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중에는 맥망(脉望)이란 녀석이 있다.
아시다시피 정민교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연암 박지원을 연구했습니다. ‘不狂不及(불광불급)’ 등 여러 권을 저술했으며, ‘不狂不及’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작가입니다. ‘不狂不及’의 뜻풀이는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한다.’인데 의역을 하면 ‘미쳐야 미친다.’라는 멋진 뜻이 됩니다. ‘미쳐버릴 정도로 몰두해야만 경지에 미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오늘 소개드리는 ‘책벌레와 메모광’또한 책에 미치고 메모에 미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책벌레는 책을 갉아 먹고 사는 고약한 놈인데 좀처럼 잡기 힘들다. 책벌레 중에는 맥망(脉望)이란 녀석이 있다. 당나라 때의 고사에 의하면 직경 4촌쯤 되는 둥그런 고리모양의 벌레가 책속에서 나와 중간을 끊어보니 물이 한 되 정도 나왔다. 불에 태우니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났다. 그 일 을 도사에게 이야기했더니 혀를 끌끌 차며 이야기 했다.
‘두어(蠹魚) 즉 책벌레가 책속에 있는 신선(神仙)이란 글자를 세 차례이상 갉아 먹게 되면 맥망(脉望)이란 벌레가 된다네. 밤중에 별빛에 이것을 꿰어 비추면 별이 그 즉시 내려와 환단약(還丹藥)을 구할 수 있게 되지. 이것을 물에 타서 먹으면 그 자리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네. 쯧쯧! 아깝구먼.’
옛 서생들은 날마다 책 속에 머리를 박고 그것을 양식 삼아 사는 책벌레와 자신을 동일시하곤 했다. 책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는 매일반이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기는 한가지였다. 다음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자기 초상화에 써서 스스로를 경계한 글이다.
사슴과 무리 되어
쑥대로 엮은 집에,
창 밝고 고요한데
주림 잡고 책을 본다.
네 모습은 여위었고
네 학문은 공소하다.
하늘 뜻은 저버리고
성인 말씀 어겼으니,
널 마땅히 책벌레의
무리 속에 놓아두리.
늘 읽어도 ‘창 밝고 고요한데 주림 잡고 책을 본다.’고 한 3,4구가 참 좋다. 깊은 밤 창문에 달빛이 어려 훤하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리니 새삼 주위가 고요한 줄을 알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침 한번 삼키고 다시 책을 본다. 아름답지 않은가? 가난한 살림에 밤낮 책을 읽는다. 몸은 비쩍 말랐어도 공부는 특별히 이룬 것은 없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평가 해볼 때 책벌레와 다를 바가 없다는 예기다.
박세당(朴世堂)도 책벌레(蠹魚)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책벌레 몸뚱이는 책 속에서 살아가니
여러 해를 글자 먹어 눈이 문득 밝아졌네.
그래봤자 미물인걸 누가 알아줄까
경전 훼손했단 이름 덮어쓰기 딱 좋다네.
책에 파묻혀 여러 해를 살다보니 글자깨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끝내 이렇다 할 성취는 이루지 못했다. 남의 손가락질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겠다는 얘기다. 이 책벌레는 바로 시인 자신이다. 이왕 먹는 것이라면 신선이란 글자만 골라 파먹어 맥망(脉望)이나 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