빛이 몇 배는 더 선명해졌고 그 사이사이 마구 흔들리며 내게 다가오는 햇살은 이전에 내가 보던 것들이 아니었다. 몇 배가 더 눈이 부셨다.
순간, '마약을 하면 모든 감각이 몇 배는 더 강하게 살아난다는데... 혹시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에는 내 눈에 무엇이 씌어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아예 없으니, 내가 보던 세상의 빛깔들이 당연히 이 세상의 본래 빛깔들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눈에서 무언가가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나니, 마치 라식 수술 받은 것 처럼, 원래 세상의 빛깔이... 이렇게 선명하고 이렇게 밝고 이렇게...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낸 기분 탓이려니... 하면서도 막상 내 눈 앞의 모든 것이 다 예쁘게, 생기 있게 보이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몇 년 뒤에 우연히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왜.. 이런 짧은 기사들 있지 않는가, 외국의 한 연구소가 실험을 했는데 뭐가 건강에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이런 토막 기사들. 내가 읽은 기사는, 외국의 한 연구소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우울증이 완화되자 그 사람들이 보는 사물의 채도가 높아졌다... 뭐 이런 기사였다. 즉, 우울한 기분이 사람의 신체, 특히 시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그 날 내가 본 나뭇잎과 햇살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선명하다고 느낀 그것이 어쩌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신체의 반응일 수도 있겠구나... 난 나뭇잎과 햇살의 타고난 본래의 빛깔을 그때서야 비로소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세상의 원래 빛깔이었는데 그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 이전에는 내가 잘 보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내 눈에 진짜로 무언가 뿌연 막과 같은 것이 있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의 채도를 낮추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난 생기 있고 씩씩하고... 약간의 돌아이 기질이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왔다기보다는... 그냥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칠 것 없이, 아주 행복하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20대 중반의 나는 지금 30대 중반인 나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건 지금의 내가, 감히 20대의 미성숙함으로는 쫓아오지 못할 만큼, 너무 과하게 매력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당황하셨나요? 전 저만의 이런 뻔뻔함을 즐겨요:))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뭐든 능숙하게 잘 해 낼 수는 없으니까. 인간관계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하고, 못나게 혼자 울음보를 터트리기도 하고... 그렇게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그러던 몇 개월 뒤 어느 날,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서 이메일이 왔다.
가해자 교육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나의 가해자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태도로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알려주시기 위해 이메일을 주셨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