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지만 집안 서열로 따지면 부동의 1위인 伴侶犬(반려견) ‘콜라’,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입양 후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으며 운동하는 것, 먹는 것, 배변상태는 매우 양호하나 갑자기 물 먹는 빈도와 양이 늘었다. 곰곰이 따져보니 만 10살을 기점으로 일어난 변화다. 강아지 나이 10살은 사람의 6~70에 해당되는 나이로 노화증상이 나타날만한 나이다. 식탐이 강해 한동안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는데 이제는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식사량이 늘었지만 살이 빠진다며 이전에 먹던 다이어트 사료대신 살찌는 사료로 바꾸고 건강식도 줬다. 식욕은 더욱 왕성해졌으나 병색이 완연하다. 강아지는 코가 축축하고 윤기가 돌아야 건강하다는 증거인데 코가 말랐으며 털도 거칠어지며 빠지기 시작했다. 푸들은 털갈이를 하지 않으니 털이 거칠어지고 빠지는 증상으로 봐서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짧은 기간, 아니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다.
집사람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뇨병이 의심된다며 당뇨검사키트로 검사한 결과 당뇨병은 아니다. 하지만 물 먹는 양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으며 살 빠짐이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 검색 결과 쿠싱증후군(Cushing's syndrome)이 의심된다며 종합검진과 쿠싱증후군에 대한 검진을 의뢰했다. 검사결과 병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肝(간)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으며 肝 數値(수치)는 측정 가능한 범위를 넘었다. 불행하게도 쿠싱증후군이며 갑상선기능저하증도 있는 복합증세다.
쿠싱증후군은 호르몬 과다로 인한 병으로 부신피질기능항진증이라 불린다. 老齡犬(노령견)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강아지 질환이다. 亢進症(항진증)은 신체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잠자는 상태에서도 장기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증상이다. 이로 인해 많이 먹어도 살은 빠지고 목도 마르고 근육 손실과 노령화가 빨라진다. 사람들에게 흔한 갑상선 항진증에 걸리면 갑자기 체중이 감소하고 늙어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식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해지나 근육이 소실되는 병이기에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근육량을 늘려야 하는 고약한 병으로 하루 한 번하던 산책을 두 번으로 늘렸다. 간이 좋지 않아 지방질을 먹으면 안 되니 간식은 닭 가슴살 육포, 양배추, 당근, 무, 단호박, 고구마 찐 것을 주고 사료는 수의사 처방사료를 먹인다. 처방약 이외에 간을 보호하고 체력을 올리기 위한 영양제, 유산균, 오메가 3, 비타민 등을 준다.
동물인데 영양제를... 동물이나 식물이든 ‘伴侶’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 격이 높아지고 상황이 달라진다. ‘伴侶’의 반열에 오르면 ‘생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벗이나 친구’와 동격의 존재로 격상되기에 다른 나라에 사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권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해도 개인을 중심으로 판단해 보면 엄연한 현실이다. 같이 살다보면 동물같이 느껴지지 않고 한 식구와 진배없게 된다.
친구는 반려견이 백내장, 노화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도저히 안락사를 시킬 수 없어 강아지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2년간의 입원비와 약값 등 경제적 부담에도 ‘伴侶’의 반열에 오르면 사람대접을 받게 된다.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어쩔 수 없이 보호자나 주변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약하게 만든다. 집사람은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콜라’ 건강과 양육에 두고 있다. 친구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잠시 친구 얼굴만 보고 온다. ‘콜라’가 차를 타지 못하기에 환갑이 되었어도 여행가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콜라’가 너무 어렸을 때 입양했기에 분리불안증이 있었는데 이제는 집사람이 분리불안증을 앓고 있다. ‘콜라’가 갑자기 잘못될까봐 떼어놓지를 못한다. 식재료는 택배로 주문하거나 내가 장을 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콜라’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부부가 노년에 고생하고 있다. 식사시간 중에 대화를 하면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기에 식사시간에는 식탁에 머리를 묻고 묵언식사를 하고 있다.
미용실 다니던 것도 중단했다. 미용실은 동물병원과 같이 있어 눈치 빠른 아이가 가기 싫어한다. 또한 미용할 때 움직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높은 곳에 올려놓고 미용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집사람이 미용가위와 클리퍼를 구매해 직접 털을 깎아주고 있다. 한편으로 ‘콜라’에게 올인하고 있는 집사람이 병날까 걱정된다.
강아지 눈이 그윽해 뭔가를 바라는 눈빛이라는데 나도 ‘콜라’ 눈에 가스라이팅 당했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현관에서 눈을 마주치므로 통행료 격으로 사료 몇 개라도 줘야 한다. 이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사료 몇 개 던져주고 방에 들어가 식사시간 전까지 책을 읽는다. 하지만 이제는 방안에 들어와 사료를 더 내놓으라고 짓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생겼다. 눈치 빠른 ‘콜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갑질을 하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을 넘어 갑질을 하기 시작한 거다.
저녁 먹고 나면 몸을 긁어달라고 칭얼대고 마실 물이 모자라면 물그릇을 바치고 있는 수건을 빼거나 물 달라고 칭얼댄다. 반려견 간식을 만들거나 과일을 깎을 때는 빨리 달라고 소리 지른다. 블루베리와 사과, 배, 수박, 토마토는 자기 몫으로 생각해 마음 편히 먹질 못한다. 멈추지 않는 식욕으로 인해 사람은 화장실가서 몰래 먹고 나와야 한다.
반려견의 갑질이므로 이른바 개(犬)갑질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커피와 아이스크림 맛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다.
쿠싱증후군은 貴族病(귀족병)이다. 영양제 말고도 혈액검사 등 주기적 검진을 위한 병원비, 호르몬 조절제 등 약값, 간 보호를 위한 영양제와 처방사료 값이 꽤 들어간다. 어머님이 남겨주신 오피스텔 월세가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개(犬)갑질하는 ‘콜라’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