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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친절이 필요한 순간(3)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읭? 16주 이후부터 안정기 아녜요?"

"사람마다 달라. 운 좋으면 예정일 전날까지 막 돌아다녀도 되는 거고, 운 나쁘면 열 달 누워 있어야 되는 거고 그러는 거야. 유산끼 있대면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샘.”

“그런 거예요?”

“응. 그게 그런 거야. 특별반 보충수업 박 샘 하고 텀 바꿔준 것도 박샘이 임신해서지?”

“예. 너무 초기라 무리하면 안 좋을 거 같아서요. 비밀로 해달래서 그땐 모르는 척했죠.”

“에이, 학교에서 임신은 비밀로 하면 안 돼. 가장 중요한 업무 파트너가 교실마다 이삼십 명씩 앉아 있는데.”

“애들요?”

“응. 초장부터 말을 해둬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어. 이러고 저러고 해도 애들은 애들이라 선생님 뱃속에 애기 들어있다고 하면 매너들이 확 좋아져. 두 번 대들 거 한 번만 대든달까.”

“일부러 못되게 구는 애들은 없겠죠?”

“그렇게 막장은 잘 없지. 나중에 배불룩해지면 한 번만 만져봐도 되냐고 그러는 애들이 종종 있어서 부담스럽긴 해도.”

“태동이 궁금해서?”

“응. 여자애들이 많이 그래. 가끔은 남자애들도 그러고. 그나저나 샘 어째? 이해는 하지만 짜증도 나겠네.”

“짜증보다는 부러움이 크죠. 업무야 뭐······.”

‘내 것 하는 길에 조금 더 하는 정도인데요.’라며 정답 같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일이 몰려도 너무 몰려 있었다. 연구부에선 다음 달로 예정되어 있는 박 선생의 연구수업을 은설이 대신해줄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박 선생이 연가를 낸 다음 주에는 교과경시대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은설이 박 선생이 담당하고 있는 반들의 채점까지 모두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설이 장난 삼아 던지는 볼멘소리 한번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잘해주고 싶어요. 저도 나중에 그 입장될지 모르는데.”

착한 척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동료교사 누구에게든 배려받게 되리란 생각이 들어 함부로 투덜댈 수가 없다고 은설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냈다.

“그치. 그리고 박 선생 입장이 자기가 쉬고 싶어서 쉬고, 쉬기 싫어서 안 쉬고 그럴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긴 하지. 유산끼 어쩌고 소리 들으면 일시정지 버튼 누른 것처럼 몽땅 멈추고 쉬어야 하는 게 맞아.”

“그래. 교사들이 반은 몸으로 하는 직업이라 초기에 유산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하긴 해야 해.”

여기저기서 아는 사람의 친척의 아내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임신의 고단한 과정에 대해 한 마디씩을 보탰다.

“남자 선생들도 마누라가 같은 교사인 경우가 많으니까 요즘은 임신이 벼슬이냐니 뭐니 하는 헛소리들 하는 경우 거의 없다고. 아 마누라 고생하는 거 옆에서 뻔히 봤으면서 그 지랄은 못하지. 강사 구하기 어렵다고 일주일 병가 쓰지 말라 소리 못해요.”

교무부장이 자신도 이러한 상황을 모두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티를 내며 한 목소리를 내었다.

김 선생이 비밀이라는 듯 입을 살짝 가리는 손짓을 하며 교무부장의 말을 거들었다.

“아까 또라이 교감이 부장님한테 뭐라 했어.”

“병가 많이 쓴다고?”

“응. 사람 구하기 힘든데 쓴다고. 부장님이 여차하면 보강 돌린다니까 보강비 나간다고 또 뭐라 하더라고.”

“헐. 보강 못 돌리는 거 아녜요?”

“그렇진 않을 거야. 대신 예산 부족해서 보강비 지급 못한다고 과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그럴지도 몰라.”




박 선생이 없던 일주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대부분의 공강시간은 박 선생의 수업 시간표를 메우는 데 쓰였다. 박 선생이 부탁했던 감상문 수행평가용 영상을 보여주기만 할 뿐인데도 종일 아이들 사이에서만 지내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작 자기 업무를 할 시간이 없어 은설은 사흘 연속 초과근무를 달았다. 일주일 후, 박 선생은 병색이 더 짙어진 모습으로 학교에 복귀했다.

“어머. ‘푹 쉬었어요?’라고 인사할라 그랬는데.”

