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생각수업(2) (박웅현 등 9명著, 알키刊)

쌀 한 톨의 무게

by 물가에 앉는 마음


5. 자본주의가 정의로울 수 있는가? By 장하성(고려대 교수, 대한민국 대표 경제학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단 사유재산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취득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보수/진보, 좌파/우파라는 것이 시대착오적 이념적 대립구조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그 이념적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보수는 자신의 이권에 매몰된 나머지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진보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념에 매몰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을 지키려고 합니다. 보수집단으로 전경련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불공정 경쟁을 옹호하거나 불공정 경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진보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자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대안은 말하지 않은 채 문제제기만 합니다. 현실과 체제를 부정하면서 대안 모색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것이지요.

보수는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자고 하는데 과거 경험은 자산이기도 하지만 부채입니다. 저희를 포함한 과거에 머물러 있던 많은 기성세대들은 여러분들이 주도할 미래에는 이 땅에 있지도 않는데 미래를 설계할 필요도 없는 분들이 과거 경제 성장 위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진보는 우리나라와 맞지도 않는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적용하려 하는데 이는 남의 사진에서 내 얼굴을 찾으려는 격입니다.

최고경영자는 노동자, 공급자, 사회, 주주에게 최선을 다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 경영자는 책임과 의무는 도외시하고 회사를 마음대로 운영할 권리를 갖습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일가 지분이 4.7%인데 오너 행세를 하고 3,4세 경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의 정권 세습과 다름이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들 대다수가 기득권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도전자의 성공보다는 기득권 강화를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반면 진보는 대안 없이 부정만 하는데 자본주의를 부정하면 어떻게 하자는 걸까요? 누군가는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을 이야기 하나 이억은 문제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체가 아닙니다. 진보진영이 좋은 뜻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대안을 내는 데는 무력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러는 사이 중산층이 줄고, 저소득층이 늘고, 노동 분배가 줄고,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의 미래를 기성세대들이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미래는 미래세대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연을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작은 나비가 되어 다 함께 날갯짓을 한다면 여러분들 스스로 태풍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계층에 맞는 투표를 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을 심판해야 합니다.


6. 생각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By 데니스 홍(캘리포니아대 교수, 로봇공학자)

저는 로봇공학자이며 뇌 과학자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든 로봇을 보고 어디에서 그런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냐고 묻는데 뚜렷한 한 가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창의력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인데 제 생각에는 누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관계없던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 새로운 것을 조합해 내는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스트라이드라는 로봇은 다리가 세 개인데 두 다리 사이로 나머지 한 다리가 지나가면서 이동을 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예전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딸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는데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머리카락 두 묶음 사이에 한 묶음을 넣는 것을 보고 로봇 만드는데 착안을 한 겁니다. 로봇과 머리 땋기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 창의적인 메커니즘을 만든 거지요.


7.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By 조한혜정(연세대 명예교수, 문화인류학자)

오늘 강의 주제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인데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셨던 분들은 실망스러울 겁니다. 오늘의 정답은 지구 위에서 친구들과 작당하여 우정과 환대의 마을을 만들면서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버스 안에서 가방을 들어주다가도 인연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관계는 친밀한 관계라기보다는 상당히 계산된 결과이고 일종의 거래입니다. 206년경부터 학생들이 달라졌어요. 입학하면 술 먹고 놀러 다니고 미팅하던 학생들은 사라지고 부모님께 감사해하고 미안해하면서 놀지 않고 취업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생겨났습니다. 좋은 대학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 박사는 다트머스대학 총장 시절 졸업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3M에서 3E로 옮겨가야 한다.’ Money(돈), Market(시장), Me(나)에서 Ethics(윤리) Engagement(사회적 관여), Excellence(탁월함)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에 관여하는 유기체적 존재로서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하고 세상을 구할 탁월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하므로 문제가 생기면 의논을 해야 하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시간을 공유해야 합니다.

사람은 책을 읽고 나며 누군가와 그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책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분들은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를 곁에 두시면 됩니다.


9.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By 안병욱(시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자)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날 것인가? 마침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우리의 일상은 선택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선택도 있는가 하면 이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처럼 간단하지 않은 선택도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의 상징이라는데 스스로에게 ‘나는 자유로운 존재인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기본적인 욕구가 제한되는 곳이라면 감옥과 군대를 들 수 있습니다. 나의 선택을 지배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통제 상태를 벋어 나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제대 후에 ‘제대를 했더니 몸은 편한데 마음은 군대에 있을 때가 편했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몸의 자유가 영혼의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인데 그러면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감옥 바깥에 있다고 하지만 실은 평수 넓은 감옥 속에 갇혀 있으면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시간이라는 변수입니다. 현재의 선택은 과거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 습관, 취미 등은 과거로부터 쌓아져 온 산물입니다. 선택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이지만 나의 역사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공간적이고 물리적인 제약입니다. 먹지 않고 살고 늙지 않고 살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자연의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니 비현실적입니다.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문이 아닌 벽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은 이렇듯 물리적인 제약이 따릅니다.

셋째, 외부의 입력과 조작입니다. 나의 선택은 외부로부터 입력된 정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원빈이 마시는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고 성형외과에 가야 예뻐질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과 심리적 거부입니다. 숲 속 두 갈래 길에서 나는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있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지는 것은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댐 아래에 사는 사람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 중 누가 걱정을 많이 할까 연구를 했는데 댐 아래 사는 사람은 ‘여기는 안전하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별은 선사시대부터 관찰과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자구를 촬영한 ‘블루 마블’이란 사진을 보고 난 후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지구를 하나의 별로 인식하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지구의 운명이 곧 우리의 운명이라고 깨닫게 된 계기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선택이 지구를 위해서도 옳은 것인가? 자동차, 냉장고, 좋은 옷들이 과연 지구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는지? 1960년대 인류가 사용한 자원과 에너지는 지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의 반이었고 1970년대에는 균형적이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의 1.5배의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00만 원 버는 사람이 150만 원을 사용하는 셈인데 우리는 성장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는 지구 온도가 섭씨 2도 상승하면 기후변화의 임계점에 도달하는데 파국을 막기 위한 시간은 30년도 채 남아있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자동차, 냉장고의 보유 수량이 늘어나고 휴대폰 교체주기는 빨라지는데 쓰고 버리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획적 진부화’라 하는데 기업들은 ‘필요보다 약간 더 새롭게, 더 좋으며, 더 빠른’ 물건을 구매하려는 욕망을 소비자에게 불어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구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 자신에게 좋은 선택은 지구에게도 좋은 선택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첫 번째, 나의 욕망은 진실된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두 번째,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 따져봐야 합니다.

세 번째, 더 넓게 공감하고 나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0.016그램 정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일까요?


가수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를 보면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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