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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Mar 10. 2018

7.끊이지 않았던, 또다시 내게 일어날 성폭력.

: 이젠 제대로 준비하고 기다린다. 성폭력은 근절되지 않기에.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범죄 중의 하나인 성폭력은,

... 근절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근절된다 할 지라도, 그 순간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사회의 여성인 나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을 해야 했다. 성폭력이 내게 또다시 다가오면 어떻게 대응을 할지. 이번에는 이렇게까지 해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해봐야지. 그리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또...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생한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돌렸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하교 길이었고 난 하복 치마 주머니에 두 손을 쿡 찔러 넣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던가... 아무튼 대낮이었고 그다지 좁은 골목길도 아니었다. 저기 저 앞에 남자아이 두 명이 스쿠터를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대충 봐서... 기껏해야 내 또래? 혹은 한두 살 정도 많았을 남자 청소년들이었고 노란색 스쿠터를 타고 있었다. 한번 흘깃 쳐다 보고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유난히 스쿠터의 속도가 느렸기에 '초보운전인가...?'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이 남자아이 두 명 중 스쿠터의 뒤에 앉은 남자아이가, 결국은, 내가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을 때 내 왼쪽 가슴을 탁! 하고 치고 달아났다. 그리고는 초보운전은 웬걸... 부아앙!!.. 소리와 함께 쌩 하니 도망을 갔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주머니에서 손도 빼지 못한 채 그저 뒤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두 남자 아이가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화도 나지 않았고 그냥 멍... 했다.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고 달려가 발길질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인상도 쓰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기에 왼쪽 가슴이 아프다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집으로 그냥 돌아와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어주는 엄마를 마주했다. '얘기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몇 초간은 한 것 같다. 얘기하지 않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 하지만 아마도 가슴을 누군가 치고 지나갔다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들어서 그랬었겠지. 그렇지만 다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난 오빠에게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것도 입을 다물 었는데... 이것까지 입 다물면 안돼. 내가 또 얘기를 하지 않으면 난 앞으로도 이런 얘기를 절대 하지 못할 거야. 타이밍을 또 놓치면 안 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날 즉시 꼭 안아 주셨다. "괜찮아 괜찮아. 많이 아팠어? 괜찮아? "라고 물어봐주시고는 "별거 아니야 괜찮아" 하시며 날 쓰다듬어 주셨다. 엄마에게 이야기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내내 생각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꼭, 최소한 소리라도 질러야지. 그땐 꼭, 화라도 내야지. 이번처럼 이렇게 당황해서 멍하니 서있지만은 말자. 꼭 뭐라도 하자...



고등학교 3학년 때 야자를 하고 친구들과 집에 돌아가던 길. 이제는 흔한 개그 소재가 되어버린, 바로 그 여고 앞 바바리맨을 마주했다. 어두 컴컴한 골목길의 가로등 아래에서, 그 바바리맨은 마치 우리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열어젖혔다. 물론 당황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여서 용기가 났고, 중학생 때 다짐했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하자. 목소리라도 내자...


"저기요!! 어차피 거기 서 있어도 안보이거든요?! 관심 없거든요!!"


이렇게 내가 소리를 치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는 가로등 불빛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친구들과의 웃음으로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꼭, 최소한 욕이라도 하자. 존댓말 쓰지 말고 꼭 욕을 하면서 화를 내보자...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두운 골목이었고 오르막길이었다. 꽤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헉헉 대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오르막길 꼭대기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실루엣만 얼핏 보였지만, 순간적으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마도 머리가 짧은 스포츠머리였고 덩치가 크지 않아서 그렇게 넘겨짚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 저 학생은 아마도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나 보다. 착하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집으로 가기 위해 계속 오르막길을 올랐고 그 남학생은 나를 마주하고는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우리가 서로 엇갈릴 무렵, 그 남학생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내 엉덩이와 다리를 두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갔다. 그런데, 그 남학생의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나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아주 아주 크게 소리를 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너 이 새끼 잡히면 나한테 죽는다!!!"


우와.... 나 스스로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내 목청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도 아주 순발력 있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적으로 내 목소리가 미사일처럼 발사되었다. 살면서 그렇게 큰 소리를 질러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욕을 해 본적도 처음이었다. 그 남자는, 처음부터 다 계획하고 내리막을 택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내리막을 마구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도망가는 그를 보며 마구 소리를 치고 있었다. 곧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내 심장은 마치 튀어나올 것처럼 계속 쿵쾅거렸다.


그런데 그 두근거림은 수치심이나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희열에 가까운 흥분이었다. 그렇게 큰 목소리의 욕설이 내 목구멍을 통해 거침없이 발사된 것에 대한 희열이었다. 난 그날 낯선 사람이 내 몸을 만진 것보다, 내가 그에게 욕을 한 것이 더 중요했고 나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우와... 나도 소리 지를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구나...


그동안 머릿속에서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덕분에, 내 목소리는 자동 발사되어 터져 나왔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내 두 다리는 여전히 꼼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내 몸은 일시 정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꼭, 최소한 움직여 보자. 목소리뿐만 아니라 내 몸을 써서 분노를 표현해 보자...



