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일몰을 슬프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해 본 적이 없다. 일몰이 일출이 아니라는 이유 말고는 없겠지. 하지만 그게 일몰이라면 , 무슨 수로 일출일 수 있단 말인가? p119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중)
저녁형 인간인 나는 종종 일몰을 바라보다 쓸데없이 일출과 견주곤 하는데 글을 읽고나니 생각이 툭! 무릎처럼 꺾이는 느낌, 의문의 일패를 당한 기분이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 ~1935)는 작가들이 흔히 쓰는 필명이나 가명이 아니라 수많은 이명(異名)을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각각의 이름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각기 다른 직업을 부여하고 다른 관점, 다른 문체를 가지고 있다. 시 소설 에세이 희곡 평론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양의 글을 썼지만 대부분 미발표, 미완성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트렁크가 발견 되었고 아직까지 분류와 출판이 진행 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천재들이 그렇듯 생전에는 주목 받지 못했고 사후에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이 되었고 20세기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시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김한민 역/ 문학과 지성사)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김한민 역/민음사),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김한민 역/민음사) 세 권을 연이어 읽고 있다.
누구나 한 명의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시인은 한 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페소아는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았다. 어린시절 놀이처럼 시작한 인물 만들기의 연장이거나 어쩌면 병적 징후처럼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페소아가 다중인격장애였는지 연구한 사람도 있고, 페소아 자신도 스스로 의학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하고 공부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쳤으면 미치는 거지'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김한민 인터뷰 중).
그는 왜 그렇게 많은 영혼이 필요했을까? 일관된 정체성을 갖기 보다 모든 것이 되어 보고 싶었던 페소아가 천재처럼 혹은 놀이처럼 구현한 다양한 인물 중 , 알베르트 카에이루와 리카르두 레이스, 그리고 페소아 생전에 유일하게 발표했던 시집 (메시지)에서 발췌한 시를 묶은 것이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김한민 옮김/ 민음사) 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번역가 김한민이 말하듯 우리 모두는 조금씩 페소아 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때 그때 얼마나 많은 내면을 가지는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모순을 포함하는지. 페소아에 대해 얘기 할 때 이명(異名)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막상 시집을 읽으면서 이명에 관한 호기심이 사라졌다. 그냥 그의 시가 좋았다. 어떻게 그렇게 각각 다르면서 좋을 수 있는지. 처음엔 혼돈을, 그 다음엔 감탄을, 그 다음엔 자유와 위로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