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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세 Mar 20. 2021

인생에서도 부캐가 필요한 이유

영화 <킨키부츠>, 글렌디 밴더라 소설 <숲과 별이 만날 때>

MBC 놀면 뭐하니? - 부캐의 세계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소위 부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유산슬, 유르페우스, 닭터유, 유두래곤, 지미유 등 그가 소화한 캐릭터만 해도 개수가 꽤 되는데, 그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국민 MC 유재석의 여러 면모와 매력들을 뽐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싹쓰리, 환불원정대 등 여러 연예인들이 부캐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부캐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일까? 아니다.


우리 인생에도 부캐가 필요하다.


영화 <킨키부츠>와 책 <숲과 별이 만날 때>는 우리 인생에서 부캐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으며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킨키부츠>의 롤라는 사이먼의 부캐이자 또 다른 정체성이다. 그는 아버지가 원했던 건장한 흑인 권투선수 '사이먼'이 아니라 높은 구두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롤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의 부캐를 통해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혐오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해지는 법을 보여준다.


롱부츠를 신은 왼쪽의 다리와 맨 오른쪽 정장을 입은 남성이 바로 롤라이자 사이먼이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롤라'가 자신을 끊임없이 멸시하고 괴롭히던 신발공장의 '던'에게 팔씨름을 져주는 장면이었다. 롤라가 다 이긴 경기였지만 결과는 던의 승리였는데, 던이 롤라에게 이유를 묻자 롤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던 또한 롤라가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혐오와 야유를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번 기회로 던이 타인을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나라면 복수심에 불타올라 최선을 다해 이겼을 텐데 던의 상황까지 생각해주는 롤라의 마음씨가 참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사이먼은 롤라를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있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숲과 별이 만날 때>의 얼사는 부캐를 통해 끔찍한 경험과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조류학과 대학원생 조와 옆집에 사는 계란장수 게이브에게 갑작스레 나타난 이 꼬마 아이는 자신이 외계인이라며, 죽은 여자아이의 몸을 빌려 지구에 내려왔다고 말한다. 5개의 기적을 경험하면 자신의 별로 돌아가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얼사는 외계인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조금은 이 똑똑한 꼬마숙녀가 진짜 외계인은 아닐까 상상했었다.)


SF 공상과학 소설인 줄 알았지만,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는 잔잔하고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힐링소설이었다


얼사가 외계인이라는 부캐를 만든 이유는 진짜 현실을 마주하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아픔이 깊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엄마는 얼사를 성폭행하려는 남자들로부터 지키려다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가까스로 도망친 그녀는 자신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아마 얼사의 부캐는 생존하려는 그녀의 본능이 만들어낸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하고 모순적인 모습을 지닌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나도 끊임없이 변해가는데, 평생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는  오히려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부캐를 통해 여러 삶의 방식을 탐험하는 그들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다른 부캐들로 살아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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