2014년 봄, 직장에서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야근을 하고 10시쯤 됐나.. 집으로 돌아는 길이었는데 그 길의 오른쪽은 공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키 작은 가로수가 조금은 빽빽하게 서 있었다. 횡단보도로 향해 가는 내 앞에 왠 왜소한 남자가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바바리를 입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바바리맨. 나를 향해 자신의 성기를 꺼내고는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나의 반응을 기대라도 하듯이. 안 그래도 야근이라 지치는데... '이건 또 뭔가..' 하는 짜증이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내 발검음의 속도를 늦추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걸음 그를 향해 걷자 그가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렸다. '젠장... 별것도 아닌 게...' 피로감과 짜증,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횡단보도에 도착해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 횡단보도는 꽤 컸고 길을 다 건너기 위해서는 도로 중간에 있는 인도에 멈춰 서서 또 다른 횡단보도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다소 어두웠지만 차도 많이 다니고 사람도 꽤 있는 대로였는데... 그 남자는 그 횡단보도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다른 여성을 성추행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신체접촉은 없어 보였지만 그 남자는 그 여성의 등 뒤에 딱 붙은 채 서 있었고 그 여성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등 뒤에 그렇게 밀착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을 텐데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는 남자들이 한 4~5명가량 더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난 그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여성이 놀라지 않도록 길을 물었다.

 

"저기요, 여기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지하철 역이요? 저기 길 건너서 왼쪽으로 가셔야 하는데..."


"음... 잘 모르겠는데 좀 자세히 알려 주실래요?"


라고 하면서 난 그녀의 오른쪽 팔에 팔짱을 끼고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 남자와 얼추 거리가 생겼을 때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저기 저 남자가 뒤에서 변태짓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길 물어본 거예요."


"아..! 그렇죠? 저 남자가 뭔 짓을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한데 무서워서 돌아보지도 못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행히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난 그녀와 함께 도로 중간에 위치한 인도까지 같이 이동을 했다. 그리고는 도로 중간에 있는 그 인도에 서서 또 다른 신호등을 기다릴 때는 그녀와 따로 서 있었다. 난 그 남자가 우리를 따라 신호등을 건넜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심하게 파란불을 기다리며 서 있다가 그녀가 서 있는 곳을 흘깃 보았다. 그 노출증 남자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를 따라왔고, 다시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물론 내 주변엔 몇 명의 남자들이 여전히 함께 서 있었지만 아무도 그 여성에게도, 그 노출증 남성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몰랐다고 믿고 싶다.


화가 났다. 노출증이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여성을 도와주고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계속 그녀에게, 자신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던 내가 아닌, 자신에게 겁을 먹고 얼어붙어 버린 그녀에게 추행을 하는 것을 보고는 화가 많이 났다. 


"저기요! 거기 그만 좀 하지! XX, 내가 그만하라 했잖아!" 


라고 외치며 일부러 발소리를 쿵쿵 내며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솔직히, 그 순간 좀 무서웠다. 왜냐면 그 인도는 매우 좁았고 앞뒤의 차도에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용기 있는 척했으나 끝까지 그 상황을 책임져야 했다. 그녀를 감싸 안고는 최대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을 때 다행히 신호가 바뀌었고 그 남자도 어디론가 다시 재빨리 사라졌다. 우리 주변에 서 있던 남자들은 무슨 일인가... 조금 쳐다보다가 각자의 길을 갔다.


그녀는 40대 초반 정도로 나보다 나이가 많이 보였지만, 나보다 왜소하고... 겁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사람이 많이 다니는 밝은 곳으로 데려다주고는 헤어졌다. 그런데... 내가 문제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난 어쩔 수 없이 골목으로 이어진 길을 계속 지나가야 했다. 그 남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르고... 그녀 앞에서는 씩씩한 척하다가 막상 그녀를 보내고 혼자가 되니 덜컥 겁이 났다.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는 가야 하고... 무조건 뛰었다. 한 5분은 쉬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집에 도착을 해서 문을 걸어 잠그니,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 오늘 잘한 것 같긴 한데.. 사람을 도와줘서 기분도 좋은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꼭, 경찰에 신고해 보자.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으로만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에 신고를 해서 다음 피해자를 막어보자... 그래 보자.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내가 사랑하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순수한 세계, 완전한 안전이 보장된 세계에서 살 수는 없다. 모르겠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사후의 세계를 그렇게 그려볼 수는 있겠지만, 일단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 누구도 완벽히 안전한 세계에서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모두 포함은 개념으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다른 모든 폭력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면, 매번, 참으로 창의적이고 참신하게 내게 다가오는 성폭력을 수동적으로 당하지만 말고 제대로 대비해 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많은 실패를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얼빠진 나를 두고 도망가 버린 적도 있고, 택시 안에서 택시 아저씨가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주무르며 날 희롱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얼른 내려 무조건 피해버린 적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의 안전을 위해 도망쳐야 할 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때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노려보기라도, 소리쳐 보기라도, 욕 해보기라도 하고 싶다. 그런 것들이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날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내게 가해지는 성폭력 역시 날 강하게 만들어 줄 뿐이라는 것을,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끌어안고 싶다.


그것이 현재 성인인 내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인 10살인 나에게, 화해를 청하고 그 당시에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행복하게 지켜내는 방법이라고 본다. 난 소중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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