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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 삶의 실력(2) (최진석著, 위즈덤하우스刊)

놀 때는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고 일할 때는 더디 갑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9장 마음의 두께를 쌓아가는 사람: ‘소요유’ 편

놀 듯이 하는 경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놀 듯이 하라고 합니다. 놀 듯이 해야 제일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치 담글 때나 집안일을 할 때도 놀듯이 하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게 질 안되지만 경지에 오른 사람은 놀 듯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장자는 지금부터 2200년 전 벌써 놀이를 핵심으로 인간을 해석하고 인식론을 밝히고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설명합니다. 놀이하듯이 하는 삶의 태도나 행위를 장자는 ‘소요유’라고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목적지를 향해서 곧장 걷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왔다 갔다 하면서 목적지도 없는 것처럼 노니는 것이죠. ‘소요유’는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놀 때는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고 일할 때는 더디 갑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대상과 내가 일체를 이뤘기 때문으로 일체를 이루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일체를 이루는 것은 존재의 경지나 인식의 문제에서 수준 높은 사람들이 도달하고 싶은 경지입니다. 대상과 나 사이에 어긋남이 없이 꽉 맞는 상태를 天人合一(천인합일) 또는 物我一體(물아일체)라고도 표현했지요.


진선미의 올바른 개념

우리는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수준 높은 단계를 진선미로 얘기합니다. 진-선-미 순서로 되어있는 듯 보여 진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이 선, 마지막으로 미가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것은 지적으로 보면 잘못된 표현 방식입니다. 인간 지성이 개발될 때 가장 초급단계에서 옳은가 그른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따지는데 진의 단계죠. 한 단계 올라서면 좋은가 나쁜가, 되는가 안되는가,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선의 단계입니다. 그것을 잘 따져 한 단계 오르면 참과 거짓, 의미와 가치 등등이 미학적으로 종합 정리되어 자신의 고유함을 따라 발현되는 단계에 이르는데 그것이 아름다운가를 따지는 미의 단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혹은 문명의 상급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단계입니다.


진-선-미는 단계의 순서에 따라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결되고 섞여있으며, 보완하며 서로 도와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도 높이가 아니라 두께입니다. 厚(후), 두터움을 쌓는 것이 수양이지, 이 개념에서 저 개념으로 넘어가는 것이 수양이 아닙니다. 개념의 두께를 쌓고 쌓다가 두께가 넘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수양이지, 그 개념을 결별하고 다른 개념으로 넘어가는 것이 수양은 아닙니다.

모든 수양은 다 두께와 관련이 있습니다. 높이 오른다는 말이 실제 의미하는 바도 두께를 쌓는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는 마음보다 두꺼워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기술적으로 유리할 것입니다. 두께를 쌓아서 이루어진 내공을 積厚之功(적후지공)이라고 합니다. 장자는 소요유에서 높은 경지를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두텁게 쌓아서 이루어진 높이이기 때문에 積厚之功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노니는 경지

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놀 수 있습니다. 어떤 물의 두께는 나뭇잎 하나를 놀게 할 수 있고, 어떤 물의 두께는 소주잔하나도 놀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계에서 노니는 경지는 어떻습니까? 자유자재의 경지를 누리고 싶다면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바로 두께입니다.

두께가 두꺼워진 사람은 정해진 한 개념에 갇히지 않습니다. 그 두께에서 내려다보면 비슷한 단계에 있는 개념들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두께가 얇으면 정해진 혹은 익숙한 개념만 보이기에 정해지거나 익숙한 개념으로만 세상을 대하려고 합니다. 최고 두꺼워진 단계를 다른 말로 득도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곤이라는 물고기가 튀어 올라 붕이 된 것도 득도한 것입니다. 득도한 사람은 자기한테 익숙한 바가지나 호리병에 갇히는 게 아니라 배라는 새로운 기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득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득도하면 이치에 통달하고, 이치에 통달하면 임기응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이익이 생깁니다. 조롱박을 깨버리면 이익이고 뭐고 다 사라지지만, 배를 만들면 이익이 생기는 것이죠. 창의성도 임기응변의 한 형태입니다.

