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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생각 6 : 존립의 위태로움

여성가족부 폐지 (w/ 코요 작가님)

by 본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혔고, 인수위원회는 여가부 폐지에 쐐기를 박았다. 인수위는 여가부의 업무를 부처별로 분산할지, 아니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조직을 만들지 등에 대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사실상 이러한 결정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처의 명칭 변경과 같은 표면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담긴 인식이 일으킬 파장이다. 윤 당선인은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줄곧 이야기해 왔지만, 그런 발언에는 여가부 존립의 필요성을 제 몸으로 느끼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여성이 처한 구조적 성차별에 관해서라면 정책의 전제가 되는 남성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당사자 여성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비당사자의 목소리로 차별을 지우는 방식에 불과하다.


현재 여가부의 업무 분산에 관해 진행되는 이야기를 검토해 보면, 여성인력개발과 청소년정책을 교육혁신인재부로 이관하고 가족정책을 복지가족부로 넘기겠다는 등의 논의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책을 다분히 기능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관점이 배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때, 여가부라는 독립 부처의 필요성은 자명해진다.


약 557조 가량 되는 정부 예산에서 2021년을 기준으로 여가부에 배당된 예산은 1조 1549억 원이다. 예산의 60%는 한 부모나 다문화 등 가족 돌봄에 사용되고, 20%는 청소년 정책 및 역량 강화에 사용된다. 여가부는 미혼모/부, 학교 밖 청소년, 경력 단절 여성 등 정상성이나 제도 바깥으로 내몰린 존재들을 위해 그 예산을 사용해 왔다.


여가부라는 독립 부처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부처가 단일 복지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특수성에 있다. 여가부를 통해 재취업을 지원받은 경단녀 여성은 부처가 폐지될 경우, 기존의 세세하고 폭넓은 지원이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미혼부 남성은 한 부모 가정을 위해 가장 힘을 쓴 부서가 여가부라고 말했다. 여가부가 새로운 부처로 통합되거나 분산되었을 때, 그들이 기존에 수행해 오던 보편 너머의 세심한 기능과 역할들은 어떤 식으로 존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사회적 소수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이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여가부 폐지 결정이 과연 기존 정책의 수혜자들이 내는 우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수의 입장에서 보편을 대변하는 정치는 특수를 은폐하는 정치의 형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참고 영상


- 코요 작가님의 글

: https://brunch.co.kr/@singwithm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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