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위암 소식을 전해왔다. 아프다 소리도 없었는데, 별일 없었는데, 잘 살았는데, 건강검진도 잘 받았는데,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진행되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내가 처음 한 것은 네 사람의 단톡방을 제안한 것이다. 우리 넷은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난 40년 지기 절친이다. 함께 생일 밥을 먹고 여행을 다니고 기쁨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했다. 오랜만에 만나도 척하면 척, 착하면 착, 뱃속까지 훤한 사이다. 하는 일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일 년에 두 번도 아니고 딱 한번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만 넷이 모여 " 잘했다!" "잘했다!" 1박 2일 칭찬을 주고받다 보면 또 한 해 잘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카톡을 잘 쓰지 않는 탓에 네 사람 단톡방이 없었다. 단톡방이 있었다고 해도 미주알고주알 우리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나 투병 기간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단톡방에 모였다. 항암 일정을 공유하고 검사 결과를 공유하고 뭘 먹었나, 누가 다녀갔나, 호중구 수치가 어떤지, 스텐트 시술은 잘 되었는지, 항암대기는 몇 시간 걸렸는지, 시시콜콜 대화를 나눴다.
학생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생님이었던 친구는 환자로서도 더없이 성실했다. 먹을 수 없어도 먹고 기력이 없어도 걷고 글씨도 쓰러 가고 성경공부도 하고 노래도 배우고 총무도 했다. 경조사도 빠지지 않았다. 날마다 감사할 거리를 찾아 감사한 마음을 유지했다. 친구는 외롭지 않았다. 곁을 지키는 가족뿐 아니라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음식을 해 나르는 동료 교사들이 있었고, 제자와 학부형, 그리고 우리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병을 나눠질 수 없었고 고통은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었다.
거의 온종일 벽 쪽을 보고 누워 도무지 끝날 줄 모르는 고통에 홀로 괴로워했고 해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홀로 매달렸다. 이게 뭐지? 정말 죽는 건가? 그러면 내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냥 그런 거야. 이유 같은 건 없어. 더 기다려봐도 다른 대답은 없었다.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친구는 얼마나 홀로 괴롭고 홀로 질문했을까? 그나마 내가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벽 쪽을 보고 누운 고통의 순간마다 친구는, 친구가 평생 사랑하고 의지했던 주님의 대답을 들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2년 가까운 친구의 투병 기간 동안 나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울지도 못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보며 어디에서 희망을 접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환자들의 이별 파티를 진행했지만 정작 친구의 이별파티는 실행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는데 순서가 없고 우리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지만 누구도 아닌, 내 친구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발인 날 아침 장례미사를 드리며 친구에게 비로소 고마움을 전했다. 친구가 내게 주었던 무한 신뢰와 존중, 우정을 먹고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