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격태격하고 있으니 吳越同舟(오월동주)라 하는가?
찰튼 헤스턴이 주연한 영화 벤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박진감 넘치는 馬車(마차) 경주였다. 서기 26년이 배경으로 벤허는 말을 사랑했고 愛馬(애마)들은 경주에서 이겨 벤허를 살렸다.
징기스칸 몽골기병이 유럽을 휩쓸던 것은 13세기 이야기로 유아기부터 말을 타기 시작하는 몽골기병은 몽골말과 한 몸이었을 정도로 말과 친밀도가 높다. 작지만 지구력이 좋은 몽골말은 戰鬪兵器(전투병기)이자 馬乳(마유)와 肉脯(육포)를 내어주는 도시락이기도 했다.
몸집 작은 몽골말은 pony로 불리며, coupe는 2인승마차, 승용차를 왜건처럼 만든 shooting brake는 사냥용 마차에서 유래되었으니 말과 마차는 현대에 들어서 자동차와 자동차 이름으로 還生(환생)했다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남자들은 빠르고 멋진 말에 대한 소유욕이 있었고,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남자들의 관심은 말에서 차로 옮겨갔다는데 나는 차에 대한 욕심이 적다. 유목민 후예가 아닌 농민의 피를 가졌는지 차는 그저 운송수단일 뿐이며 안전하고 고장 없는 차가 최상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세차를 자주하는 것도 귀찮아해 세차를 한 듯 안 한 듯한 색상을 선호한다.
요즈음은 국산차/외산차 모두 성능도 비슷하고 가격까지 비슷하여 디자인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차 욕심은 적어도 선호하는 디자인이 있기는 하다. ‘The Godfather’나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등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style을 좋아한다. 현재 운행되는 차량 중에서는 2010년 단종 된 ‘크라이슬러 PT Cruiser’가 가장 근접한 디자인이나 그것마저도 골동품에 해당되는 차량이다. PT Cruiser는 연비도 좋지 않고 잔고장이 많아 단종 되었다. 예전에 디자인에 끌려 구입하려 했으나 집사람이 강하게 반대해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적이 있었다.
집사람은 유목민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차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차는 운송수단, 안전은 기본이고 깔끔해야 하며 멋도 있어야 한단다. 그렇다고 깔끔을 강조하는 집사람이 청소와 세차를 자주해야 하는 본인의 흰색 차를 세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싫어하고 잘 타지 않으면서도 악담을 퍼붓곤 한다. ‘구린 디자인’에 ‘구린 색상’의 은하색 차량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과 아이들 평가이나 한때 베스트 셀링 반열에 올랐던 색상, 차종으로 디자이너가 들었다면 가슴 칠 일이다.
기러기 생활을 시작한 이후 차량 2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차량은 모두 2008년산으로 낡았다. 아직도 운송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오랜 연식에 걸맞게 집사람 차 계기판에는 전자제어 Module Trouble에 의한 경고알람이 상시 들어와 있다. 내 낚시전용차는 누전현상이 있어 주기적으로 운행을 해주지 않으면 배터리가 방전되기에 며칠간 운행을 하지 않을 때는 배터리 단자를 풀어놓아야 한다. 두 차 모두 교체시기가 충분히 되었다.
집사람 차를 교체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장례식후 차종선정 작업이 본격화 됐다. 내 차를 바꾼다면 세차 불필요한 ‘구린 색상’에 고장 적은 차를 우선시 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낚시를 다녀야 하니 험로를 다닐 수 있는 SUV를 선택했을 것이다.
집사람 버킷리스트에는 벤츠가 들어있다. 모두가 선호하는 브랜드이기는 하나 솔직히 나는 흡기구에 붙어 있는 왕별디자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디자인은 차분하고 점잖았는데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한다며 유선형으로 디자인 컨셉을 변경하고 큰 별을 붙였다.
A/S센터가 많지 않아 고장 나면 불편하다는 단점과 별 크기로 인해 미학적으로도 좋지 않게 보인다. 왕별 없는 classic한 모델을 추천했으나 왕별에 비호감을 느끼지 않는 집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안전을 위해 4륜구동으로 급을 높였고 다시 눈이 즐거운 쪽으로 옮겨갔다. 우스갯소리로 티코 사러 갔다가 그랜저 사갖고 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10년 이상 타야하니 마지막으로 구입하는 차가 될듯하다. 이후는 본인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한다. 마지막 차이기에 집사람 환갑선물이라 생각해서 집사람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지워주고 싶어 벤츠를 산다 해도 시비 걸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또 코로나로 환갑기념 여행도 가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본인이 절약해 모은 돈이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권을 쥐고 있는 본인이 본인 차를 구매하는 것이니 ‘환갑선물’이란 타이틀은 약삭빠른 남편의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집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발성성한 사람이 덜덜거리는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돈을 긁어모아 폼 나는 차를 사주고 싶었었나 보다. 차가 출고되는 날 집사람 왈
‘당신은 결혼 잘했는지 알아. 아파트 사줘, 차 사줘..., 또 원하는 것 있으면 말만해봐 몽땅 사 줄 테니. 다음에 태어난다면 역할 바꿔서 당신으로 태어나고 싶네. 나 같은 사람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나 같은 여자 만나서 호강하며 살아보게.’
큰아이 부부가 와 있어 아무 말이라도 하며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아니 내 선물이라면 내 취향에 맞는 걸 사줘야지.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사고는 할 말이 없으니까 내 선물이라고 우기는 경우는 뭐야. 나도 역할을 바꾸고 싶네. 뻔뻔함을 마음껏 느껴보게.’
분명 차는 한 대인데 해석이 각각이다. 이런 것을 두고 同床異夢(동상이몽)이라 하는가? 부부지만 매사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吳越同舟(오월동주)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