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가에 앉는 마음 Jul 23. 2022

515. 두 딸들아, 그리고 청년들아 느려도 괜찮아

더불어 살아가야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나는 항시 느렸다. 걸음마도 느렸고 어렸을 적 형제들보다 한글도 늦게 깨우쳤다. 대입 재수를 했으니 고교동창들보다 1년 늦은 삶을 살았고, 입사해서는 다른 공부를 하느라 차장진급시험을 보지 않아 차장진급도 1년 늦었고, 부장으로 진급했다가 다시 차장으로 강등되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동기들보다 부장진급이 3년 정도 늦었으니 고교동창들보다 최대 5년이나 늦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후 실장에서 처장으로의 진급은 누구보다 빨랐다. 늦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의 종착점에 다가와 보니 결코 느리지 않았다. 부장에서 차장으로의 강등은 내 잘못이 아닌 정치권 낙하산 CEO의 인사전횡으로 벌어진 사 창립이후 초유의 강등사태로, 일이 벌어졌을 때 동료들은 애잔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좌절? 느린 만큼 좌절도 느리게 느꼈어야 하는데 솔직히 일하느라 좌절을 느낄 새도 없었다. 혈기왕성하고 자신만만했던 30대 후반이 ‘좌절’을 느낀다면 인생을 다 살은 것이니, ‘좌절’은 없었고 기분 나빠 타 회사로의 전직을 생각했을뿐이다. 


 12.12사태이후 휴교령으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려 종로통을 휩쓸고 다니느라 군대도 늦게 갔고 결혼도 늦게 했다. 하지만 느리다고 한가하고 나태하게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휴교령이 내려졌을 때는 술 먹느라 바빴고 취업 준비할 즈음에는 공부하느라, 취업 후에는 일하느라 바빴다. 

 인생 공부는 학교보다 오히려 술집에서 배울 것이 많더라. 그 젊은 시절 술집에 가서 詩(시) 한수 읊으면 돈 없어도 술 먹을 수 있었고 그것이 당연한줄 알았다. 요즈음 혼자 소주한잔 놓고 고뇌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술 한 잔 사줄 수 있는 여유도 아마 느릿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 인 듯하다.


 느렸지만, 어쩌면 치열했는지 모른다. 느리게 사는 것이 몸에 배었는지 40이 되어서야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 ‘책 읽고 글 쓰고 낚시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 아닐까?’ 50즈음에서야 방황을 끝냈으니 나의 사춘기는 40대였는지 모른다. 10년간 공부하고 글 쓰는 연습 후 등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매우 늦은 55세에 등단했지만 등단하는 분들 상당수가 나보다 연세가 많은 것을 알았으니 느린 것은 아니었다. 등단 후에도 빨리 가려 생각하지 않았다. 기성작가들이 2~30년간 쌓아온 필력을 하루아침에 따라잡겠다는 생각은 무모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필력을 쌓기 위해 생업을 접고 전업 작가로 나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행복을 담보해주는 기본조건은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생업이기에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책 없이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길’은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게 될 즈음이 되었지만 취업이 늦는다고 닦달하지 않겠다. 하지만 늦음을 보완해서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깨달았으면 한다. 나는 매사 늦었지만 이를 보완해 주는 것은 끈기와 쉼 없는 도전이었다. 10년간 배우기로 해서 10년을 공부했더니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부족하여 다시 10년간 배우기로 했다. 회사 내에서도 바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끈기 있게 거부하니 위에서 볼 때는 고집불통이었지만 따르는 후배들 입장에서 보면 든든한 바람막이 였다.


 두 딸들아, 그리고 새 출발을 하려는 젊은이들아, 삶이 느리고 동료보다 늦는다 해도 괜찮다. 취업도, 결혼까지도 늦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순간의 시간을 積分(적분)하면 인생이며, 인생을 微分(미분)하면 오늘의 삶이 된다. 아무리 늦어도 微分된 오늘의 삶에 충실하면 積分된 인생의 모습은 그리 추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몰려오겠지만 삼성, 현대만이 일류기업이니 머리띠 둘러매고 공부하겠다는 생각에서 탈출해야 한다.

 Fast Follower의 시대가 저물고 First Mover가 주도하는 세상이 열렸듯 여러분들 세상은 부모들이 해왔던 방식을 답습한다면 인생이 크게 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모두가 획일화되고 도식화된 인생 진로를 따라간다면 여러분들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희망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대학 입학했을 때의 풋풋함을 지키고 기성세대를 부정했던 초심을 잃지 마라. 꼰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 같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다양성이 중요하게 될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행복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나라도 차량을 튜닝 하는 ‘자기만의 차’를 갖게 되는 시대가 곧 열린다. 차를 개조하고 차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 훌륭하고 각광받는 직업이 될 것이다. 그중 누가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될까? 돈벌이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정을 바탕으로 행복한 그림을 그려내는 사람. 당연하지 않은가? 자기만의 차를 갖고 싶어 차를 튜닝 하는데 컴퓨터로 같은 그림만 그려내는 사람은 싸구려가 되는 것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유일한 자기만의 차를 그려내는 사람은 장인이 되고 예술가가 된다. 여러분들은 그런 길을 가야한다. 


 대신 하찮은 일이라도 열정을 다해라. 나이 들면 하찮은 일은 하지 못하게 된단다. 편의점 알바도 해봐야 하고 청소도 해봐야 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열정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결국 행복을 추구하다 죽는 것인데, 불행의 시작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 험한 일을 해보지 않고는 행복의 폭과 깊이가 덜해진다. 험한 일을 할 수 있을 때 경험해야 한다.

 나는 신입직원시절을 주임으로 시작 했기에 35년간 근무하면서 험한 일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 가장 행복했을 때가 직원들을 위해 청소하고,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때 였다. 내가 청소하고 샌드위치 만들고 다닐 때 진급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진급도 하지 못하고 퇴직한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가? 느리게 가도 ‘퇴직’이라는 종착역은 같았다. 종착역을 향해 행복하게 달려 갈 것이냐 아니면 조바심 내며 갈 것인가는 본인들 마음에 달려있다. 


 인생을 살아보니 별것도 아니고. 혼자 사는 것도 아니더라. 더불어 살아가야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너무 빨리 가려하면 발밑의 냉이 꽃도 보이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밟고 자나가야 한다. 오늘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해야 삶이 행복해진다.

 결혼할 때도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이성에게 끌리는 보상심리가 있고, 자녀를 키울 때도 본인이 부족해 곤란을 받았던 것을 본능적으로 자식들에게는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심리가 존재한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부족한 부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가, 가족이 행복해야 나도 그렇다. 두 딸들아, 그리고 청년들아 느려도 괜찮다. 그리고 늦을수록 같이 가라, 二人三脚(이인삼각)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730. 엇갈린 선물, 同床異夢(동상이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