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이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뤼팽>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처럼 현대판 뤼팽을 만날 거라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신출귀몰한 변신의 귀재, 명석한 두뇌를 가진 천재 도둑인 괴도 뤼팽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초반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 도난 사건, 세네갈 출신의 이민자로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파헤치기 위해 진실에 다가가는 주인공 아산.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좋았고 프랑스의 매력적인 풍경과 문화적인 배경이 한데 어우러져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웬걸, 극이 흘러가면서 긴장감은 느슨해졌고, 캐릭터와 스토리는 허술해졌다.
가장 나를 충격에 빠뜨린 에피소드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얻기 위해 교도소로 잠입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면회시간을 이용해 다른 범죄자와 신분을 뒤바꿔 교도소로 잠입하는데, 아무리 담당 교도관이 교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이 교도소에 잠입했는데 이걸 모르다니, 프랑스 교도소의 범죄자 관리 시스템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또한 아산은 자살한 것처럼 꾸며 교도소를 탈출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농구 골대를 이용해 몸을 지탱하고, 어떤 약을 먹어 심정지를 일으켰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스치듯 지나간다. 자살한 범죄자의 사체에 바스켓이 입혀져 있는데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잘난 척하듯 모든 트릭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던 셜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뤼팽 하면 변신의 귀재로 유명한데, 아산을 계속 지켜보면 다들 이 정도 변신으로 속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옷과 액세서리, 연기력으로 변주를 준다고 하더라도 아산은 맨 얼굴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다닌다. 심지어 아산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이목구비도 뚜렷하다. 경찰이 아산의 몽타주를 특정하지 못하고 신출귀몰하게 변신한다고 표현할 때는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극에 몰입하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키려고 해도, 글쎄. 뤼팽이 변신을 잘한다는 건 공감하지 못하겠다. 유명한 뷰티 유튜버들만 봐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분장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인 걸!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너무나 평이하다. 누가 봐도 아버지가 일했던 집의 주인이자 권세가인 펠레그리니가 누명을 씌운 나쁜 사람인데, 이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아무런 반전도 스릴도 없다. 예상 가능한 경로 안에서 무난하게 흘러가는 느낌인데, 심지어 시즌 1에서는 사이다도 없다. 진실을 파헤친다는 쾌감도 부족하고, 아직은 고구마만 꾸역꾸역 먹고 있는 상황이라 시즌 1을 하루 만에 다 몰아봤을 때는 약간의 허무감이 들었다.
물론 시즌1은 전체적인 극의 초반이고, 본격적인 스토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1처럼 차후 시즌도 진행된다면, 고전 명작 괴도 뤼팽의 명성을 이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대를 버리고 가볍게 보기 괜찮지만, 딱 그 정도였던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