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 J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 J.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바랐던 것은 딱 하나야.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도, 성폭력의 기억으로 인한 그 검고 끈적끈적한 덩어리를 마음 한 구석에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내 글을 읽기를 바랐어. 그리고는 '어? 뭐지 이 여자? 성폭력 피해자가 뭐 이렇게 떠벌리고 다녀? 그래도 돼?' 하는 충격, 놀람... 혹은 당혹스러움을 갖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어. 왜냐면 현재 내가 즐기는 자유 혹은 똘끼(?)의 시작이 바로 그 당혹스러움이었으니까. 얼굴의 모든 근육이 팽팽해질 정도의 당혹감. 내가 첫 번째 글에서 이야기했던, 바로 그 지리산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 성폭력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않아도 되는구나... 마구 떠들고 다녀도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구나... 그것까지만 확인시켜주고 싶었어. 그다음은 그 사람의 몫이니까. 누구도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익명의 누군가는,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어떤 사람이기를 바랐어.
다만, 그 첫 번째 사람이 내 친구인 J, 네가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네 :)
네가 보낸 그 카톡을 보며, 내 글에 응답해 주어 고마운 마음이 반, 또 지금껏 처절하게 혼자 싸워왔을 너의 그 길고 긴 어둠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기에,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이 반이었어. 그리고 너라는 사람을 내가 조금은 알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잘 해 내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지금까지 보다는 분명 더 나아질 너의 내일을 미리 축하해 본다. 이미, 적어도 한 사람, 나에게는 너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나누기 시작한 거잖아. 입으로 자꾸 떠들고... 글로도 쓰고... 이런 게 내게는 도움이 되더라고. 고맙다. 말해줘서.
2005년 성폭력 상담을 받던 시기에, 수업시간에 내 피해 경험을 발표한 적이 있어. 그땐 나도 어렸고... 그 수업을 듣던 친구들은 더 어렸었지. 난 펑크 난 학점 때문에 들었지만 원래 그 수업은 새내기들을 위한 수업이었거든. 그 수업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학생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지. 어렵사리 당당한 척했지만 말이야. 수줍음... 보다는 뭔지 모를, 아마도 수치심에 가까웠을 거야.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겠다는 것은 나의 결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첫 시도였고... 모든 것이 다 어설펐거든. 그 교실에 있던 30명 가까이 되던 학생들과 선생님까지 모두를 힘들게 만든 시간이었지. 아... 여전히 민망하고 창피하다 >., <
지금은 웃지만 그땐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교실을 가득 채워버리자, 학생들이 살짝 원망스럽기까지 하더라. 내 생각만 한 거지... 그 친구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니. 이후에 상담 선생님한테 그 이야길 했어. 내가 원하는 반응들이 아니었다고, 학생들을 원망하면서.
"OO씨 그 얘기하면서 지금도 얼굴이 빨개졌는데요? 본인이 아직 그렇게 힘든데... 너무 조급하게 스스로를 채근하지 마요."
맞아. 난 그때 나 스스로도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고. 모두 다... 나도 그들도 시작은 항상 서툴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성폭력을 당했던 10~11살 때 이후로 10여 년간을 아무튼 잘 버텨왔는데...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너에게도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어쩌면 너는 너에게 가해진 폭력에 맞서지 못했고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넌 죽지 않았고, 너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네 스트레스 해소의 희생양으로 삼지도 않았고, 사랑도 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나름의 멋진 성과들을 내며 버텨왔잖아. 그것만 해도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거라고 생각해 난. 더구나 J, 넌... 내가 항상 wanna be로 여기는 친구인걸.
네가 나에게 말했지? 난 잘 극복한 것 같다고. 극복했으니까 이렇게 글도 쓰고... 그럴까?
대학 3학년 땐가... 학교 선배들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장애가 있는 분이 동석을 한 적이 있어.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 뵙는 분이어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그랬었지. 술자리가 조금 무르익었을 때쯤, 한 선배가 그분을 약간 추켜세우려는 듯이 이야기를 했어.
"선생님은 장애가 있으신데도 잘 극복하시고 사회생활도 활발하게 하시고... 대단하십니다."