자유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결국에는 각자의 몫입니다. 자유로운 삶에 관해 하는 이야기와 자기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0장 자신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 장자 사상의 덕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자 사상에서 덕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德이라 쓰기도 하고 悳이라 쓰기도 하는데 초기에는 悳이라 썼을 겁니다. 悳을 풀어쓰면 直心(직심)으로 ‘툭’하고 튀어나오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진실이 고려나 계산 없이 나온 것이니 자기의 진심입니다.

혜자의 큰 박 이야기가 있습니다. 혜자는 박이 너무 커서 호리병이나 바가지로 쓸 수 없으니 깨버리자 하고 장자는 바다에 띄워 배로 쓰면 된다고 합니다. 박이 배라고 하는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며 이를 창의라 합니다.

혜자는 명에 갇혔기 때문이며 장자는 모든 사람이 합의한 기존의 명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자가 기존의 명에 갇히지 않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능을 생산할 수 있게 한 바로 그 힘을 ‘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혜자에게도 덕이 있었지만 혜자의 덕은 명의 지배를 이겨내지 못한 겁니다. 기존에 있는 개념에 갇혀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존관념의 지배력을 뚫기 어려운 것이죠.


윤리와 지식의 관계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부패입니다. 부패는 사회가 진화하는 속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이며 대부분 지식인의 부패에서 비롯됩니다. 사회가 부패했다는 것은 지식인이 부패했다는 것인데 왜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쉽게 부패할까요? 한국보다 일본, 독일, 미국이 더 청렴하고 세 나라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입니다.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청렴하며 경제력, 군사력이 앞서면 청렴도가 더 높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 한 가지 일이기 때문입니다. 청렴도가 받쳐줘야 경제력, 군사력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식생산국이 아니라 수입국입니다. 수입국이란 우리 삶의 전략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빌려 쓴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전략을 스스로 짜는 사람은 청렴할 가능성이 크고, 빌려 쓰는 사람은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발견하라

덕이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내 세계에서 내 문제를 발견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다른 문제를 해결한 결과로 나온 지식과 이념, 이론을 수입해서 내 고유한 문제를 관리하려 하니 잘 맞지도 않고 비효율과 갈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는 내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도전에서만큼 효율성이 나오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과 이론을 그대로 내 세계에 맞추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것은 남의 세계관에 나를 맞추고 사는 꼴입니다. 남의 세계관에 자잘한 효율성을 얻는 것에 만족하는 방식으로는 추격국가까지 가능합니다. 선도국가는 넘보지 못합니다.


자쾌는 덕의 발현입니다. 자쾌는 타인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을 자기 즐거움으로 알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재상자리가 좋다고 해도 그건 자신의 즐거움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재상을 안 하는 것이 좋은 일이니 그냥 진흙탕에서 꼬리나 흔들고 사는 것이 최고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념에 갇혀서, 이름에 갇혀서, 대중들의 박수에 갇혀서 재상자리를 가졌다가는 너도 망하고 세상까지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11장 유연하게 나를 벗어나는 삶

생각이 뻣뻣하면 꼰대가 된다

생각을 부드럽게 유지하려면 어떤 가치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않고 계속 궁금해해야 합니다. 생각이 굳은 사람을 ‘꼰대’라고 하죠. 저는 청춘과 꼰대를 구분하는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보다 궁금한 것이 많으면 청춘입니다. 반대로 궁금한 것보다 당연한 것이 많으면 꼰대입니다. 궁금증이 살아있으면 청춘이지만 궁금증이 사라지고 생각이 뻣뻣하게 굳으면 꼰대입니다. 생각이 뻣뻣하게 굳은 것, 그것이 바로 당연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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