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돌파구

그루터기 8기

by 새미나

등나무 꽃이 흩날리던 계절, 제 몸보다 큰 남색의 교복치마를 입고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걷고 있었다.

충동적인 호기심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을까?장수에 있는 산서 중고등학교에서는 동아리가 몇 개 없었는데 내가 그중 택한 것은 그루터기라는 문학동아리였다. 쉬는 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면 시끌 벅적 모여서 대화를 하던 그들이 단지 궁금해서였다. 그 당시 수업시간이면 몰래 책상 밑에 만화책을 펴놓고 즐겨보던 소녀 셋이 있었다. 그중 제일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가 그 모임 안에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친구를 따라 한 발짝 걸어 그루터기에 들어갔다.


그때는 그곳이 내 숨을 틔여줄 수 있는 작은 돌파구 같았달까?

그루터기에 8기라는 기수로 소속되면서 나의 섬세한 사춘기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창작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연극, 수화공연, 전시회 등 내 마른 감성에 물 한 방울을 적셔주는 시작이 되었다. 내 감정에 서툴고 조그만 표현도 쉽지 않던 어린 시절, 글로 그림으로 연극으로 감정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거미줄 같이 엮여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던 것 같다. 엄격하고 장사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그 마음을 수돗물에 물감 풀듯이 훨훨 씻어내려 준 곳이었다.


시화전을 하면서 그 당시 내가 쓴 시 제목이 거미줄이었는데, 만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술선생님이 실제 거미를 그림에 접목해서 붙여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생각해 보면 그 거미는 그 당시 나였다. 거미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줄 위에서 위태로워하는 소녀.


대학을 갈 때에도 진로를 정하지 못한 나는, 동아리 선배와 글쓰기를 도와주셨던 선생님이 계시다는 학교와 과를 선택해서 가게 되었다. 막상 가서 글을 쓰진 않았지만, 같이 있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편했고 그 끈은 지금도 나에게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다시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을 때, 그때 알던 사람들이 지금은 꽤나 여러 명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동아리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다. 20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자신도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쓰고 싶었던 건지 그만큼 간절한지는 사실 모르겠다. 아니 그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만난 잘라진 나무의 둘레가 꽤 작았다. 처음엔 지저분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내가 어릴 적 만난 도서관 속 그루터기는 나를 충분히 품어주었던 작은 존재였다. 작아도 내가 지금 살아가는 큰 힘을 주게 하는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 저 작은 나무 그루터기가 내 추억을 이렇게 끄집어주는구나! 그루터기에 앉은 햇볕이 따뜻해 한 번 쓱- 쓰다듬는다. 다들 잘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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