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누구나 마음의 소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함께할 나의 마음의 소리.
그 많은 환경들과 나의 생각들이 모여서 그 목소리들은 달라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목소리들을 소개하고 파헤친다.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부터, 10대와 20대를 지나고 노년기로 갈 때 마음의 소리는 어떻게 속삭이는지.
그리고 그 나이의 남자와 여자는 어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의 속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 남의 속을 엿본 것만 같은 책이었다.
그 시절 나의 행동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이런 의도였겠구나 생각이 들며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사람의 심리에 대해, 감명받았던 일부분을 소개하겠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신경과학자인 볼프람 슐츠Wolfram Schultz 교수는 파킨슨씨병의 실체를 온전하게 파악하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원숭이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원숭이 입에 사과 주스를 넣어준 뒤 도파민 뉴런이 상당한 수준으로 요동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자 원숭이의 도파민 뉴런은 사과 주스가 보이자마자 점화하기 시작했다. 또 특정한 소리를 낸 다음에 원숭이에게 사과 주스를 주는 실험도 했다. 이렇게 몇 번 하고 나자 원숭이는 그 소리가 들린 뒤에 사과 주스가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사과 주스 없이 그 특정한 소리만 들려도 원숭이의 뉴런이 점화했다. 슐츠와 동료들은 당황했다.
어째서 원숭이의 뉴런은 실질적인 보상인 사과 주스에만 반응하는 게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을 리드 몬태규Read Montague, 피터 다얀Peter Dayan, 테렌스 세즈노브스키Terrence Sejnowski가 내놓았다.
정신 체계는 보상 그 자체보다도 보상 예측에 더 맞추어져 있다.
정신은 예측적인 모델을 하루 종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원숭이에게 들려준 특정한 소리는 사과 주스를 유도한다는 식의 예측 모델이다.
이때 여러 모델 가운데 하나가 현실을 정확하게 예측할 때, 정신은 밀려오는 보상을 경험하거나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모델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긴장과 걱정이 생긴다.
뇌의 주된 업무는 이런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몬태규는 주장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예측과 관련된 작은 모형을 뇌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ex. 만일 내가 손을 여기에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만일 내가 미소를 지으면 그 여자도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가 세운 모델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정확하게 맞물린다면 상당히 달콤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경험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뇌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학습하고 문제가 되는 모델을 조정한다.
이런 기능은 욕망의 근본 구조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이 일상생활을 해나갈 때 정신은 자기 안에 저장된 여러 가지 유효한 모델을 바탕으로 기대 가능한 모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내면적인 모형과 외부 세상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개념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포착하거나 어떤 과제에 통달할 때, 쾌감이 요동친다. 조화로운 상황이 이어진다고 쾌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해변에서만 살아도 평생 행복할 것이다.
뇌에 쾌감이 요동칠 때는 긴장감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은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리듬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어려움에서 조화로움으로, 다시 어려움에서 조화로움으로 변하는 리듬이다. 친밀함을 추구하는 욕망, 내면의 모형과 외면의 모형이 일치하는 순간을 추구하는 욕망이 행복한 인생을 만든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
사람은 모두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사실 라디오 방송국과 케이블 방송국은 애청자·시청자의 내면적인 모델을 강화하는 일을 해주면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우리는 명료한 이론이 딱 맞아떨어질 때 쾌감이 요동치는 느낌을 받는다.
또 우리는 주변 환경과 자신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정신과 의사인 브루스 웩슬러Bruce Wexler가 저서 《뇌와 문화Brain and Culture》에서 주장하듯이,
사람은 세상에 딱 맞는 자신의 내적인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후반부는 세상이 자신의 내면 모델에 딱 맞도록 세상을 조정하면서 보낸다.
밤늦은 시각에 사람들이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세상을 바라보도록 설득하는 내용이다.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영토나 재산이나 이해관계가 전부가 아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세상을 자기처럼 바라보라고 강요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정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주권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즉 자신의 정신적인 모델이 처음 형성된 장소를 방문하면 깊은 감명을 받는다.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도시를 찾아갈 때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은 세부 사항이다. 어릴 때 있었던 약국이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거나, 공원을 둘러싸고 서 있는 담장이 옛날과 똑같다거나, 겨울철 햇살의 각도가 변함이 없다거나, 친구들과 걸었던 오솔길이 그대로라거나 ……. 사람들이 이런 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실용성 때문이 아니다.
그 오솔길은 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솔길 가운데 최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고향을 특정한 애정의 켜로 감싼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작가 루이스C. S. Lewis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아이는 늙고 퉁명하기만 한 정원사를 좋아할 것이다.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낯선 방문객보다는 확실히 그 늙은 정원사를 좋아한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짧은 시간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까마득하기만 한 어린 시절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바로 ‘옛날’의 그 늙은 정원사이기 때문이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자신이 자연 및 신과 하나로 합쳐져 있다고 느끼는 투명한 순간, 영혼이 고양되어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된다고 느끼는 순간에 가장 심원하다.
- <소셜 애니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