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ortbus Nov 11. 2018

27.성폭력 피해자, Short bus를 소개합니다

: 지금, 여기. 바로 당신 옆에:)

아래 설명 중에 몇 개나 '성폭력 피해자 다움'에 부합할까요?


_단발머리. 홑꺼풀의 평면적인 몽골리안 얼굴.

_당장 예쁜 것보다 늙어서 건강하다는 A형의 몸매.

_신문에서 정치면을 좋아함. 특히 올해 초부터는 한반도 정세에 심쿵!

_닭볶음탕, 치맥 당연히 사랑함. 닭발도. 하지만 죽기 전에 딱 한 끼가 허락된다면? 회!!(ft. 소주)

_말리부(럼)에 복숭아 주스 섞은 칵테일 사랑함.

_운동은 싫어하지만 걷는 것은, 하루 10시간도 가능.

_혼자 배낭 메고 떠나는 여행 좋아함. 혼자여야 낯선 사람을 만날 틈이 생기니까.

_저녁식사와 웹툰 챙겨보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

_프레디 머큐리에 빠져 있다가 BTS로 갈아탐. 그러다 최근 다시 프레디로...

_개인 대 개인의 관계맺음이 좋아서, 복잡한 결혼보다는 연인과 함께하는 비혼 선호.

_아직까지는 이성애자.

_이상형은 아인슈타인, 김어준 or 김C 같은 헤어스탈의 소유자.. 더티 섹시.

_여름엔 시원한 치마.

_바느질 취미. DIY 취미.

_잘 웃고 다녀서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 경비아저씨들에게 사랑 받음.

_대학생 때 학생회장.

_대학원 때는 연구 조교.

_사후/뇌사/조직 장기기증 서약.

_대학 때  연애. 그 이후로 몇몇... 하지만 '진짜' 사랑은 딱 두 번. 그리고...아직?

_눈 화장 좋아함.

_작년부터 브래지어 다 버리고 브라렛으로 갈아탐.

_No plastic life, 쓰레기 없이 살기에 도전 중.

_자기 안에 자리 잡은 도덕/불문율/윤리들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매우' 지루해함.

_무한도전 팬~

_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100번 이상 감상. 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 'Short bus'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희열에 가득 차 웃으며 오열...

_고양이를 엄청 무서워하지만, 독립적인 고양잇과 사람.

_친구는 별로 없지만 소수의 찐한 친구로 행복.

_북한에서 취직하고 싶은 꿈.

_어젯밤에는 티라미수를 만들어 먹겠다고 주방을 난장판을 해놓음.


이런 사람, 성폭력 피해자답나요? 아니면 본인과 닮은 점은 없나요? 본인이 아니라면, 친구 중에는? 직장 동료 중에는? 혹시 살면서 스쳐 지나간 인연 중에는 이런 사람 없을까요? 모두 다 아니라면, 혹시 크게 싸워서 절교한 친구 중에서 한번 찾아봐요. 재수 없어서 모르는 척하고 지내는 사람 중에는 반드시 있을 거 같은데...ㅎㅎ


이렇게 설명되는 사람은 짜잔!!

당연히 접니다. 제 친구들이 이 인형을 제가 만든 줄 알더라고요. 사실 저도 이 인형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닮아서, 흠칫--;놀랐어요.



막판에 이렇게 제 소개를 하는 이유는,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또 어떤 분들에게는 ‘우와! 나도 나도!!’하면서 읽혔을 제 이야기가 정말 특이한, 희귀한, 누군가의 이야기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또한 '피해자 다움'이란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싶었고요.


저는 제 삶을 특별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피해는 나를 설명하는 수천 개, 수만 개의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죠. 마치... 내 엄지손가락은 남들보다 좀 짧아... 뭐 이런 것처럼요. 다만, 제 삶을 소개할 때, '서른 살 이후로는 너무나 재미있는 삶'이라고 소개해 드릴 수는 있겠네요. 순간순간을 보석으로 만들어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비결을 살짝만 들춰 보여드리자면,

 

사랑을 대하는 태도:

사랑만큼은 원칙대로, 타협 없이, 완전히 연소하는 사랑을 추구하죠. 어떤 서양 철학자가 그랬는데요 (요즘 기억력이 좀;;), 사랑은 반드시 실패하는 모험이지만 누구나 도전하고 싶어 한다고... 저도 죽을 때까지 도전할 겁니다. 왜냐면, 꽃은 피면 지기 마련이지만, 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꽃 피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삶을 대하는 태도:

삶의 목표가 있었을 때, 전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목표 없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얼마만큼 재미있을 수 있나... 제 인생을 통해 실험해 볼 겁니다. 한 가지, 목표 비스무리한 게 있다면, 금기란 금기는 다 깨보기. 그렇게 하다 보니, 절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ㅎ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남을 사람은 다 남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게 진짜 인연이죠.

 

나 자신에 대한 태도:

통일 운동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길 원하기도 했죠. 누군가가 저더러 진보적이라고 하면 우쭐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긍정적인 수식어라도, 제 실존 앞에 수식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요. 집단의 이름으로 옳고 그름이 결정되어 나의 인간적 욕망을 조금이라도 저지한다면, 그건 노예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육체를 가진 감정의 덩어리로써 살다가, 이 시한부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한... 150년 뒤쯤?)



전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 옆 책상에서, 버스 속의 옆 좌석에서, 식당의 옆 테이블에서요. 어쩌면 여러분들과 직접 일상적인 인사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죠. 드라마나 영화 속의 뭔가 으스스한 복수의 화신이나, 히스테릭한 우울증 환자와 같은 박제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입체적인 사람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브런치를 시작할  한 8회 정도면 제 수다를 끝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1편 지리산 언니를 시작으로 너무 길어졌네요.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애초부터 단 하나밖에 없었는데...


“떠들어도 된다. 성폭력이든 뭐든, 마음껏 떠들어대도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또 서쪽에서 뜬다 한들,

그게 뭐?!”


:)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죠.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맞아, 맞는데... 조국만 없나? 학교도 가정도... 다 없는데 뭐. 없으면 쿨하게 떠나면 되지. 하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무엇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에게 맞는, 내게 편안한 가정, 학교, 그리고 조국으로 만들면 되지 뭐.'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떠들어 대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내 옆의 당신에게도, 그 옆의 또 다른 당신에게도... 힘이 될 수 있음을, 결국은 우리에게 힘이 되는 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한편이라도, 한 줄이라도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참... 멋 대가리 없이 글만 잔뜻 쏟아놓았는데ㅎ 쪼금 아쉬운 건 여러분들이 너무 고요하게 읽고만 가신 거? 조심스러워서였을까요? 하지만 뭐.. 전 재미있었어요:)


여러분들 모두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삶을 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Done.


*이 공간을, 제 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조금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연재라서...

*혹시 저한테 수다 떨고 싶으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제 이메일: noframe01@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26.몹쓸짓? 아니죠~ 성폭력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