순간 나는, 뭔지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극복'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리더라. 이유는 스스로도 잘 몰랐어. 뭔가 좀...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하는 그냥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사회생활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건데요 뭐. 몸이 불편하니까 당연히 남들보다 다른 노력을 좀 더 해야 하지만, 근데 또 그만큼 얻는 것도 커요. ... 그런데요, 난 그 '극복'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동생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거예요:) 사람들은 장애인들에게 장애를 극복한 누구누구.. 이렇게들 이야기하는데... 그 '극복'했다는 거는 뭔가 나쁜 것을 뛰어넘었다는 거, 없애버렸다는 것를 의미하는데... 난 내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남들하고 좀 다른 거... 그렇지만 그것도 나의 일부분이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많은 것 중 하나니까요."
신체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지만, 난 나의 상황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나에게 교통사고가 나버린 거야. 아니면 강도의 피해를 입은 거지. 심각한 사고의 피해자는 신체적으로 장애를 입기도 하고 상처가 아문 이후에도 그 후유증이 오래가잖아. 어쩌면 평생.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비가 오려나~' 하면서 다쳤던 부위가 결리고 쑤시기도 하지. 또 어두운 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본 사람은 비슷한 그림자만 봐도 심장이 쪼그라들고 아드레날린이 요동쳐서 제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기도 하잖아. 그렇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안고 살아가잖아. 물론 상처를 완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분들이 그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치스러워하거나 자신의 사고/사건 경험에 대해서 입 다물고 자책하며 사는 건 아니잖아. 오히려 어떤 분들은 영웅담처럼 부풀려 이야기하기도 하지:)
나도 그래. 난 나라는 한 사람의 역사에서 이미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그 성폭력 피해 경험을 도려내거나 지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일단은 그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없애버리면 현재의 나는 아마도 전혀 다른 내가 되어버릴 거야.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지 상상이 잘 안 가긴 하는데... 난 그냥 지금의 내가 좋아. 그래서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한 모든 경험들, 그 경험들을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어. 그래서 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이지만, 혹은 피해자답지 않게’ 사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난 '피해자이고' 또한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을 좋아하고, 치마 입는 것을 좋아하며, 200살까지 해야 할 wish list가 가득 차있는 사람이지. 어떻게 하면 매력 있는 저 남자를 꼬셔볼까... 그런 궁리도 하면서:)
물론 아동+친족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달래 가며 살아야 할 거야. 마치 당뇨나 천식 같은 만성질환처럼. 면역력이 약해지면 잠잠하던 질병들이 사람의 신체를 괴롭히듯이, 내가 정신적으로 불행해지면 그 트라우마는 불쑥 고개를 들고 날 괴롭힐지도 몰라. 하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완전무결하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있다고 해도 난 마냥 부럽지만은 않을 것 같아. 왜냐면 말이야... 난 크게 넘어져 봤기에, 넘어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줄 수 있고, 깊은 상처가 나 봤기에,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보면 무슨무슨 약이 잘 듣더라... 조언도 해 줄 수 있거든. 그래서 35살인 지금의 나보다 45살, 55살... 나이를 더 먹은 나는 아마도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 몸과 마음의 일부인 그 성폭력 트라우마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잘 관찰해 가면서, 또 살살 달래 가면서. 다른 피해자들에게 지금처럼 조잘조잘 수다도 떨면서 말이야.
: What have you done wrong? Tell me, how have you sinned? I'm sure it's nothing serious.
: How would you know?
: Well, I'm-- I'm sure you did your best.
영화 Short Bus에서의 대사야. 난 너의 성폭력 피해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언제였는지, 어느 정도로 심각했는지 잘 몰라. 다만 내가 확신하는 건, 넌 그 상황에서도, 그 이후의 너의 인생에서도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거야. 그래서 너의 그 아픔이 결국은 너를 더욱 빛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성폭력의 피해가 그냥 피해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너만의 내공이 될 거야. 이미 네가 느끼지 못했더라도 그래 왔음이 분명해.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에게 반하지 않았을 테니까.
잊지 마. 넌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빛나는 사람,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