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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Oct 22. 2018

24.성폭력 사건의 매듭, 내 작품의 한 부분

: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한 조각. But, no prob.

(23편에 이어서..)


가해자 교육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상담 선생님의 이메일을 받고는 직접 찾아뵈어도 되겠냐고 여쭤봤다. 그냥 그 녀석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그 당시 나는, 감정이 다소 과잉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 얼마나 씩씩한지를 마구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이메일에서 내게 알려주신 내용을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셨고, 이런 말씀을 더하셨다.

“성실하게 교육받았어요. 똑똑해서 이해력도 빠르고요.”


...?


순간 당황했다. 선생님께서 무언가 잘못 말씀하셨거나 실수를 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내 머릿속에는 이기적이고 나쁜... 그런 망나니 같은 가해자일 뿐인 그 녀석이, 갑자기 멀쩡한, 심지어 똑똑하고 이해력이 빠르기까지 한 사람이라는 것이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괴물이 있었는데 그 괴물이 사람으로 묘사가 되니 그것이 당혹감을 불러일으켰겠지.

 

지금은 다만 그 녀석의 그 똑똑함과 빠른 이해력이 단순이 IQ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과 나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이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추측하는 것보다 그 녀석이 느끼는 죄책감은 더 클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


선생님께서는 상담소 밖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그 따뜻함이 감사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오래된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기 전까지, 지난 회(23회)에 소개한 이 사과문의 존재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꽤 의미 있어 보이는 사과문인데… 이렇게 까지 기억에서 없었다는 것이 되려 놀라웠다. 아마도, 완결된 것은 망각하고 미완의 것은 오래 기억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내 안에서 이미 매듭이 지어져서...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지도. (그래서 중학생 때 그 첫사랑은 오래 기억되나?)


지금에 와서 다시 곱씹어 읽어보니, 잘 쓰인 사과문인 것 같다. 꽤...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

문득 안희정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사과문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니, 많은 부분이 안희정이 피해자에게 전했어야 할 내용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많은 일들을 잊어버린 채 현재를 살 수 있고, 또 그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3회) 내가 너그러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내게 정식으로 다시 사과하는... 그런 짧지 않은 과정들이, 사과문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가해자가 있으신가? 그렇다면 어서 가해자 교육을 받고 피해자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길 바란다. 어쩌면 당신이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까지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사고에서 자유로워지고 많은 것을 망각한 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과거와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무언가를 잘라내었거나 지워버렸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 증거가, 바로 몇 주 전 꾼 꿈이다.


...

꿈에서 깼는데, 기억에 남은 장면들이... 가해자가 칼을 들고 날 위협하고 있었다. 그 칼은 식도 같은 것이 아니라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투박하게 생긴 팔뚝만 한 칼이었는데 (이건 아마도 내가 무협영화를 좋아해서...?), 꿈속에서 가해자는 노골적으로 나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불안감을 조성했고, 난 칼날이 나를 향하지 못하도록 가해자와 팽팽한 기싸움을 했다.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해자와 나 사이에는 숨겨지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꿈에서 깨면서 눈을 뜰 때, 순간적인 그 섬뜩한 기분이란...


어느 정신과 의사가 그랬다. 꿈 해몽의 적격자는 바로 꿈을 꾼 그 자신이라고. 사실 그 전에도 그 녀석은 내 꿈에 아주 가끔씩 나오기는 했는데, 꿈속에서 그와 나는 너무 멀쩡하게 잘 지내곤 했었다. 그래서 꿈에서 깨었을 때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기까지도 했었다. ‘너무 사이좋은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 꿈은 달랐다. 내 꿈을 분석해 보자면, 아마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제 마무리까지 몇 회 남지 않음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던,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 까발리면...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뭐 그런 것 같기도.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짜잔~!” 하며 완전히 무결한,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유리알 같은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저 꿈 얘기를 안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런 유치한 인정 욕구보다는,


난 내 무의식의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 한 조각의 두려움까지 부정하지 않겠다. 그 조각도 내 것이다. 광대가 여러 개의 공을 안정적으로 저글링(juggling)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 한 조각도 잘 갖고 놀 수 있다. 그 한 조각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할 수 없다. 그래서 난 괜찮다.”


이런 당당함을 더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유치한 분들이 아니니까. 강하신 분들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말했다. "자신의 삶의 예술가가 되어라." 예술이 뭘까? 끝내주는 몸매를 가진, 하지만 어디에서든 구입 가능한 바비인형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뒤샹의 변기 <샘>, 그냥 막 가져다 놓은듯한...하지만 우리는 그 변기 앞에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들을 해 보게 되고,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각자의 독특한 감상을 품은 채 뒤돌아 서게 된다. 왜냐면 그 변기는 다른 변기들 하고는 다르니까. 못생겨도 기괴해도, 예술가에 의해 단 하나의 유일한 것이 되었으니까. 이전에도 없고 현재도, 그리고 이후에도 다시없을, 복제가 불가능한 것을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자의든 타의든 일어난 모든 일들이, 성폭력을 포함하여,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내가 잘 소화해 내고 잘 품어 냈다면, 이미 나의 삶은 나만의 예술작품으로써 남들보다 조금은 더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러분들의 삶은 얼마나 예쁜가요? 독특한가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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