“은설새앰. 나 때문에 고생 많았죠. 고마웠어요.”

박 선생이 보강비 대신 준비해 보았다며 초콜릿 한 상자를 내밀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쉬다 온 사람 맞아요?”

“입덧이 너무 심해서요. 거의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래요. 지난주에 사흘정도 입원도 했었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차라리 학교 나오니까 입덧이 좀 나은 거 같아요.”

“학교는 힘들 때마다 쉴 수가 없잖아.”

“네. 그래서 병가를 낸 거긴 한데. 그래도 좀 쉬어서 그런가 유산 끼는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네. 그래도 무리는 말아야지”

“그래서 말인데요, 샘······.”




박 선생은 은설에게 야간자율학습감독 대타도 부탁을 해 왔다.

“일주일 내내 고생하셨는데 또 부탁을 해서 미안해요, 샘.”

“아냐, 어차피 야근 달고 일하려고 했어요.”

라고 언제나처럼 또 사람 좋게 웃어 보였지만 은설은 슬슬 약이 오르려고 했다.

‘내가 만만해서 이러는 건가?’

하도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니, 급하고 아쉬운 상황이 되면 가장 격의 없게 지내는 은설에게 먼저 자꾸만 부탁을 하게 된다며, 박 선생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댔다.

‘아니야. 너 나 놀리는 거 같아, 지금. 안 겪어봐서 잘 모른다고 나한테 힘든 척, 아픈 척, 얌체짓······.’

“우웩-.”

박 선생이 은설과 이야기를 하다 말고 복도에 구토를 뿜었다.

“어머, 샘!”

곧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박 선생을 따라 은설로 냅다 화장실로 뛰었다.

“어머, 어떡해. 노란 물만 나오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괜······.”

하다가 박 선생은 결국 통곡을 해대었다.

“저 어떡해요 샘. 이러다 죽을 거 같아요. 엉엉.”

“아우, 어째. 입덧 너무 심하네. 힘들어서 어째.”

“아 맞다. 토해놓은 거······.”

박 선생이 주섬주섬 일어나 휴지를 한 움큼 뜯어내었고, 은설도 박 선생만큼 휴지를 뜯어서 물에 적셨다.

“샘, 숙이지 마. 내가 해줄게요. 헛구역질 끝에 좀 나온 거라 별로 치울 것도 없네.”

“아, 안 그래도 샘한테 너무 미안한데. 이런 거 뒷수습까지 같이 해주시고. 진짜 미안해요, 샘.”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우두망찰 해버린 신입생 아이처럼 박 선생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은설의 청소를 보조했다. 은설은 박 선생의 담임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그런 거니까. 미안해도 말고, 부끄러워도 말고. 마음 쓰지 말아요.”

싱긋.

늘 그랬던 것처럼 은설은 더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한번 더 지어 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은설샘.”

은설이 부축하여 여교사 휴게실까지 데려다주는 내내 박 선생은 서글픈 소리를 해댔다.

“살면서 지금처럼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임신이 축복인 줄 알았는데······.”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보이고 만 뒤여서 인지, 박 선생은 임신 때문에 고생 중인 자신의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임신과 동시에 민폐덩어리 신세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박 선생에게는 입덧만큼이나 힘든 일인 듯 보였다. 박 선생이 원래 업무도 깔끔하게 하고, 제가 연구해 놓은 수업자료를 은설과 나눌 정도로 수업에도 열의가 많던 사람이었단 걸 은설은 새삼 떠올렸다. 박 선생의 속상함을 이해하면서도 은설은 마음 한편에서 씁쓸함이 우러났다. 그녀가 겪고 있는 고뇌까지도 부러워하고 있는 자신의 속내를 직시하게 된 까닭이었다.


“나 미쳤나 봐, 샘. 샘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걸 옆에서 다 보고도 샘이 부러워.”

“미안해요. 내가 나 힘들고 속상한 생각만 하고 샘 마음 힘들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으응. 아녜요. 샘이 솔직하게 이런저런 얘길 털어놓으니 나도 마음이 편해져서 내 속내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누구 부럽다 소리 오래간만에 속 시원하게 했어, 나도.”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샘.”

“고만 미안해하고, 고만 고마워해요. 충분히 했어. 이제 더 안 그래도 돼. 그래야 나도 나중에 좋은 소식 생기면 맘 편하게 부탁도 하고 그러지.”

“새앰. 힝.”

“암사자 같은 동료애가 용솟음쳐 오른다아!! 어깨 펴요, 박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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