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은설이 한 부장과 보건교사에게 다시 한번 정중히 감사인사를 하고 기범을 챙겨 교실로 올라왔다. 센스 있는 학급회장과 부회장이 가정통신문 배부는 물론이거니와 청소까지 다 마친 상태로 은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쓱 보니 엄청 깨끗해 보인다. 꼼꼼한 검사는 내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치? 다들 기다려줘서 고마워. 청소하느라 수고 많았어. 종례 끝!”
종례를 마치고 은설은 기범에게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서둘러 교무실로 내려와 부랴부랴 컴퓨터만 끄고 가방을 챙겨 퇴근하려는데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교무부장이 아는 체를 했다.
“이은설 선생님네 반 애 다쳤다며? 어떻게 됐어요?”
“괜찮은 거 같아요. 피는 이제 멎었어요. 응급처치는 보건선생님께서 해주셨는데 병원 데리고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지금 데려가보려고요.”
“학부모는?”
“병원으로 바로 오신대요.”
“손이라며. 다리 다친 거도 아닌데 혼자 보내지, 왜?”
“제 딴엔 처음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려보는 거라 애가 좀 놀란 거 같더라고요. 데려다주는 게 제가 마음이 좀 편할 거 같아서요.”
은설이 말꼬리를 대충 흐리며 슬금슬금 자리를 빠져나오려는 것을 교무부장이 알아챘다.
“그럼 데려다줘야지. 바로 퇴근하죠? 정신없다고 짐 놓고 가고 그러지 말고. 어느 병원으로 가요?”
“새날 병원이요.”
“아우, 거기까지 간 거면 퇴근 절반은 한 거지.”
“전 집이 멀어서 거기서도 퇴근길 시작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도루 돌아오면 억울하지. 내일 봐요."
시답잖은 농담이 길어지나 싶었는데 교무부장이 알아서 먼저 작별인사를 했다.
병원은 복잡한 시장 근처에 있었다. 병원 업무가 마감되기 전에 접수를 해야 해서 은설은 마음이 급해졌다. 곧바로 기범이를 태워 병원으로 갔고, 다행히 차도 막히지 않았지만, 도착을 하고도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기범이를 학부모에게 인계할 수 있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기범이 엄마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사과했다.
"아니에요, 어머님. 일단 가범이 접수는 제가 해놨어요."
기왕 기다린 김에 기범이의 진료 결과까지 듣고 가야겠다고 은설은 생각했다. 기범이는 마지막 진료환자로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기범이의 엄마는 기범이가 은설과 내내 함께 있었던 것을 몹시 다행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이 시간 즈음이면 응급실로 가는 게 나아요. 처지하는 데에 또 시간이 걸리니까 자그마한 개인병원에선 치료를 해주기가 난감할 때가 있거든요. 여러 가지 이유로다가.”
의사가 기범이의 상처를 살피며 한마디를 했다. 기범이의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기분이 상한 듯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배가 남산만 하게 나온 간호사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에도 친절히 웃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은설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몇 가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섯 바늘을 꿰매고 며칠 항생제를 먹는 것으로 기범이의 손가락 유혈사태가 일단락되는 것을 확인했으니, 굳이 약국까지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연신 허리를 구부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기범이 엄마와 기범이를 뒤로하고 은설은 평소보다 두 시간 가까이 느린 퇴근길에 오를 수 있었다. 운전을 다시 시작한 지 십여 분쯤 지났을 때, 은설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약 먹는 거 까먹었어!! 어뜨케에!”
시간 맞춰 챙겨 먹는 것이 생명인 약을 두 시간이나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이 하필이면 운전을 하고 있는 차 안에서 생각이 났다.
휘청.
“엄마야”
허둥대는 사이에 차가 한번 기울었다 제자리를 찾았다.
“정신 차려. 이러다 죽겠어!”
은설이 자신의 뺨을 찰싹 소리가 나게 두 번 내리쳤다. 곧 신호에 걸렸고, 은설은 지갑 안에 보물처럼 모셔두었던 페마린을 꺼내었다.
“물이 없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냥 삼켜?”
안 될 말이었다. 마른입으로 삼켜 넘긴다는 것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구멍에 찰싹 달라붙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쓴맛을 뿜어내는 약을 도저히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물, 물······. 아하!!!
“근데 될까?”
은설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이 섰는지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었다.
“해보지 뭐! 파이팅!”
‘최대한 시고 단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레몬, 라임, 키위, 식초······. 엇, 모인다! 그것도 꽤 많이!”
은설은 최대한 입안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침을 모았다.
그러면 마치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이듯 침이 고이며 점점 높이 차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처음엔 꽤 뿜어져 나오는 듯싶던 침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침을 모으기 시작할 때부터 입안이 촉촉하진 않았었다며 은설은 물이라도 한잔 병원에서 마시고 나오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물처럼 묽던 침은 조금이라도 더 짜내어 더하면 더할수록 농도가 진해지면서 끈적해졌다. 입안에 오래 물고 있어서인지 침 자체의 냄새가 코를 타고 역류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한 알 삼킬 수 있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온갖 난관들을 뒤로하고 은설은 모으고 또 모았다.
‘엇? 지금이닷.’
지금이 약을 삼킬 타이밍이라는 느낌이 왔다. 반 입 정도 물기를 머금은 입 속으로 은설이 재빨리 약을 넣었다.
꿀. 꺽. 꾸울꺽.
“성공!!”
반 입의 침을 다시 또 둘로 나누어 삼키는 기술까지 시도한 끝에 은설은 아주 부드럽고 깔끔하게 페마린 삼키기를 성공시켰다.
“나이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몇 시간 지난 거지? 2시간 15분. 이 정도 시간 차는 괜찮을 거야. 암요, 암요.”
물 없이 약 삼키기에 성공한 은설은 흥분과 희열이 가시지 않은 듯 한참이나 혼잣말을 떠들어댔다.
“하···. 씨···. 나 왜 이러고 사냐.”
더러웠다. 애들이 하고 있었다면 등이라도 한 대 후려쳐 줄 침장난과 같은 짓. 그거라도 해서 호르몬제를 삼키려 기를 썼던 자신의 모습이 객관화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5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 나의 영혼이 처량한 나의 육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졌다. 죄 없는 핸들을 내리치며 은설이 포효하듯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빠-앙.
그 와중에 클랙션이 눌렸는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나무라는 듯 경적소리가 울렸다.
“흑.”
운전을 해야 했다.
좀 더 괴로워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지만, 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은설은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손을 번갈아 가며 운전대를 쥐면서, 은설이 한쪽씩 양쪽 눈의 눈물을 닦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