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나눈 사랑, 묵자의 철학사상(2) (강봉수著, 강현출판사刊)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른 점은 자기 힘에 의지하여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도 일을 하지만 그들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존재의 법칙에 따라 無爲的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인간은 人爲的으로 문화를 일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처음부터 인간 아닌 존재들은 “완성된 존재”로 태어났다면 인간은 ‘존재의 결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개발해야만 했다. 이처럼 인간은 ‘존재의 결여’로 태어났기에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고, 당위의 법칙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위의 법칙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이 차별 없이 만물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듯 모든 세상만물은 하늘이 부여한 당위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인간 아닌 존재들은 존재법칙에 따르는 삶이 곧 당위의 법칙을 실현하는 삶이라 할 수 있으므로 당위의 법칙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의 결여’로 인해 존재와 당위를 일치시키는 삶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묵자는 인간을 향하여 특별히 당위의 법칙을 부여하고 그에 따르기를 종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 인간만 ‘존재의 결여’로 태어나게 했을까? 그러면 ‘완성된 존재’”의 길은 무엇인가? 인간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기도 하고 수양론적 질문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단 하나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사유의 대상이었기에 철학자 수만큼 인간 본성을 보는 관점은 다양했다. 구조적으로 통합해보면 몇 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는데 어느 철학자는 인간의 본성을 10가지로 구분하였다.
o 인간은 타인의 결함을 보고 웃는 존재이다(홉즈)
o 이성보다 감정에 지배되는 인간(흄)
o 생존 경쟁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다윈)
o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니체)
o 사회에 만들어지는 인간(마르크스)
o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프스의 후예(프로이트)
o 어둠 속에서 빛을 추구하는 인간(플라톤)
o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아리스토텔레스)
o 죄를 지을수록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인간(아퀴나스)
o 언어에 의해 창조되는 인간(비트겐슈타인)
-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Roger Trigg저) -
동양철학에서도 성선설, 성악설 등 인간의 본성을 보는 관점은 다양했다. 하지만 묵자는 인간 본성에 대해 언급이 없었으나 인간의 품격은 물들여짐에 따른다는 주장을 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인 ‘食色之性(식색지성: 생명보존을 위해 먹고 짝짓기 하고자 하는 본능)’을 욕망의 근원지로 봤다. 선도 악도 아닌 본능이자 본성인 ‘식색지성’이 불의한 사회 환경에서는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구조에서는 ‘식색지성’을 조절함으로써 선한 품성을 갖게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묵자의 ‘辭過(사과)’편에 나오는 글이다.
- 성왕은 음식을 익혀 먹을 줄 몰랐던 백성들을 깨우쳐 경작을 하여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고 스스로는 검소하여 백성들은 부유했으나 오늘날은 그렇지 아니하다. 대국은 백 개의 음식을, 소국은 열 개의 음식을 사방 열자의 상에 벌여 놓아 두루 집을 수도 없다. 겨울이면 얼고 여름이면 쉬어버렸다. 임금이 음식을 이렇게 하면 신하들이 그것을 본받고 부귀한 자는 사치하며 고아와 과부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는다. 임금은 실로 천하가 다스려지기 바라고 어지러워지기를 싫어한다면 음식을 절약해야 한다.
- 성왕은 궁에 구속된 궁녀를 두지 않아 홀아비가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대국의 궁녀는 수천이고 소국은 수백이다. 홀아비가 많아지고 여자들은 구속됨이 많아 지아비가 없어 백성이 줄어든다. 사사로운 축첩을 하면 안 된다.
- 오늘날에는 백성의 옷과 식량을 빼앗아 궁궐과 누각을 웅장하게 지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이를 본받는다. 이렇게 하니 흉년과 굶주림에 대비할 수 없고 과부와 고아를 도우려 해도 나라가 가난하니 도울 수가 없다.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려면 궁과 집을 짓는데 절약하여야 한다.
- 비단에 수를 놓고 문채가 화려한 옷을 만들어 금 고리로 장식하고 주옥으로 패물을 삼았다. 여자들은 문채를 꾸미고 남자들은 조각을 새기게 하여 치장하는 옷을 만들었다. 의복을 만드는 것이 몸을 따뜻하게 하려 함이 아니다. 임금은 사치와 음탕함에 빠져 간언하기 어렵게 되고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 의복을 절약해야 한다.
- 배와 수레는 견고하고 가볍고 편리하게 만들면 되나 세금을 걷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조각하여 배를 장식한다. 여자들은 방직을 폐기하고 문채를 수식하며 남자들은 경작을 포기하고 조각을 장식한다. 좌우의 신하들이 그것을 본받고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가 겹쳐 고통을 받게 된다. 신하들은 간사해져 백성들에 대한 형벌은 심해진다. 나라가 어지러워지기를 싫어한다면 배와 수레를 제작함에 있어 절약해야 한다.
묵자도 당대의 대철학자였기에 나라를 통치하는 철학을 제시하였으며 ‘辭過(사과)’편에서는 통치자의 마음과 몸가짐에 대해 이야기 했다. 또한 인간의 품격은 물들여짐에 따른다는 주장을 했다. 순임금은 허유와 백양에게 물들었고, 우임금은 고요와 백양에게 물들었고, 탕임금은 이윤과 중훼에게, 무왕은 태공과 주공에게 물들었다. 하여 천자의 나라를 세워 업적과 명성이 천하를 덮었다. 하지만 하나라 걸왕은 간신과 추지에 물들고 주나라 려왕은 장보와 이공에게 물들어 나라도 망치고 자신도 죽어 천하의 치욕을 당했다
선왕의 치적과 품성을 본받고 사람들로 하여금 검소하고 절약하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책의 제목처럼 임금과 백성이 하나 되어 ‘밥을 나눈 사랑’이 묵자가 꿈꿔왔던 세상이 아니었나 한다.
* 다른 책을 보면 묵자는 악으로 넘쳐나는 현실적 모순을 내 편 만이 아닌, 타 소속원까지 사랑하는 兼愛(겸애)로 타개하려 했다. 본 책 제목인 ‘밥을 나눈 사랑’은 兼愛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수천 년이 지난 최근에도 고위공직자는 사치하고 부패하며, 재벌은 방탕하고 본인 배불리기에만 몰두한 ‘식색지성’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서민들이 모르는 사이 나라의 곳간은 비어갔고 급기야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우리나라는 IMF사태로 이어져 국민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수렁에서 빠져나왔다고는 하나 ‘밥을 나눈 사랑’이 부족했는지 기성세대의 기득권 지키기는 더욱 강화되었고 청년들의 2~30%는 백수상태를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국가, 사회, 회사가 ‘배려와 양보, 역지사지, 上淨下不濁(상정하불탁)’이런 것들이 부족했다면 묵자를 한번 읽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