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묻지 않는다

by 새해


런던에서 13시간 버스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고호미술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중앙역 안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Van Gogh Museum 가는 길을 물었다. 트램을 타란다. 트램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Tram is Tram 이란다. 그러니 그것이 트레인이냐 서브웨이냐 버스냐 택시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또 물었다. 그분들도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What is Tram과 Tram is Tram을 반복하다가 한 남자분이 손뼉을 딱! 치며 일단 밖으로 나가보라고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고 나가자마자 그분처럼 손뼉을 쳤다. 전차! 전차가 있었지! 유럽을 여행하면서 Tram을 모르다니.


나는 그렇게 무식하고 무모하게 여행을 다녔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때 내가 추구하던 여행의 멋은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알기 전에 충분히 느껴보아라!' 쪽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얘기지만 스마트폰이 생긴 후에도 여행에 관한 한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알고자 한다면 모를 것이 없다.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 먼저 탐색을 한다.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가끔은 이런 행동이 정말 재미없게 느껴진다. 어떤 경우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전적으로 옳지만 또 어떤 경우엔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 없이 자신만의 느낌을 가져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그 이후에 알아봐도 늦지 않으니까. 감동할 준비 없이 마주한 장소나 작품 앞에서 가슴이 철렁, 무릎이 툭, 꺾이는 감정의 요동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도 예전의 그 무식하고 무모하던 사람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겁 많고 불안 많고 누구보다 검색에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우연과 모험이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나이가 든다고 감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 산다. 낯가림도 심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유독 여행자에게 친절하다. 계획 없고 기약 없는 여행을 즐기던 시절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베풀었던 다채로운 친절을 오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받았던 친절을 되돌려 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에서 혹은 다른 어디에서 나는 대체로 친절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여행자들은 손바닥 안 만 들여다볼 뿐, 아무도 나를 불러 세우지 않고, 아무도 뭘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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