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 단절된 느낌이며 머릿속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오늘 목적지는 나가노현에 위치한 ‘유모토 사이토 료칸(Yumoto Saito Ryokan)’이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외진 곳을 좋아하는 아빠 취향을 고려해 작은아이와 예비사위가 고른 료칸이다. 나고야에서 승용차로 약 4시간 정도 가야 한다.
유모토 사이토 료칸은 시라호네(白骨) 온천에 있는 유명한 료칸으로 라쿠텐 트레블이 서비스, 요리, 온천수질 등을 평가, 조사한 일본인기순위 17위인 료칸이다. 또한 마실 수 있는 온천수로 유명한 나가노의 명가이며, 부드러운 탄산수소염천이 피부와 위장질환에 좋다고 한다.
유모토 사이토 료칸(Yumoto Saito Ryokan) 가는 길, 운전석이 우측이며 좌측통행인 불편한 운전을 40년 무사고인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중간기착지인 게로온천까지 약 2시간, 몇 번의 기기조작 실수 끝에 도착했다.
게로온천 가는 길은 내설악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었으나 운전에 신경 쓰느라 경치를 즐기지 못했다. 40년 무사고경력자지만 운전환경이 초보운전자로 만든 탓이다. 우측 운전석만 낯선 것이 아니라 좌회전과 우회전이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우리나라에서 우회전할 때는 왼쪽에서 오는 차가 없다면 횡단보도 보행자를 살펴보고 진입하면 된다. 일본에서 우회전할 때는 신호들에 따르거나 좌, 우에서 주행하는 차가 없다면 횡단보도 보행자를 살펴보고 빅턴(Big Turn)을 해야 한다. 물론 좌회전할 경우에는 반대다. 이런 상황들이 습관화되어있지 않으니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머리로 계산해 행동에 옮겨야 한다. 내가 실수할까 봐 옆에 앉은 예비사위가 조수역할을 해줬다.
2시간 달려 도착한 게로 온천이 위치한 동네도 경치가 좋았다. 하늘이 맑은 날이라 어느 곳을 사진으로 찍어도 예쁘게 나온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 덕분이다. 시골동네라 크지 않지만 온천으로 인해 사람들은 꽤 많이 다닌다.
목적지까지 2시간, 네덜란드 초보가 운전했다. 40년 경력자와 똑같이 와이퍼와 방향지시등을 몇 번 오조작 했으나 젊어서인지 적응이 빠른듯하다. 손잡이를 잡은 왼손에는 힘이 들어갔지만 창밖을 보는 여유는 생겼다. 벼는 누렇게 익었고 추수가 한창이다. 집모양만 다르지 한국 농촌풍경과 비슷하다. 귀가 먹먹 해지는 것을 보니 고도가 높은 것 같다. 눈 오는 겨울에는 찾기 어려운 료칸이라 한다.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드디어 료칸에 도착했다.
본관과 별관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으며 생각보다 료칸 규모가 크다. 발레파킹을 해주고 벨보이가 짐도 옮겨준다. 매우 친절하며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는 것을 도우려 하자 돕지 말라고 한다. 신발도 정리해서 신발장에 넣는 것을 보니 일본식 친절이다. 데스크에는 젊은 직원들과 나이 지긋한 지배인이 있다. 지배인 체형에서는 주먹세계 중간보스의 향기가 풍긴다. 작은 키, 짧은 목, 퉁퉁한 일자체형에 검은 양복, 흰 와이셔츠를 입었다. 이상하게도 지배인에게서 신뢰의 아우라가 풍겨온다.
료칸내부는 일본식 전통다다미에 시설은 현대적이다. 여직원이 들어와 말차 한잔씩 말아주며 내부시설 설명과 가족온천 예약도 도와준다. 친절과 상냥함에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 속으로 들어와 별이 쏟아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날이 흐리다. 나고야에서는 기온이 30도였는데 산속이라 기온은 17도까지 떨어졌다.
노천탕은 날이 추울수록 매력이 있고 눈이 오면 더욱 좋다. 야외온천탕은 백 프로 온천이며 탄산수소염천이라는데 유황내음이 가득하다. 음용가능한 온천이므로 한 모금 마시라지만 예전 미국 사라토가 유황온천에서 한 모금 먹고는 계란 썩은 내음이 가시지 않아 오랫동안 양치했던 기억이 있다. 한 모금 마시니 기분 좋은 맛은 아니다. 나는 뜨거운 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세명은 아깝다며 늦은 밤에도 온천을 다녀왔다.
다음날 아침 노천온천에 몸을 담갔다. 산에는 벌써 가을색이 들었다. 남녀탕이 바뀌었으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해프닝은 없다. 계곡 물소리는 청량하고 추위가 느껴진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가 좋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세가 가팔라 산과 수목이 쏟아질듯하다. 완만해서 친근한 한국의 산세는 아니다. 산세 좋고 외딴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온천만 할 수 있는 곳이 료칸이다. 또 깊은 산속 외진 곳에 있어 인터넷 사정도 좋지 않고 TV도 볼 것이 없으므로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며 머릿속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료칸은 먹는 것에 진심인 곳이다. 저녁으로 샤부샤부, 생선회, 민물생선구이, 버섯밥 등 12가지 음식과 수많은 반찬이 제공되는데 이와나라고 하는 민물생선구이에 이르자 그만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빙을 담당하는 여직원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아 그만 먹겠다고 이야기하기도 미안하다. 조식도 죽정식으로 훌륭했다. 12가지 정도 음식이 나오는데 손녀 소꿉놀이 장난감보다 작은 접시에 반찬들을 내온다. 누가 담기에 이렇게 예쁠까? 일본음식은 입으로도 먹지만 눈으로도 먹는 음식이다. 또한 나이 들어서 식사량이 줄은 것은 확실한데 음식 양이 적지 않다. 일본인들은 결코 소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4명이 료칸에 지불한 금액이 110만 원이다. 푸짐하고 훌륭한 식사 두 번을 감안하면 몇 번의 온천욕과 잠자는 것은 거저라는 생각이 든다. 료칸은 다다미방으로 한가족이 남녀 구분 없이 방하나에 잠을 잔다. 방 중간에 칸막이가 있는 방도 있다. 처음 겪으면 문화적 충격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