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하고 있다. 언제고 한번 접영을 배워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 주변에 수영하는 친구들이 많아져 시립 수영장에 수강신청을 해봤는데 덜컥 되어버린 것이다. 한달에 딱 한번 있는 신청기회에 잔여자리가 3자리였는데 운 좋게 성공한 것. 아마 올해의 모든 운을 거기에다가 써버린 것 같다. 아무튼 한번 성공을 하니 영법을 완성할 때까지 재등록만 한다면 주욱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카르텔이 생겨버린 느낌이다. 이 소중하고 옹졸한 권력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수영을 처음 배운 건 7-8살 때다. 상도동에서 다녔던 강남국민학교는 오래되고 커다란 학교라 운동장 한켠에 수영장이 있었다. 방학이면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져 동동 떠다니던 작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같이 다니던 동생은 질려서 집에 가버리고 나는 물에 들어가면 발가락이 불어터질 정도로 놀았다. 그래서인지 그때 배웠던 수영이 아직도 자전거타는 일처럼 몸에 배어있다.
그래도 뭔가 제대로 영법을 배우고 싶어 초급반 중간에 들어가 평영을 배우고 있다. 무릎을 접고 발목을 꺾은 다음에 힘차게 차면서 발목을 피며 다리를 모은다. 숨쉬기. 거꾸로 하트를 그리면서 손을 쭉뻗어낸다. 하트를 그리면서 숨쉬기. 손을 뻗으면서 팔차기 피니쉬. 자연스럽게 하고 있던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순서를 생각하느라 몸이 따로 놀고 어색하다. 그래도 뭔가 다시 배우는 느낌이 좋다. 어른이 되서 익숙해졌던 일들의 목록을 적어놓고 연습해볼까. 예를 들어 양치질이나 젓가락질. 밥먹고 씹는 법,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 같은 것. 일년에 딱 한개씩만 다시 시작해봐도 낯선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아무튼 평영과 아침수영만으로도 꽤 낯선 시간을 보낸다. 아침 시간이 늘어나서, 더 많이 일한다. 수영을 마치고 사과나무에 가면 8시 30분이라 일찍 퇴근을 해야지 싶으면서도 할 일이 있으니 결국 퇴근시간을 넘긴다. 생산성은 좋아졌달까. 바쁜 8월이라 다행이지 싶으면서도,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분해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여름방학은 방학, 휴가는 휴가) 그러나 가는 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내내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짐의 반 이상을 물놀이 용품으로 채웠는데, 튜브는 펼쳐보지도 못했다. 비가 잠깐 개었을 때 아픈 호철을 해변에 두고 잠깐 들어간 바다에선 물벼룩에 잔뜩 물렸다. 여름 내 바다에 못갔다가 겨우 한번 들어갔을 뿐인데! 다시 바다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집에 오자마자 시내를 꼬셔서 저녁 수영을 갔다. 매일 아침에만 가서 시립수영장엔 할머니들만 가는 줄 알았는데 저녁에 가니 젊은이들이 꽤 많았다. 아침에 가는 내가 할머니였나.. 수영장 통유리로 보는 해질무렵의 하늘은 좀 근사하다. 수영장에 갔다 돌아와 집에 몇 시간 있으면 또 가고 싶다. 연가시가 생겼나......... 접영까지만 배우고 말려고 했는데, 다이빙을 배우는 것보면 다이빙도 하고 싶고, 오리발도 배워보고 싶다. 물에서 기운을 얻는 여름. 낯설고 익숙한 여름. 또 여름이 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