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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Sep 02. 2024

코렐 : 가장 보통의 물건들을 묻다


결혼을 하면서 샀던 혼수들은, 그 시절에 부모님이 내게 사줄 수 있는 적당한 가격대의 실용적이면서도 구색을 갖추고 있다. 시댁에 흠이 잡히지 않으면서도 남편이 해온 집을 채워서 숟가락만 들고 왔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 합리적인 선을 잘 지킨 것이다.


대한민국의 no.1 가치관 가. 성. 비.


그 물건들은 내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살림을 해보지 않은 제가 뭘 알겠어라는 생각이었겠다.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 않고 내 손에 들어왔다.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때때로 이렇게 오래도록 쓸 물건이었다면, 좀 더 내 의견을 물어봐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가진 혼수용품들은 부모님이 그간 생활하면서 필요한 합리적인 기능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부모님과 살면서 내내 내가 썼던 물건들이기도 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결혼 11년째 나도 어느 정도 살림의 주관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혼수들을 다시 보니 부모님이 왜 이 물건을 내게 사주셨고, 이 물건이 내가 모르는 긴 시간 나의 부모님을 통해 인정을 받았으니 꽤나 우월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코렐과 같은 그릇이다. 그릇 브랜드 중에서는 나름 저렴하면서도 격이 떨어지지 않으며, 신혼살림으로는 적당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나중에 내가 주방기구에 관심이 생겨서 산 물건들 중 실제로 사용하지 않게 되거나, 대충 디자인만 보고 산 어설픈 그릇들은 코렐과 설거지그릇에 함께 쌓여있거나, 부딪히면 백발백중으로 이가 나갔다. 코렐의 압승이랄까.


코렐과 내가 산 그릇이 부딪힐 때, 나는 나의 가치관과 부모님의 가치관의 충돌에서 진 느낌이었다. 경험의 승리. 가장 보통의 브랜드. 가성비의 승리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어설픈 낭만으로 치창 된 디자인 그릇으로는 역시 이길 수 없는 걸까.


나는 꽤나 안정적인 선택을 해왔다. 이를 통해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도 그것이 내 삶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가장 보통의 4인 가족.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 둘.

그런 정상 가족을 유지하며, 가장 보통의 삶. 누군가에게 이상한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결혼을 한 순간부터.


어떤 테두리에 들어간다는 것.


혼수. 가장 보통의 형태인 아파트에 살거나. 학벌과 재산 수준을 가지거나. 직장을 가지거나.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형태라는 게 언제나 거꾸로 나를 괴롭힌다는 걸을 얼마 전에야 느꼈다.


도대체 정상이 뭘까. 보통이 뭘까. 국민 물건이 뭘까.

내가 쓰지 않는 것은 나에게는 필요가 없을 뿐인데.

나는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해서 다시금 의심하며 내가 쓰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선별하고 묻고 있다. 그것이 나를 대변하는지 계속 나에게 의미가 있고 중요한지를 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버린다.


이에 대해 아주 오래전 이완맥그리거 배우가 나왔던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ost를 보면 한 청년이 전력 질주한다. 그의 내레이션은 이렇다.


‘’ 인생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대형 tv도 선택하라, 세탁기, 차도 선택하고…cd플레이어랑 자동병따개도…“

누군가 : 도둑이야!

일행 : 튀어!!

(그때 골목길 코너에서 고급차가 급정거를 하고 그 차에 부딪히며 넘어지는 주인공, 운전자 얼굴을 응시하며 죽을 뻔했던 감정을 활짝 웃으며 조롱해 준다.)


“건강을 선택하라. 콜레스테롤수치도 낮추고 치아보험도 들어라. 고정된 수입원도 선택하라. 새집도 선택하라. 친구도 선택하라. 운동복과 경기도구도 선택하라…(후략)”


선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일이다. 내 삶의 주관을 가지는 것은 경험이 없을 때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써보고, 쓰면서 계속 물으며 천천히 자신의 물건을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쓸 것과 쓰지 않을 것을 골라야 한다.


쓰고 싶은 것을 쓰기에도 인생이 짧으니까.

이제는 누구나 다 가지는 보통의 물건을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쓰지 않았다면 없어도 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이 주신 혼수의 반 정도는 버렸다. 코렐처럼 쓸수록 정이 들고 합리적이라고 느껴진 물건도 있었고, 구색을 맞추느라 샀던 화장대나 대형 테이블은 버리거나 친정에 돌려 드리기도 했다. 골라 쓰고, 바꿔 쓰고, 나눠 쓰고. 쓴다는 것은 얼마든지 유연해질 수 있다. 다만 자신에게 맞게 계속 묻고 또 물어본다. 내가 그게 좋은지는 나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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