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자, 여기 커다랗게 자란 난포가 3개 있죠? 이 정도면 약물에 대한 반응은 꽤 적절한 편이에요.”
“성숙된 난포가 3개면 세 쌍둥이가 생길 수도 있는 건가요?”
세 쌍둥이 가능성을 물어보는 은설의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현준은 잡초의 새순을 밟아버리는 농부처럼 가차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뭐 운이 나쁘면요.”
“선생님 너무 해요. 산부인과 선생님이 세 쌍둥이를 운이 나쁘면 생기는 경우라고 하시다뇨.”
“주변에 세 쌍둥이 없죠?”
“네. 실제로 본 적은 길 가다 우연히 한 번 정도? 신호등 색깔로 옷 맞춰 입고 가는데 무진장 귀엽던데요. 부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림처럼 예쁜 장면이었겠지만, 그 그림이 되기까지 그 애들하고 애들 엄마는 목숨 걸어야 했던 순간이 열두 번은 더 있었을지도 몰라요.”
“치, 그런 거 걱정하시는 분이 왜 클로미핀 같은 거 처방해 주시는데요.”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무서워서 약 쓰는 걸 망설일 수는 없으니까.”
“그럼 만약에 정말로 세 쌍둥이 생기면 선생님이나 저나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걸로.”
“그건 인정. 하지만 가능성은 로또보다 적으니 너무 기대는 말아요.”
현준은 시종 부정적인 뉘앙스로 이야기했지만 세 쌍둥이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은설은 설레었다. 셋이나 낳아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정말로 생긴다면 주어진 운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은설은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그렇게 되면 하나는 떼어야지.”
“뭐?”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차린 푸짐한 저녁상 앞에서 결국 은설과 준수는 한 대거리를 시작하고 말았다.
“그런 거 있던데? 선택유산인가, 뭔가.”
“나보고 지금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내 새끼를 골라서 죽이라는 거야?”
“의사도 그랬다며. 위험한 거라고. 뭐 하러 목숨 걸고 모험을 해?”
준수의 반응은 현준보다 훨씬 더 단호했다.
“현실적으로 생각을 좀 해보라고 이 사람아.”
“그래. 현실적으로 생각을 좀 해보자고. 누구를 고를래? 누구를 골라서 죽여?”
“젤 약한 놈이 있겠지.”
“셋 다 튼튼하면? 위치도 좋고 그러면?”
“아무라도 하나 보내야지. 쓸데없이 버티고 그러다 자기 포함해서 넷이 다 잘못될 수도 있다잖아.”
“차라리 다 같이 죽어버릴래.”
“뭘 다 같이 죽어. 그럼 나는? 나는 뭐 어쩌라고?”
“새 장가들고 새 마누라 얻어서 다시 새 자식 낳아, 자기는.”
“됐네, 이 사람아. 장가 한 번 가봤으면 됐지 뭘 또 가나. 난 그냥 혼자 살 거야.”
새 장가를 가지 않겠다는 준수의 고백 아닌 고백에 은설은 기분이 묘했다. 자기 이외의 다른 여자는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자기와의 결혼 생활에 지쳐 두 번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도 들렸다.
“밥상 떡 부러지게 차려놓고 지금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야?”
“자기가 애를 하나 떼어야 하네 마네 소리를 했으니까 그렇지.”
“자기가 세 쌍둥이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나머지는 세 쌍둥이가 정말로 생기게 되면 하자.”
“그래. 의미 없다, 지금은.”
서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일어난 싸움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것이 곧 화해였다. 며칠 뒤의 숙제를 위해서 은설이 먼저 준수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꺼내었고, 준수가 좀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말을 받아주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세 쌍둥이 이야기를 더 이상은 꺼내지 않겠다고 합의했지만, 은설은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준수의 생각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후식으로 먹으려고 산 딸기 한 바구니를 몽땅 다 씻어 온 준수가 슬쩍 은설의 눈치를 보았다.
“딸기 맛있더라. 아껴 먹다가 시들면 속상하니까 다 먹어버리자.”
무어라 나무라지 않는 대신 은설은 궁금한 것 한 가지를 묻기로 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준수 씨. 정말 딱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뭔데?”
“세 쌍둥이가 왜 그렇게 싫어? 경제적인 거 때문에? 아니면 정말 나 힘들까 봐?”
“둘 다. 난 쌍둥이도 부담스러워. 물려받기가 안 되잖아. 무조건 두 개씩 사야 된대. 그리고 얼마 전에 인터넷뉴스 뒤적거리다가 진짜로 세 쌍둥이랑 산모랑 한꺼번에 다 보낸 어떤 남자 이야기도 봤어. 그거 본 뒤로는 은설 씨가 애 낳다가 어떻게 되는 상상만 해도 공포스러워.”
“요새 의학이 발달해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거야. 그러니까 뉴스에도 실렸겠지.”
“이 나이에 홀아비 되고 싶지는 않아.”
“진짜 새 장가는 안 들건가 보네?”
“그건 봐서. 은빛 진주만큼 이쁜 여자가 나 좋다고 쫓아다니면 재혼도 생각은 해 봐야지.”
“은빛 진주면 릴리로즈 메인보컬? 치이, 안 가겠단 얘기네. 딸기 실컷 드쇼, 서방님. 내일 한 바구니 더 사다 놓을 테니.”
당장의 고통은 세 쌍둥이 출산이 아닌, 세 개의 난포가 일으키는 배란통에 있었다.
“사흘은 방귀 못 뀐 사람처럼 배가 불룩해졌어요.”
은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준수에게 보여주었다.
“세 쌍둥이 임신한 것 같은 배네요. 축하해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근데 배가 빵빵히 부풀어서 그런가 뱃가죽도 당기고 숨쉬기도 불편하고 힘들어.”
“왜 그러지?”
“과배란 된 영향이겠지. 원래 있던 생리 전증후군의 강도가 10배씩은 세진 거 같아. ”
“그럼 배란되고 나면 은설 씨 성질도 10배 더 고약해지는 건가.”
“10배 더 조심하며 2주 보내도록 해요.”
“쳇.”
“아악!”
“왜 그래!?”
“배 아파. 대바늘로 누가 푹 쑤시는 거 같아.”
“아, 그러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니까 괜히······.”
준수가 뒷말을 삼켰다.
이미 먹은 약이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속풀이를 해봐야 안 그래도 불편한 은설의 심기만 건드릴 것이 뻔했다.
“베개 가져다줄게. 누워서 티브이 봐.”
베개를 가져온다던 준수가 따뜻하게 데운 물주머니 핫팩도 챙겨 왔다.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은설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대어 주고 핫팩을 은설의 아랫배에 올리며 준수가 말했다.
“어때요? 신랑을 서비스가. 만족스러워?”
“응. 백점 만점에 백점 줄게요.”
“오예! 그럼 부상으로는 내일 딸기 한 바구니!”
“두 바구니 사다 줄게요.”
“오예, 오예!”
‘오예’의 리듬에 맞춰 준수가 씰룩거리며 엉덩이 춤을 췄다.
“웃기지 마. 배 아파. 아이고. 배야.”
장난기를 섞었지만 은설은 정말로 배가 땅기고 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