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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Jul 05. 2022

성추행피해자만 빠지면... 모든 게 '정상'인데...

내가 조직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제 글에 정기적으로  '좋아요'를 꾸욱 눌러주고 계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 글에 댓글 달으셔도 됩니다ㅎㅎ 예를 들어, 본인이 저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지,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어떤 선택을 하실지.. 등등. 이런 말씀드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성범죄의 피해생존자에게 마음으로는 공감을 해 주시돼 말을 건네는 것을 어려워하시더라고요ㅎㅎ 안 그러셔도 된다는 말씀드리는 겁니다~ 꼭 공감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글들처럼 본인의 생각, 의문, 이의를 제기하셔도 됩니다. 성범죄는 특별한 사람한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이렇게 글을 써서 성범죄 피해생존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에 제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점심도 먹고,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남자 친구가 없음에 외로워도 하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하실 말씀 없으시면 당연히 안 하시는 거지만 그저 노파심에 말씀 건네 봤습니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방은 다르지만, 한 건물의 한 층에서 함께 있는 분들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신다. 나에 대한 악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모르겠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으니.

 

다만 내가 성추행 가해자를 고소한 이후로 ㅇ교수님께 '참고인'으로 경찰의 전화를 받으실 수 있으니 스팸 전화라 생각하지 마시고 전화를 받아달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왜 자꾸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짜증을 좀 내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과거처럼 나와 식사를 같이 하지도 않고, 마주보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업무 관련 카톡만 간단히 하며 지내신다. 물론 그분 입장에서는 다른 일 때문이라고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니, 내 입장에서는 내가 가해자를 고소한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른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복합적일 수도 있는 것이니. 그러니 가끔가다 하는 카톡 대화에서 나도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러면 그분도 나에게 짜증을 내신다. 서로의 감정이 브레이크 없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층에 있지만 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 컴퓨터를 마주한 채 하루에 입 한번 열지 않고 퇴근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연구회의 회장님께서도 나의 문제를 굉장히 어려워하신다. 특히 내가 ㅇ교수가 내게 한 말 '2차 가해'라고 명명하자, 그 이후로 더욱 어려워하신다. 이해할 수 있다. 합리적인 분이시지만 60세가 넘으신 그분 입장에서는 '지금껏 살면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어렵다. 연구회도 생각해야하고 ㅎ박사(=나)도 생각해야하고 ㅅ박사(=가해자)도 생각해야 하고 ㅇ교수도 생각해야하고..."라는 그분의 진심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분의 힘든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분께 죄송하다. '내가 초래한 일이 아니다..', '난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아무리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봐도, 나와 관련된 일에 이 분이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에 대해서 송구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자꾸만 '나 하나만 빠지면, 나 하나만 입 다물면, 연구회의 회장님도, ㅇ교수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연구회도 '원활히' 운영될 수 있을 텐데. 심지어 가해자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잘' 지낼 수 있을 테고 ㅇ교수와 가해자도 예전처럼 불편함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테고...'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가 모두에게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버렸군.


주변 사람들이 원래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었을수록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인간사는 원래 복잡다단하니까. 흑백논리로 이쪽은 좋은 사람, 저쪽은 나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매일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이 공간. 이 곳에 있으면 나의 미래가 조금은 더 안정될 수 있고, 조금은 더 발전할 수 있고, 조금은 더 따뜻할 수 있었을 것 같던 이 공간과,


그리고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농담도 나누고, 영화도 같이 보고.... 특히 지난 대선과 지선 때 누가누가 이길 것인지에 대해 피자 한판 내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을 나누던 동료이자 멘토였던 분들과 헤어져야 할 것 같다.


오늘 ㅇ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두 달 뒤에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불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나는 내 발로, 스스로 이 조직을 떠나는 것일까?

그런데 난 뭘 잘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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