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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생각 6 : 저열한 사회

여성가족부 폐지 (w/ 박어깨 작가님)

by 코요

대선이 치러지기 전에 오랜 지인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인은 여가부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표하면서 “나한테 무슨 덕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대선이 끝나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여성가족부의 새로운 명칭이 인구가족부로 고려되고 있다. 여성이 인간이 아닌 인구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여성은 인간의 기준점에서 한 단계 하락했다. 이제부터 여성은 재생산의 기능을 담당하라는 제도적인 명령은 무참히 실패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여가부 폐지’만을 보고 표를 행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저열한 이유는 자신에게 이득이 됨보다는 타인을 해하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이유를 물었을 때,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답한 것은 현재 여가부가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배제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설령 여가부에서 하는 업무를 다른 부처로 이관한다고 하더라도 ‘폐지’라는 단어에 실린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가부 폐지를 진중한 이유로 찬성하지는 않았다. 여가부 폐지라는 수는 지난 수수한 생각에 썼던 졸 내지는 병처럼 쓰였다. 아주 졸렬한 수를 두고도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과거처럼 왔다.

청소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교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만, 여가부는 상상 밖의 청소년들을 지원해왔다. 해바라기센터나 여성의 전화 같은 센터를 당장 없애지는 못할 테지만 상상 속의 평범함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단 일곱 글자로 숨을 막히게 했다는 것을, 말을 뱉은 사람은 다다음 생에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소년심판>에서, 쉼터에서 생활하던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탈출하고 연락이 두절되면 청소년들이 성범죄에 연루되기 쉽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이들은 88올림픽 때 밀어버린 사람들과 같은 존재, 불길 속에서 오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죽어간 존재, 허물어져가는 건물에서 뜨문뜨문한 가로등처럼 생업을 이어나갔던 존재, 죽은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거리에 나앉은 존재, 있어도 없어야 하는 존재다.

나는 평범한 삶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별 일 없이 눈을 떠서 별 일 없이 거리를 걷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집에 도착해서 적당히 즐거운 활동을 하고 잠에 들 수 있는 24시간 사이에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공포를, 위협을,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삶은 평범하지 않다. 정부는 개인의 일상에는 관심이 없지만 여성의 생리주기와 이성 간의 연애 여부에는 지독하게 간섭하는 눈치 없는 친척처럼 군다. 슬리데린 출신을 만들기 위해 발악하는 잡종의 처절한 몸부림은 안타깝지만 인구가족부에 협조하려는 사람들과 절대 협조하지 않을 사람들은 이번 선거 비율처럼 대등할 것이다.

나는 인구가족부의 말로가 처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가부가 와해되어 평범함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긴 수많은 생채기의 제곱만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부수고 쪼개는 것은 붙이는 것보다 쉽다. 그런 이유로 사회를 아우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 번 뿐인 삶에서 5년을 내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천천히, 뼈저리게, 오랫동안 체감하게 될 것이다. 시대는 영원하지 않으나 소명은 영생한다.


- 박어깨 작가님의 글

https://brunch.co.kr/@shoulder/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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