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窮世界(무궁세계), 해도 해도 못 다할 일
新奇爲怪(신기위괴) 혼동하기 쉬운 것들
성대중이 ‘質言(질언)’에서 말했다.
나약함은 어진 것으로 보이고 잔인함은 의로움과 혼동된다.
욕심은 성실함과 헷갈리고 망령됨은 곧음과 비슷하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러워도 느슨하지 않다.
나약함은 어짊과 거리가 먼데 사람들이 자칫 헷갈린다. 잔인한 행동이 의로움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욕심 사나운 것과 성실한 것을 혼동하면 주변이 힘들다. 망령된 행동을 강직함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損易益難(손이익난) 덜기는 쉽고 보태기는 어렵다
홍만선이 산림경제에서 말했다.
덜어냄은 알기 쉽고 빠르다. 보탬은 알기 어렵고 더디다. 덜어냄은 등잔에 기름이 줄어듦과 같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없어진다. 보탬은 벼의 싹이 자라는 것과 한가지라 깨닫지 못하는 틈에 홀연 무성해진다. 그래서 몸을 닦고 성품을 기름은 세세한 것을 부지런히 하기에 힘서야 한다. 작은 이익이라 별 보탬이 안 된다고 닦지 않아서는 안 되고, 작은 손해라 상관없다며 막지 않아서도 안 된다.
쑥쑥 줄고 좀체 늘지는 않는다. 빠져나가는 것은 잘 보여도 들어오는 것은 표시가 안 난다. 오랜 시간 차근차근 쌓아 무너지듯 한꺼번에 잃는다. 지켜야 할 것을 놓치면 우습게 본 일에 발목이 걸려 넘어진다. 기본을 지켜 천천히 쌓아가야 큰 힘이 생긴다. 건강도 국가 운영도 다를 게 없다.
滿而不省(만이불생) 가득 차도 덜어내지 않는다면
이규보가 술통에 새긴 樽銘(준명)은 이렇다. 不省은 반성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너는 쌓아든 것을 옮겨 사람의 배 속에 넣는다.
너는 가득 차면 능히 덜어내므로 넘치는 법이 없다.
사람은 가득 차도 덜어내지 않으니 쉬 엎어지고 만다.
求全之毁(구전지훼) 예상 못한 칭찬과 뜻하지 않은 비방
맹자가 말했다. 행실이 칭찬을 얻기에 부족한데도 우연히 칭찬을 얻는 것이 바로 예상치 못한 칭찬이다. 비방을 면하기를 구하다가 도리어 비방을 불러온 것이 바로 온전함을 구하려다 받는 비방이다. 비방하고 칭찬하는 말이 반드시 다 사실은 아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판단하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듣고 보는데 따라 칭찬과 비방이 팥죽 끓듯 한다. 잘하려고 한 일인데 비방만 얻고 보니 서운하다. 어쩌다 그리된 일에 칭찬 일색은 어색하다. 그러니 세상의 칭찬과 비방은 개의할 것이 못 된다.
堪忍世界(감인세계) 참고 견디며 지나간다.
유만주의 1784.02.05 일기
우리는 감인세계에 태어났다.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열에 아홉이다. 참아 견디며 살다가 참고 견디다 죽으니 평생이 온통 이렇다. 불교에는 出世間(출세간), 즉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있다. 이는 감인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벗어났다 함은 세계를 이탈하여 별도의 땅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고 일체의 일이 모두 허무함을 깨닫는 것이다.
감인은 참고 견딘다는 듯으로 못 견딜 일도 묵묵히 감내하고 하고 싶은 말도 삼킨다. 한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참아내고 견뎌내는 연습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건너가는 한세상을 감인세계로 규정했다. 감인세계는 벗어날 수 없는가? 이 못 견딜 세상을 견뎌내는 힘은, 날마다 아등바등 얻으려 다투고 싸우는 그 대상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나온다. 인간의 진정한 낙원은 멀리 지리산 청학동이나 무릉도원이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얘기다.
鼻大目小(비대목소) 수습의 여지는 남겨둔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조각 잘하는 환혁이 말했다.
새기고 깎는 방법은 코를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해야 한다. 코가 크면 작게 할 수가 있지만 작게 해놓고 크게 만들 수는 엇다. 눈이 작으면 키울 수 있지만 크게 새긴 것을 작게 고칠 방법은 없다. 일처리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돌이킬 수 있게 해야 실패하는 일이 적다.
無窮世界(무궁세계), 해도 해도 못 다할 일
윤기의 井上閑話(정상한화)에 나오는 시로, 작자 미상이다. 가는 자는 떠나고 오는 자가 잇는다는 지극한 이치를 말한 대목이 가장 음미할 만하다.
세상의 하고 한 일, 해도 해도 다 못하리.
하고 하다 떠나가면, 뒷사람이 하고 하리.
이덕무는 ‘이목구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갑이 한 말을 을이 반드시 비난하고, 을이 갑을 비난한 것은 다른 의론이 없을 것 같지만 병이 또 이를 비난해서 이 또한 끝도 없는 무궁세계다. 단지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이 이것을 말하면 을이 저것을 비난하고, 병이 발끈해서 왜 비난하느냐고 비난하면, 정이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한다고 비난한다. 끝에 가면 갑과 을은 같은 편이 되기도 하고, 애초에 무엇을 가지고 왜 싸웠는지도 모르게 된다.
정가의 말싸움이 이와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니, 무엇이 문제냐고 맞받고, 문제를 모르니 문제라고 하자, 그때 너희도 그랬다고 한다. 언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웃고 악수하고 잘해본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궁세계의 속내는 보통사람이 알기 어렵다. 일도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다.
財災貨禍(재재화화) 재앙의 빌미, 파멸의 구실
眉公祕笈(미공비급)의 한 구절이다.
일찍이 돈 ‘錢(전)’자를 살펴보면 위에도 창‘戈(과)’자가 붙었고 아래에도 붙었다. 돈이란 참으로 사람을 죽이는 물건인데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 그럴진대, 두 개의 창이 재물(貝)을 다투는 것이 어찌 賤(천)하지 않겠는가?
윤기의 글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대저 재물(財)은 재앙(災)이고, 재화(貨)란 양화(禍)다. 벼슬(仕)은 죽음(死)이고 관직(宦)은 근심(患)이다. 세상 사람들은 財貨(재화)를 가지고 災禍(재화)를 당하고, 仕宦(사환)때문에 사망의 환난(死患)에 걸려든다. 이는 본시 이치가 그런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가깝던 사이가 돈 문제로 틀어지면 원수가 따로 없다. 물불을 안 가리고 천한 짓도 마다않는다. 재물로 떵떵거리고 벼슬길에서 득의연할 때는 이것이 내게 재앙의 빌미가 되고, 나를 파멸로 몰고 갈 구실이 될 줄은 차마 몰랐다. 구렁텅이의 나락에 떨어진 뒤에야 그것을 알게 되니 때가 너무 늦었다.