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집안 물건을 정리하는 게, 나의 습관이다.
밀린 네 식구의 빨래를 빨랫대에서 뽑고, 말린 수건은 건조기에서 꺼내 바닥에 던져둔다. 아이들을 재운 후에 나와서 기어코 이 쌓인 숙제를 해결해야.. 마음이 편하다.
물론 체력이 달릴 때는 그냥 한 구석에 쌓아둔다. 빨랫더미는 점점 몸집을 불려서 거대한 산이 된다. 아이들은 그 더미가 꽤 폭신하다고 느끼는지, 거기에 꼭 누워서 책을 읽는다. 빨았는데 걸레가 되어가는 빨래를 보고 있는 내 심정은. 분노가 올라오지만 끝내 귀찮은 마음이 이기는지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채 하고야 만다.
현실의 시궁창을 미니멀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자주 집안을 정리하며 미니멀라이프 오디오북을 들으며 청소를 하고, 미니멀 관련 도서를 반복해서 읽는다. 금세 종이 위에 가지런한 글씨처럼 내 인생도 다림질 되어 판판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드러누워 책 읽고 일어나면 산발이 된 머리부터, 집안 꼴은 여전히 미니멀이 아니라 맥시멀 하다. 그것도 매니매니맥시멀.
현실과 이상은 왜 언제나 이렇게 멀까. 그래서 인생이 아이러니한 것이겠지. 잠시 한탄을 해본다. 이런 내가 미니멀에 대한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었으니. 미니멀 일기를 쓰려한다. 사실은 쓰는 물건은, 내 스스로 미니멀 해지기 위해 물건을 관찰하는 프로젝트였다.
지금껏 내가 가장 정리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책이었다. 내가 산 책도 많지만.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변에서 이제는 안 보는 책을 물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떠돌이 책들은 해지고 시무룩한 채로 우리 집에 도착한다. 덩어리채 전집으로 묶여서 아무런 개성도, 이름도 없이. 당근에서는 몇십 권이 만원, 오천 원에 나눔이 되기도 한다.
그런 책들을 보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나라는 인간은… 애잔한 마음이 들어 그동안 집안 가득 쌓아두고 버리지 않았다. 불쌍하잖아. 이 이야기도 분명 누군가 썼고 그렸고 책이 되어 만들어졌는데… 유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
그렇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 보석을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았었다. 궁금하지 않았다. 그 떠돌이들이.
열대야에 푹푹 찌는 1층 주택. 불난 지붕 아래 좁은 집안은 더 좁게 느껴지고… 이제야 그 떠돌이들을 내쫓고 싶어졌다. 하나씩 펴 들어서 읽고 버린다. 읽은 것 중 그림이 마음에 들거나, 이야기가 좋은 것들을 다시 모아둔다. 보고 또 보고 그중에 버리고. 그렇게 선별한다.
고고한 심사위원이 된 기분이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책을 버리는 일. 그 일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책장을 버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을 집어 읽고 버린다. 매일. 골목길 앞 폐지 줍는 할머니 집 앞에 외출할 때마다 가져다 드린다.
버리는 이야기. 버려지는 이야기. 사라지는 책들.
그 이야기의 잔상들이 마음에 남아 서늘해진다.
내 이야기 역시 늘 그렇게 잊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순간 잊힌다. 이야기로 영원히 남고 싶다는 꿈은 얼마나 허망한 것일까. 얼마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일까. 자아만 비대하게 커진 채 꾸었던 작가라는 꿈을 그동안 키워왔기에… 그 책들을 버릴 때마다 따끔따끔 내가 나를 버리는 기분이다.
버리고, 또 버리며.
나는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버려지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다. 그 방법을 알게 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꼭 알려드리겠다.
지금까지 버려서 알게 되는 것은 버린 것의 대부분은 잊어버리고, 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다시는 절대로 그 물건을 버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버려지거나, 혹은 완벽하게 소중해질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 확실한 정리인 셈이다.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