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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Mar 05. 2018

6.성폭력 피해자들의 나쁜 습관

: 가해자들에게 배워야 할 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여성들은, 그리고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최근 온갖 매체에서 굵직하게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MeToo운동을 당연히 반가워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운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약자에 대한 권력형 범죄인 성폭력이 줄어들고, 남성 중심적인 성에 대한 담론들이 약자, 여성, 피해자 중심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될 것 같은... 그런 희망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


역설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인 나는 우리 사회의 MeToo운동 때문에, 좀 더 정확히 지목하자면, 우리 사회의 MeToo운동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 때문에, 요 근래 매우 우울했다. 뭔가 찜찜하고 불쾌하고 흙탕물 속에 침전되는 듯한 느낌. 뭘까? 왜일까? 


처음에 안태근 사건이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는, '아, 내가 성폭력을 당해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피해자에게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구나.' 정도의 감정적 변화가 있었다. 다소 씁쓸하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뭔가 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희열도 느끼며.  


그러나 차츰, MeToo운동이 문화계, 특히 일반 대중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연예계로 퍼져 나가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잘못되고 있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고, 한 일주일 동안은 그 우울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리고는 덜컥 겁이 났다. 


'MeToo운동은 분명히 긍정적 운동인데... 아마도 '내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렇게 우울한 걸 거야. 다른 사람들 같지 않게. 근데 그러면... 앞으로도 이런 사건들, 이런 운동들이 일어날 때마다 난 우울 해질 건가? 그렇게 된다면.. 난... 어떡하지?'


성폭력 트라우마를 당뇨나 천식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잘 달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금까지 잘 해 왔듯이 앞으로도 '그 까이꺼' 큰 문제 아니라고 여겨왔던 나이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 변화, 사건들에 의해 내 삶이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 속상하고 새삼 억울했다.  


그런데 그때,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10여 년 전, 하얗고 동그란 테이블을 마주하고 상담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그 이야기는, 마치 누군가가 고무공을 가볍게 던져 내 뒤통수를 맞춰버린 것 같은, 약간은 시원한 충격을 내게 주었었다. 마치 가까운 친구가 내'정신 차려 바보야!'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주듯이.


"OO 씨, 살면서 성폭력 피해 때문에, 그 기억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어요?"


...  


"음... 선생님, 저기..."

내 얼굴은 붉어지고, 고개가 자동으로 숙여졌다. 목소리는 점점.. 모기 소리처럼 기어들어가고.


"제가 고등학생 때요, 담임선생님이 남자분이었는데... 제가 자꾸 그 선생님... 성기 부분에 눈이 가고.. 그랬었어요."


상담 선생님의 조용하고 얕은 한숨이 바로 뒤따라 왔다. 그리고 선생님의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그리고 약간의 조바심마저 묻어나는 목소리... 


"저는 개인적으로 성폭력 가해자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도 의무적으로 상담을 몇 회 이상, 이렇게 받게 했으면 좋겠어요. 받게 해야 해... OO 씨, 고등학생 때는요, 누구나 그래요. 남자든 여자든 성에 관심이 많이 가고, 2차 성징이 완성되면서 주변에 있는 남자나 여자 어른의 신체에 눈도 가고 관심도 가고 그래요. 그거 너무 정상적인 호기심이에요. OO 씨가 성폭력 피해자라서 특별히 그런 거 아니에요."


... 통!! 

고무공이 내 뒤통수를 쳤고 맑은 공명음이 내 안에 잠시 울려 퍼졌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내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는 "아!"하는 짧은 깨달음의 소리.


그랬다. 내가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의 신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나의' 성폭력 피해가 '나의' 정신세계를 왜곡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정상적인 10대 후반 청소년이 가질 수 있는 성적 호기심이었던 것이다. 특히 나의 담임선생님은 여자 고등학교의 남자 선생님으로서,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학생들도, 그리고 학생 들 중 소위 '노는' 친구도 좋아할 만큼 매력이 있으신 분이었다. 물론... 여자 고등학교에서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어서 더 그랬겠지만:) 키도 크고, 운동도 좋아하시고, 쇼맨십도 있으시면서... 아무튼 인기가 제법 있는 분이셨다. 난 그저, 상담 선생님의 말씀처럼, 별 이상 없는 멀쩡한 고등학생이었는데, 괜히 '나 스스로' 내게 일어나는 생각, 감정들이 그 전의 그것들과 다르다고 해서 성폭력 피해의 후유증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내 탓'이 아닌 것을, '내' 성폭력 피해 때문이 아닌 것을, 혼자 수치스러워하고 속상해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성폭력 피해자가 갖고 있는 하나의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습관은 MeToo 운동 속에서 내가 우울함을 느낄 때 역시, 그 원인을 '나'의 문제, '내가' 겪은 성폭력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뻔뻔한 가해자들은 남 탓도 잘 하던데 왜 피해자들이 엉뚱하게 자기 탓을 이리도 잘 하는지. 가해자들은, 저 여자가 먼저 꼬리를 쳤고 원래 헤픈 애라느니, 건강한 남성으로서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느니, 술 때문에 기억이 안 난다느니... 자신의 비겁함과 자신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의 원인들을 자기가 아닌 자기 밖에서 잘도 찾아내어 주장하는데... 그리고 남성 중심적 사회는 그 주장을 잘도 인용하고 믿어주는데... 왜 피해자들은 그런 덕목(?)이 부족한 건지.  


결국 최근 내가 우울했던 것은, 단지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서가 아니라, MeToo운동을 선정적으로 다루기만 하는 준비되지 못한 언론의 태도 (나는 이것을 제3차 가해라고 부르고 싶다)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내가 피해 경험자라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성폭력에 노출되었었고, 그랬기에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구조, 가정의 문제, 페미니즘 등, 권력형 범죄인 성폭력과 관련된 책도 읽고 고민도 많이 했기에 더 민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의 민감한 감수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키워나가야 할 덕목이지 결코 성폭력 피해자의 결함이나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지점인 것이다.  


'나 때문이야, 내가 겪은 일 때문이야.'라고 자책하는 약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 무언가 불편하고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할 때 그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게 된다. 사회학자 뒤르켐이 자신의 저서 '자살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지금까지 개인의 선택, 개인적 문제로 치부해 오던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인 요인들, 사회적 규제나 압력에 의한 것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을 먼저 탓해버리는 그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언론이, 가부장제가, 교육이 구조적으로 어떤 모순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이 나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특히 그것들 때문에 내가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사색하는 연습이 좀 더 필요하다. 


남 탓, 사회 탓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자라고 교육받고 성장해온, 한국사회라는 구조는 일반적으로, 특히 여성에서 지속적인 자기검열 (옷차림, 웃는 모습, 앉는 자세, 삶의 태도, 등등) 강요하고 있기에, 과하게 주어지는 자기검열의 압력에서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강자들은, 사실 그들이야말로 자기 검열을 해야 하지만, 남 탓을 너무도 잘 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에게 조금은, 그 태도를 배워야 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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