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설렌다. 이 정도면 重病(중병)이다.
가상공간 내에서 本名(본명)을 써도 무관하나 이메일 아이디가 本名처럼 통용되는 세상이다. 이메일 아이디가 영문으로 되어있어 얼마 전부터 ‘물가에 앉는 마음’이란 한글 이름도 사용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사용하는 별명이니 옛 어른들의 ‘號(호)’와 비슷한 것이지 가명아래 숨어 엉뚱한 수작을 벌이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선친의 本名은 詩(시)에 남기는 筆名(필명) 漢字(한자)가 달랐다. 붓글씨도 쓰셨으며 號도 있고 落款(낙관)도 있으나 일정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낙관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잡수셨는지 낙관 사용은 하지 않으셨고 붓글씨 써달라는 부탁도 물리치셨다. 실제 남아있는 붓글씨는 몇몇 분이 표구해 놓았다는 연하장 정도다.
號는 일반적으로 2~3자정도가 부르기도, 쓰기도 좋다. 가상공간 이름 ‘물가에 앉는 마음’은 길어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이름이다. 유일한 야외활동 취미인 낚시를 오래했지만 낚시사랑은 여전하고 남은 삶도 ‘물가에 앉는 마음’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낚시가기 전날에는 어린아이 소풍가는 전날처럼 잠을 설친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바람 불지 않아야 하는데 하며 괜한 걱정도 한다.
마약 같은 중독성으로 인해 폭우가 쏟아져도 가야하고 태풍 불어도 가니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다.
낚시터에 도착해 물가에 앉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은 설렘이자 가슴 벅차게 두근거리는 일이다.
낚시 포인트 선정이 중요한데도 골든타임을 놓칠 것 같은 조급한 생각에 대충 둘러보고 자리를 정한다.
낚싯대 펴는 손길이 빨라지고 마음만 앞서 더듬거리기 일쑤다.
미끼 달아 던져 놓으면 비로소 낚시 준비가 끝난 것이다.
빨라봤자 1분여 차이인데 이제야 흘린 땀을 훔치며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를 찾는다.
일상에서는 이렇게 집중해 본 적이 드물다.
越尺(월척)잡는 기대로 포인트를 선택했지만 釣果(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꼼짝 않는 찌를 바라보며 찌가 올라오도록 주문을 걸면 幻影(환영)도 보이는 듯하다.
입질이 없으면 미끼 조합을 변경하고 힘들여 포인트도 이동한다.
포인트 이동 후에도 입질이 없으면 첫 번째 포인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첫 번째 포인트에 다른 사람이 앉아 붕어를 끌어내고 있다면 진득하지 못했음을 가슴 쓰리게 후회한다.
인생이나 낚시나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나보다.
낚시 기술에 따라 조과가 차이 남에도 기술보다 運(운)을 탓한다.
運을 탓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지만 때때로 필요한 자기 위안이다.
좋지 않은 釣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따라 붙는다.
기압이 낮다. 바람이 많이 분다. 게다가 東風(동풍)이다. 달이 밝았다. 수온변화로 붕어가 움직이지 않는다. 산소포화도가 낮다...,개가 짖었다. 과학, 비과학적인 온갖 사유가 등장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개가 짖지 않는 낚시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골프가 안 되는 이유가 108가지인데 반해 낚시가 안 되는 이유는 10000가지가 넘는다.
東風 불고, 보름달은 휘영청 밝고, 수온 변화가 심하며, 주변이 소란함에도 釣果가 좋다면 전적으로 본인의 낚시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뻐긴다.
잡았던 붕어 크기는 세월과 더불어 자라나 어느덧 한국 최대어 수준이 되었다.
결국 釣況(조황)은 운과 기술도 아니고 ‘붕어의 마음’임을 깨닫는다.
다음 조행을 기대하며 교만했던 마음과 아쉬움을 접는다.
잡으면 다시 놓아주는 낚시를 하면서, 많이 잡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낚시 준비하는 과정부터 즐겁다. 물을 보면 엉킨 실타래처럼 어지럽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50년 이상 붕어낚시 다녔지만 질리기는커녕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처럼 남은 인생이 낚시와 같았으면 좋겠다.
잡는 욕심을 내려 놓을만한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완전치 못하다. 가끔 越尺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버킷리스트에서 지우지 못한 한 줄은 이루지도 못할 붕어 50Cm다. 잡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 같은 희망이자 재미이다. 붕어 50Cm는 죽기 전까지 낚시를 하겠다는 것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삶이 釣況이나 釣果를 알 수 없는 낚시처럼 흥미진진했으면 한다.
越尺을 기대하듯 살아가는 매일 매일에 희망이 달려 있었으면 한다.
설령 오늘은 성과가 없어도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실패의 쓴잔을 맛보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실패 했더라도 자학하지 말고 남 탓도 하지 말며 오히려 겸손을 배웠으면 한다.
바람이나 수온을 극복하는 기술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을 가졌으면 좋겠다.
살아갈 날들이 ‘물가에 앉는 마음’처럼 순수하고 흥분되고 설렘과 가슴 두근거리는 일로 가득 찼으면 한다.
끄적거리고 있는 지금도 ‘물가에 앉는 마음’을 이야기하니 마음은 벌써 물가로 달리고 있다. 따뜻한 봄을 고대하면서...
* 2022년 2월초 낚시가고 싶은 마음에 끄적거리면서도 벌써 설렌다. 이 정도면 重病(중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