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終(임종), 삶의 고단함을 뒤로 하고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소설에 서대문교도소 관련된 대목이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확정된 형량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사형수들의 죄목은 대부분 살인으로 폭력이나 사기전과 등의 잡범들은 범접하지 못한다. 사형수들은 제일 좋은 잠자리를 배정받고 방장 역할도 하지만 대부분 말이 없다. 언제 형 집행이 될지 몰라 매일아침 세면을 정갈히 한다. 서대문교도소 교수형 집행장은 면회소 가는 길에서 좌측으로 가야한다. 면회 왔다고 하면 밝은 얼굴로 나섰다가 갈림길에서 양측에 팔짱끼고 호송하는 교도관이 좌측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대부분이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 못한다.’
다리 풀린 사형수는 죽음 앞에 선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돈 많은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나약하고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이 죽음 앞의 초연함보다는 인간적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남자는 짧고 굵게 살아야 하니 희망과 기약 없는 무기징역의 고통이 더욱 크다.’ 이야기했으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수인번호가 불릴 때마다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어야 하는 사형수의 고통을 생각하면 무기수의 고통은 어쩌면 행복인지 모른다.
어머님은 작년에 약한 뇌출혈로 약물치료를 받으셨다.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넘어지셨고 이번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고관절골절, 척추골절, 외상성 뇌출혈로 입원하셨다. 노인 분들은 고관절 골절만으로도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손을 뻗어 줄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 가지 수술을 이겨내시고 40일 만에 사경을 헤매다 중환자실에서 퇴원하셨다.
중환자실에서 노래를 부르셨다는 어머니는 천성이 낙천적이며 씩씩하시다. 재활치료가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앰뷸런스 안에서도 어머니는 씩씩하셨지만 큰 수술로 인해 정신도, 체력도 많이 소진되신 듯 했다. 마지막으로 뵌 씩씩한 모습이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면회금지조치가 내려져 추석명절이 특별면회가 이루어졌지만 말씀도 못하시고 눈도 맞추지 못하셨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에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았다. 벨소리를 줄이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광고성 전화가 올 때마다 화풀이할 겸 모두 수신차단 조치를 취했다. 진동에서 벨소리로 전환했지만 혹시 깊은 잠에 전화를 받지 못할까봐 잠을 설치기 일쑤다. 臨終을 눈앞에 앞둔 어머님을 옆에서 지켜보는 심정도 안타깝고 조마조마하다. 당연히 겪어야할 일이라 생각해도 어머님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매일아침 병원에 전화하여 어머님 상태를 물어보는 것도 가슴 조리는 일이며 소설 속에 나오는 사형수의 심정이 조금 이해되었다.
차도가 있기를 희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력이 떨어지셨다. ‘재활치료를 시작했다.’에서 ‘체력이 저하되어 중단’했고, ‘컨디션이 좋으면 말씀을 잘하신다.’에서 ‘가끔 말씀도 하신다.’로 바뀌고, ‘간식을 잘 드신다.’에서 ‘삼키는 걸 어려워하신다.’ ‘요플레같은 유동식을 드신다.’ 숯불이 사그라지듯이 체력과 정신도 고갈되어가듯 조금씩 조금씩 악화되어 가는 모습을 전화상으로 지켜보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말도 못하시고 눈뜨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시다. 직계가족의 면회가 끝났으니 이제는 편히 보내드리는 일만 남았다. 병원에서도 외국에 있는 누나의 면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혈, 고단위 영양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니 병원과 어머님이나 가족들도 최선을 다했고 여한은 없다. ‘이제는 회복가능성이 없는 것 아닌가? 이제부터는 어머님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몰핀 등 어떤 약제를 써도 좋으나 지금 당장 좋다고 돌아가실 때 고통을 주는 방법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안하고 고통 없는 치료를 했으면 한다.’ 의료진도 동의했다.
담당의사는 어머니와 우리 가족과 같은 교회를 오래전부터 다녔던 분으로 어머니가 입원하시는 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분이다. 의사가 남은 가족들에게 권고했다. ‘이제는 가족들이 두 번 이상 어머님을 뵈었으니 섭섭함도 풀었을 것이고 현대사회이기에 꼭 臨終을 지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사회의 문화로 인해 꼭 임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경험상 임종을 지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쉬운 일도 아니며 임종시간을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
어머님의 臨終은 몇 번의 예행연습을 거쳐야 했다. 임종면회 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것이 반복되어 몇 번의 전화를 받았고 ‘임종면회실’로 가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임종연습이 없었더라면 크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임종을 맞는 당사자에게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발에 힘이 빠져 걷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들에게도 피 말리는 상황이다.
2021년 6월9일 쓰러지셔서 날 좋고 단풍 예쁜 11월16일 召天(소천) 하셔서 원하셨던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오늘따라 유달리 편해 보이신다.’는 간호사와의 통화 후 2시간 만에 간호사가 전화 했다.
‘병원 오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세요?’
‘혈압과 맥박이 갑자기 좋지 않으세요.’
‘심장 마사지를 할까요?’
간식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이겠지 생각하며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 있습니다. 한 시간은 걸립니다.’
‘아..... 그래요?’
‘심장 마사지 하지마세요. 편하게 가셔야지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떨렸고 내 목소리는 허공을 딛는 것처럼 허둥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