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이른 출근을 하니 빵 굽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하다. 작업실 근처 새로 생긴 빵집, 젊은 부부는 새벽 4시부터 빵을 굽는다고 했다. 종소리처럼 동네에 퍼지는 따뜻한 빵냄새를 맡으며 프랑스 어떤 마을을 회상한다.
그녀는 운전대를 잡고 그녀 옆에서 나는 읽지도 못하는 프랑스 지도를 보고 있었다. 길은 여러 갈래 길,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디로든 가고 있었다.
홈퍼니싱 MD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명함을 가지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여행을 제안받았다. 그녀는 직접 무역도 하면서 엔틱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시장 조사 겸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거래처 미팅이나 박람회 참관이 아니라 직접 시골 마을을 뒤져 골동품을 건져보겠다는 계획이었다. 안목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될까? 싶었지만 안 될 것도 없었다. 일주일 후 우리는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도 나도 프랑스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처음 같았다. 우리를 마중 나오는 거래처 직원도 없었고 아무런 정보도 예약도 없이 차를 렌트하고 무작정 파리를 벗어났다. 드골공항에서 출발했으니 돌아갈 곳도 드골공항. 정해진 것은 그뿐, 우연을 따라가는 길이었으므로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쭉 가도 틀릴 것은 없었다.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깜깜한 마을이 있었고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생각나는 삐걱이는 침대 방이 있었고 마을 전체가 빵 굽는 냄새로 가득한 아침이 있었다. 시골 셀프주유소에서 자동차 주유구를 찾지 못해 헤매던 날엔 친절한 프랑스 남자들이 줄줄이 차에서 내려 우리가 렌트한 신형 차의 주유구를 찾기 위해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동전을 던지거나 눈을 감고 이쪽저쪽 갈 길을 정했다. 우리가 어떤 마을을 지나왔는지 도착할 때도 모르고 떠날 때도 몰랐다. 실수처럼 우리가 잘 아는 르완성당에 도착하고 노르망디 해변에 도착했다. 온종일 그림 같은 가로수 길을 달리다 이게 뭐 하는 건가? 비행기값이 아깝기도 했지만 더러는 오래된 골목에서 우리가 찾는 물건을 만나고 귀인을 만나기도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하루하루가 성공이었고 하루하루가 헛수고였던 어떤 여행.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얘기다.
큰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활보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던 때였다. 출장이던 여행이던 공항을 떠나 공항에 도착하는 모든 여정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때는 왜 그리도 자주 숨이 막혔는지. 출장 계획도 없고 여행도 어려울 땐 공항버스를 타고 괜히 공항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모르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다 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여행은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 설렘은커녕 여행을 생각만 해도 체력이 뚝 떨어지고 피곤이 몰려온다. 사람이 이렇게 돌변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게 된 체력 저하가 그 첫 번째 이유고 둘째, 서울을 떠나 내 속도에 맞는 삶을 살면서 그리 숨 막힐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셋째는 10분 거리에 호수와 바다를 끌어안고 살기 때문이고 넷째, 여행의 목적이 성찰이라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쾌적한 시립도서관에 앉아 몽테뉴의 에세를 정독하는 편이 성격과 체질에 맞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밥벌이는 언제나 하기 싫다는 것. 은퇴가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