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부작용이 미미하면 더욱더 우울해지는 아이러니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차량 맞을 만큼 기를 써가며 챙겨 먹은 페마린이었지만 느껴지는 몸의 변화는 미미했다. 퇴근길 차 안에서의 눈물바람을 모르고 있는 준수가 근간에 들어서 유난히 밝게 지내는 은설을 신기해했다.

“바꾼 약이 좋은 거긴 한가 봐. 은설 씨 요즘 엄청 상냥한 마누라인 거 알아요?”

은설은 준수가 계속 자신의 속내를 모르길 바랐다.

“그런가? 부작용이 안 나타나서 그런가? 이번 약은 힘들지가 않아요.”

“잘 됐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도 그거 먹겠다 해요.”

“근데 난 뭔가 섭섭해. 약을 먹어도 이게 몸에서 따악 하고 느껴지는 반응이 없으니. 약발이 받는지 안 받는지 감도 안 오고.”

“자기가 초음파 기계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약발은 의사도 기계 통해서 봐야 아는 건데. 하하.”

은설의 괜한 투정이라고 생각했는지 준수가 장난스레 은설을 나무라며 웃었다. 준수는 은설의 초조와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외려 찜찜했던 날들을 보내는 동안 은설은 간절히 현준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진료일도 아닌데 불쑥 연락해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 약이 안 듣는 거 아니냐’면서 묻기도 민망했다.

“믿음이 부족해 보여.”

“응? 나한테 뭐라고 했어?”

새로 출시되었다는 퍼즐 게임을 하느라 휴일인데도 종일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던 준수가 미안했는지 언뜻 들려오는 은설의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아냐,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응. 이것까지만 할게!”

“듣지도 않으면서 묻기는.”

“응. 거의 다 끝나가!”

“확, 우울모드로 바꿔버릴까 보다.”

“끝! 나 100단계까지 갔어! 부럽지?”

“아니.”

“거짓말. 신랑이 하루 만에 마누라보다 더 높은 단계까지 가니까 열받았지?”

“신랑은 좋겠다.”

“100단계 넘어서?”

“마냥 해맑아서.”




마음이 몸보다 더 힘들었던 열흘을 보내고 드디어 가게 된 진료였다. 은설은 다른 때 보다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선물. 챙겨가야지.”

은설이 화장대 서랍 안에서 자그마한 선물꾸러미를 꺼내었다.

“저번 진료 때 미리 줬으면 좋았을 걸.”

현준의 생일 당일에 생각이 났다. 매년 생각이 났지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야반도주하던 그날의 일도 항상 생각이 났으므로 애써 미리 당겨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올해는 앞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랬다면 뒤늦은 선물이 되진 않았을 텐데.




사두기는 진작에 사두었던 선물이었다. 두 번째로 현준에게 진료를 보던 날, 은설은 현준의 가슴팍에 꽂혀 있던 펜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현준이 그 펜을 꺼내어 무어라 메모하는 것을 보면서 심장 언저리가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니.

여전히 나를 기억하며 지내고 있었다니.


설레었고, 기뻤다.

‘20년이나 사용할 정도라면 평소에도 소중히 아끼면서 썼을 거야.’

은설은 그것이 감동스러웠다. 현준이 물리적으로 아낀 것은 펜이었지만, 마음으론 은설과의 추억을 소중히 기억하려 애썼을 현준을 생각하니 마냥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두었던 펜촉이었다. 멀지 않은 어느 날, 현준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건네줄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의사 류현준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면서, 그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단 느낌에 고민 없이 골랐던 새 펜이 펜촉과 나란히 포장되어 있었다.

“오라던 그날은 아니 오고, 생일이 먼저 왔네. 아직 기억하고 있다 하면 놀라려나.”

어떤 의미로든 놀라긴 할 터였다. 다만, 그 놀라움이 마음 따스해지는 놀라움이길 바랄 뿐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현준의 표정에선 다행히도 설렘이 묻어났다. 현준은 여러 가지로 기쁜 티를 냈다. 거의 다 닳아가는 펜촉이 다시 생긴 것도. 제법 근사한 새 펜이 생긴 것도. 은설이 자신의 생일 기억하고 있는 것도.

현준이 기쁘게 받아주기를 바랐으면서도 은설은 현준의 기쁨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와중에도 은설의 머릿속 한편엔 페마린이 자신에게 미친 효과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현준이 그런 은설의 표정을 알아봤다.

“새로 바꾼 약은 괜찮았어?”

“응. 몸 상태는 전보다 한 결 나아.”

“기분은?”

“그건 그냥 그래. 난임 치료받는 거에 조금 지친 거 같기도 하고. 아직 시작단계인데 벌써 이래서 어쩌나 몰라.”

“아니야. 호르몬제 복용 시작하고 두세 달 정도 지나면 다들 너랑 비슷한 생각들 해.”

“그래?”

“아무래도 몸에 이런저런 영향이 있으니까.”

“이번에 먹은 약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몸이 멀쩡했어.”

“그래서 마음이 울적했던 거야?”

“어떻게 알았어?”

“비슷한 경우를 종종 봤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니 좀 위로가 되네.”

“확인해 보자. 정말 효과가 없었는지. 자, 이은설 환자분은 안쪽 진료실로.”

현준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료실에서의 은설의 기분은 현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좌지우지되었다. 현준의 미소 덕분에 마음이 풀린 은설은 앞선 걱정을 내려놓기로 하고 안쪽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쪽 진료실에서 나와 초음파 결과를 들고 있는 현준을 얼굴을 보았을 때, 은설은 자신의 기분이 한번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자 여기 잘 자란 난포가 하나 보이지?”

“한 개뿐이네.”

“페마린은 하나의 난포를 잘 키우는 데에 효과적인 약이야.”

“하지만 내 난소에선 원래도 하나의 난포는 잘 자라지 않았었나?”

“그렇지.”

“그럼 굳이 페마린을 먹을 이유가 있어?”

“그렇긴 하지.”




현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의사다운 눈빛으로 차분히 은설에게 물었다.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어. 부작용이 초래하는 불편함을 배제한 난임치료를 원한다면, 만약 다음 텀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계속 페마린을 줄게. 안정적으로 질 좋은 하나의 난자를 키울 수 있을 거야.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좀 더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다시 클로미핀을 처방할 거야.”

은설이 현준에게 되물었다.

“너라면? 의사로서 어떤 걸 선택하겠어? 내 치료 방향.”

“발현되었던 부작용이 심각하지는 않았으니, 클로미핀을 처방해서 확률을 높이는 쪽을 선택하겠어.”

“그럼 그렇게 해줘. 부작용은 견딜만했어.”

약을 챙겨 먹는 일은 종종 은설을 자괴감에 빠지게 했고, 그 자괴감을 견뎌내기엔 효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쪽이 더 수월할 듯싶었다. 복시가 나타나는 부작용은 나름 아름다웠으므로 그런대로 즐기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번 달에 아기가 생겨서 이게 다 부질없는 고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은설이 혼잣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현준은 아무 말도 않은 채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은설을 바라보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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