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로또는 없었다.
임신의 성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를 하루 앞둔 날에도 임신테스트기는 단호하고 박하게 딱 한 개의 줄무늬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게 그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지.”
마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담담했다.
너무나도 태연한 은설의 상태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준수였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하지 않아도 돼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괜찮다니까. 몇십만 원 돈을 홀랑 날려버린 것 같아서 그게 좀 아까울 뿐이에요.”
평소엔 저금통처럼 관리비명세서를 받는 족족 쑤셔 넣기 바빴던 티비장의 가운뎃 서랍을 통째로 뒤집어엎으며 은설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슬프고 속상한 게 정상인데 은설 씨가 안 그러고 있잖아, 지금.”
“아직 확실히 모르는 거라서 그래. 착상이 늦게 되면 내일 피검사 이후에나 임신테스트기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속으론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설은 마지막까지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은 체를 하려 애썼다.
어디까지나 준수를 위해서.
띨릴릴리-띨릴릴리
“아버진데? 일요일 아침부터 왜 나한테 전화를 거신 거지?
전화를 받은 준수의 미간이 순식간에 푹하고 찌그러졌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로 방밖을 빠져나가는 준수의 뒤를 은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와? 바쁘면 못 할 수도 있지. 그러게 뭐 하러 기다리시냐고. 기다리지 마라. 법으로 정해 놨나? 아, 그러니까 왜 그래야 하냐고. 쓸디없는 걸로 아 스트레스 주지 마라. 이제껏 해준 거를 고맙게 생각해라. 엄마 아부지 아들도 안 하는 기 안부 전화다.]
수화기를 너머의 이야기를 듣느라 잠시 끊겼던 말이 곧 다시 이어졌다.
[은설이 인공수정 했다. 고생고생해서 시술하고 결과 기다리느라 지금 정신 읎다. 안 그래도 힘든 아 한테 별것도 아닌 걸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래이. 잘 되면 얘기할라 그랬지. 미리 말해 뭐할라꼬! 뭐 스트레스받는 소리나 더 들었겠지. 앞으로도 그럴 끼다.]
그리고 또 잠시 듣다가 이내 입에 칼을 문 듯이 쏘아붙였다.
[은설이한테 시술을 했느니 안 했느니 언제 하느니 그런 거 일체 묻지 마래이. 그런 얘기하는 거 내 귀에 들리면 내 확 다 엎어뿌끼다.]
화가 난 티를 역력히 내며 준수가 수화기에 입을 바짝 대고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걱정 마라. 잘 되든 안 되든 결과 나오면 이번엔 연락하께. 담부턴 그냥 모른 척 해라. 결과 잘 나오면 어련히 알리지 않긋나. 응. 알았다. 괜찮다. 엄마아빠만 스트레스 안 주면 된다. 아이다. 보내지 마라. 그것도 부담 주는 기다. 응. 응. 들어가이소, 마.]
전화를 끊을 때에도 준수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아버님 화나셨어? 어제 종일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안부전화 드리는 날인데 까먹었어.”
은설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준수에게 물었다.
“앞으로 안부전화 같은 거 하지 마. 은설 씨가 자꾸 해주니까 더 바라시잖아.”
“뭔 일만 있음 맨날 하지 말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하고 살 수 있어. 아님 준수 씨가 하든가. 자기가 안 하니까 나라도 하는 거지.”
“총각 때도 안 하고 살았는데, 뭘. 궁금하면 엄마 아빠가 걸면 되지.”
“나 편할 때 내가 거는 게 나아. 나한테 먼저 잘 안 거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 거시는 어른들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들 내 주위에 엄청 많다고.”
은설 대신 역정을 냈던 준수가 외려 부모님을 두둔하고 나서는 은설의 말에 한껏 찌푸려졌던 얼굴을 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중엔 전화드렸는데 이틀이 다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셨나 보다.”
“그렇게 요일 정하지 말고 아무 때나 해.”
“아무 때나 하다가 2년에 걸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요일과 시간대예요. 이 방법이 아무 때나 거는 것보다 서로 간에 스트레스가 덜 하다고요.”
“이런 거까지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나, 참.”
“자기가 신경 안 쓰니까 며느리인 내가 신경을 쓰게 되는 거라니까. 반성하도록 해요. 효도는 셀프라는 말 몰라?"
"나는 불효자식이잖아."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이건 부모님 대신 내가 하는 말이에요. 그나저나 내일 피검하고 결과 나오면 알려드려야 하는데 어쩌지. 실망하실 텐데.”
“문자로 알려드리고 끝내자.”
피검 당일 아침 첫 소변으로 한 마지막 임신테스트기의 결과마저 은설에게 단호박 한 줄을 보여주었다.
출근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다녀왔던 병원에선 오후 4시 무렵 은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담백하네. 나도 부모님한테 이렇게 보낼까?"
짧고 굵은 메시지 한 줄로 은설의 첫 번째 시술이 최종적으로 종료되었다.
[호르몬 수치 0.3으로 임신이 아닙니다]
“연달아 이어서 해도 괜찮은 거면 그렇게 하고 싶어.”
첫 번째 인공수정 시술의 실패가 가져온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은설은 현준의 안쪽 진료실 진료의자 위에 다시 앉아 있었다.
우울감에 휘둘려가며 한 달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새해가 되기 전에. 무자 팔자인 내게 아기가 생길 수 있는 운이 들어와 있다는 올해가 다 끝나기 전에······.’
은설의 의지와 관계없이 머릿속에 뇌까려지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첫 시술의 실패로 인한 심리적 타격은 은설 대신 준수가 옹골지게 앓고 있으니 그냥 그에게 다 맡겨 버리면 될 듯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한 번 더 시술을 하지.’
은설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는 표현이 오지도록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렇게까지 맹목이었던 적이 있던가.
은설의 이성이 ‘지금 너의 모습은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 마라톤 코스를 뛰고 있는 바보’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 언저리에서 솟아난 감성이 거미다리처럼 뻗어 나온 팔로 은설의 두 귀를 꼭 막고 있었으므로 이성의 아우성은 은설에게 닿지 않았다.
“조금 쉬었다 하는 것도 방법이야.”
은설의 심리상태를 눈치챈 현준이 한 템포 돌아갈 것을 권했다.
“아직까지는 호르몬의 부작용이나 체력의 한계가 시술을 망설일 만큼은 느껴지지 않아. 혹시 초음파상에 내 난소나 자궁이 쉬어갈 타임이란 징후가 나타난 거야?”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진행해 줘. 부탁해.”
‘단호한’ 보다는 ‘간곡한’이 더 어울리는 요청이었다.
은설의 바람을 마냥 모른 척하기 어려웠던 현준은 결국 다음번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마워. 마음 알아줘서.”
그날 저녁, 첫 시술의 실패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진행하는 두 번째 시술에 대해서 은설이 준수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