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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Aug 30. 2024

쓰레기봉투 : 안 쓰는 것들의 종착지


아껴 쓰는 습관은 언제나 나를 옭아맨다. 너무 많은 이면지와 연습 종이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다. 그동안 쟁여두었던 다이어리나, 파브리아노 수채화지, 켄트지조차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낄 건지.


어느 더운 여름날, 옆방을 보니 방 한가득 쌓여있는 물건 중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없어 보였다.


그저 저렴하다는 이유로, 할인하거나 나눔을 받거나 여기저기서 이유도 없이 물려받은 물건들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내가 정말 좋아서 샀고, 매일 보려고 했던 물건들이 끼여 있어서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돈에 자유롭고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창작을 하고 그러면 될 줄 알았지만. 천만에 만만에 여전히 나는 돈에 매여 살고 있다.


그 돈은 언제든 갈고리처럼 나의 입가를 물고,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갈 힘이 있다. 그 힘과 제대로 싸우며 내 삶을 지켜내고 싶지만 번번이 나는 패자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기인되었으니 결국 스스로에게 묻고 정리하는 일 외에는 답이 없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야?


나에게 이 질문은, 우연히 내 수중에 들어왔지만 앞으로 쓰고 싶지 않은 물건을 향한다.  전혀 아니야. 왜 내가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


마트에서 20리터 봉투 한 묶음을 구입해서, 버릴 것들을 넣는다. 낡고 오래된 필통, 쓰지 않는 파우치 등. 냉동실에 오랫동안 먹지 않고 쌓아둔 식재료들이 이번 처리 대상이었다.


왜 애초에 거절하지 않았을까. 버리는 것도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인데 말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다니. 그 당시에는 단순히 그 음식을 챙겨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 때문에 받았고, 받고 나서는 버리지도 먹지도 못했다. 이렇게 버렸으니 다음부터는 마음만 받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안 먹을 것 같은 음식을 사양해야겠다.


고맙게 사양하는 마음.

그것도 지혜겠다. 버리면서도 그렇게 곱씹으며 또 얻어가는 게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물건에는 일종의 유효기간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물건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물건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그렇다. 시의성을 타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열심히 써두고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종잇장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쓰임 받을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들의 물건도 예외가 없다. 아이들에게 내가 지금껏 하지 못한 버리기를 알려주고 싶어서, 내가 버리기 전에  아이들에게 직접 그 물건을 계속 사용할지 물어보고 버린다. 쓸모가 남은 것은 당근마켓을 통해 팔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나눔을 하거나 버리고 있다.


우르르르. 비닐봉지에 담긴 채로 쌓인 플라스틱 장난감은 경쾌한 소리가 낸다. 새벽, 우리 집 앞에 다녀간 환경미화원의 발걸음을 따라 내가 버린 것들이 멀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가슴을 타고 흐르는 홀가분함.


쓰레기봉투를 사서 그 안을 가득 채워 문밖으로 던져놓는 쾌감. 나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그렇게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보낸다.


왜냐면 이제는 내가 고른 것을 만끽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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